Book Column – 멋진 신세계

– 갈때 가더라도 독서 한편쯤은 괜찮잖아 –

‘신세계’란 말을 들으면,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명작 영화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한국의 한 대형 백화점 브랜드도 떠오르고, 새로운 장소에서 경이로운 경험을 했을 때 쓰는 ‘와, 신세계다!’ 라는 표현도 떠오르네요. 개인적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제 자신의 경험적, 사고적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이 ‘신세계’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디스토피아 (암울한 미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년 출판)는 제목부터 왠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이 소설을 읽기 전부터 ‘멋진’ 이란 말은 반어적으로 쓰인 표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심장에 안전벨트를 단단히 착용하고, ‘그래 인류에게 얼마나 무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1894년생 할아버지가 1932년도에 상상했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약 100년 후배의 입장에서 한번 들어나 보자’라는 자세로 읽은 책입니다.

<멋진 신세계>의 시간적 배경은 서기 2540년입니다. 소설속 인류는 포드력 632년이라고 표현하는데,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T모델’이란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1908년을 포드력 1년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포드력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2026년은 포드력 118년인거죠.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대량생산의 아버지 포드(Ford)를 포드님! (주님의 영문 표현인 Lord를 빗댄 표현으로 보입니다!)이라고 부르며 오늘날의 신처럼 모시고 있고, 현재의 모든 종교는 고대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가 오늘날의 고대 바빌로니아 종교, 아즈텍 문명의 종교 같이 소멸된 상태입니다.

과학 기술로 인류의 출산부터 죽음까지 철저하게 통제 되는 신세계는 그야말로 신세계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복’이 이론적으로 완성된 세상입니다. 전쟁이 사라졌고, 모든 사람이 직업을 갖고 있고, 자유로운 만남으로 고독과 외로움이 사라졌고, 업무후에는 여행과 여가가 보장되고, 우울증은 약물을 통해 치료되며, 유전자 조작과 의료적 관리를 통해 늙지 않고 20대의 젊음이 유지되며, 노화가 시작될 즈음인 60세의 나이가 되면 고통 없는 안락사를 통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철학과 실업률을 최소화하는 케인즈 경제학,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정신병의 원인이라는 프로이트 심리학적 관점에서 완벽한 세상이며, 인류의 가장 큰 공포인 죽음의 공포까지 극복된 흠잡을데가 없는 세상입니다. 2026년의 인류가 여전히 꿈꾸고 있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다만 인류는 이를 위해 양립할 수 없는 몇가지 사소한(?) 가치를 포기했으니 가정(체외 수정으로 유리병에서 아기가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 자식관계가 사라짐), 직업선택의 자유, 고전 독서, 사회 질서를 깰 수 있는 사상 및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 노력에 의한 계급 이동입니다. 아무리 멋진 신세계지만 고전 독서 금지는 좀, 너무 끔찍한 대가입니다. ‘헉슬리형, 장난이 너무 심한것 아니요!’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대략 5명입니다. 최상위 신분 (알파 플러스)임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심리학자 버나드 마르크스와 예술가 헬름홀츠 왓슨, 상위 신분(베타)여성으로 체제에 전적으로 순응하나 자신도 모르게 나쁜 남자(체제 의심자)들에게 끌리는 레니나 크롬웰, 체제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남들이 못 읽는 책을 자신은 다 읽고 있으면서도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신세계 최고 권력자 무스타파 몬드가 야생인 보호구역에서 온 존을 만나게 되면서 소설의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이르게 됩니다. 존은 문명국가 신세계 사람을 부모로 두고 있으나 사고로 인해 야생인 보호구역에서 자라난 특이한 인물로 버나드 마르크스와의 만남을 통해 그가 꿈꾸던 신세계로 가게 되고, 그의 시선을 통해 독자들은 신세계의 민낯을 보게 됩니다.

그의 독특한 탄생과 성장 배경은 최고 지도자 무스타파 몬드의 관심을 받게 되고 소설 후반부의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는 가히 이 책의 백미라 꼽을 수 있습니다. 둘은 양극단에 서있는 인물인데 최종 빌런이자 끝판왕인 무스타파 몬드의 왜 인류가 여기까지 왔고,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담담한 고백은 섬찟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반박하기 힘듭니다. 독자는 신세계의 모습을 통해 미래 뿐만 아니라 ‘헌’세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쓴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돌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곳곳에서 주는 다양한 상징과 풍자를 소설적 재미와 긴장을 통해 즐기는 지적 유희를 즐기다 보면 과연 독서와 생각,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행복’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듭니다.

요즘 누구를 만나도 AI 라는 주제를 빼놓고 미래를 얘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상과 업무 방식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핸드폰 급, 아니 그 이상의 신세계가 우리 앞에 열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생산성 증가와 함께 인터넷, 핸드폰은 인류에게 TV와 시간, 집중력을 빼앗아 갔지만 그 이상의 생산성 증가와 함께 AI는 자칫 인류의 사고력과 사생활을 빼앗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모를 신세계(AI가 지배하는)를 대비하여 AI와 존대말로 대화하라는 충고가 나오고 그걸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도 요즘 사람들의 AI의존도와 기대감에 대한 반증이 될 것 같습니다.

AI 시대에 인류에게 필요한 능력은 AI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능력을 넘어, 올바르게 지시를 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 결과물을 검증하고 에러를 찾아내는 능력, 결과물을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인류가 ‘생각하는 것’과 독서를 포기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명작 영화 신세계의 유명 대사로 글을 마칩니다.
‘AI라는 멋진 신세계로 드루와~ 드루와~’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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