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 읽는 즐거움 –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넷플릭스만 들어가 봐도 개인이 평생을 봐도 못볼 영화와 드라마가 가득한데, 매일 매일 더 재밌고 잘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가 새롭게 나타납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김부장’이란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데, 재미와 몰입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소지섭 배우가 너무 멋지고, 몸매 관리도 잘해서 ( 이야기 맥락상 굳이 웃통을 까서 상반신 보여줄 할 상황이 아닌데, 다소 억지스럽게 몸매 자랑을 시킨 장면은 흥행을 노린 서비스 컷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충격과 자극을 받았는데, 그 배우가 저와 동갑이라는 사실에 더 큰 중격을 받아 덕분에 운동량이 늘었습니다.
학창시절 일본 단행본 만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던 저로서는, 일본이 만화 강국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웹툰으로 대표되는 높아진 한국 만화의 위상과 수준에 경이로움과 자긍심을 느낍니다. 유투브와 쇼츠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것 같습니다. 남녀 노소 가릴것 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 세상’입니다. 얼마전 유투브에서 자녀 교육전문가가 나와 ‘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해 텔레비젼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헛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텔레비젼이 이 지경인데, 이 시대에 소설은 과연 어떤 위상과 가치를 갖고 있을까요?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가,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대표적인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 보면, ‘읽는 즐거움’이란 것을 제대로 느낄수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영화 ‘장미의 이름(1986)’으로도 제작되어 나름의 흥행 성과를 거두었던 이력이 있기 때문에, 영화와 비교해 보며 ‘보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을 구분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중세시대 (1300년대) ‘아드소’라는 늙은 수도사가 자신이 수련 수도사이던 젊은 시절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7일간 (1327년) 겪었던 경험을 회고하는 이야기입니다. 7일간의 이야기지만 책으로는 상,하권 합쳐서 650페이지 정도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 수도원은 당시 유럽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한 장서관(도서관)을 가진 수도원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도서관 매니아인 저로서는 이 설정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설정이었습니다.
서초구에 있는 한국의 국립 중앙 도서관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읽었는데, 이 수도원에서는 당시 세계 각지에서 온 수도사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지식을 탐구하며, 직업적으로 필사 (당시는 인쇄술이 없었습니다)를 하며 수도원의 책을 늘리고, 또한 자신의 출신 수도원으로 가져갈 책을 필사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구글의 데이터센터 같은 곳이라 부를 수 있겠네요. 이 수도원의 장서관은 공인된 사서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수도원의 회칙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 수도원에서는 당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던 황제와 교황의 대표자가 만나 종교적, 정치적 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불행히도 그 회담을 앞두고 젊은 수도사들에 대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소설의 화자인 아드소의 스승 ‘바스커빌의 윌리엄’ ( 셜록홈즈의 유명한 추리소설 ‘바스커빌의 개’에서 따온 이름 )은 황제측 대표자로서 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이 수도원에 도착하게 되고,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부담을 느낀 수도원장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중 하나였던 윌리엄에게 범인을 잡아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이 수도원은 당시 중세 유럽사회의 모습을 압축해서 담은 ‘소우주’의 역할을 합니다. 당시 종교계는 보수적인 ‘베네딕트파’와 개혁세력인 ‘프란체스코파’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정치계에서는 떠오르는 세력인 황제와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교황간의 갈등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수도원과 농민, 영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봉건사회와 대학, 상인, 시장으로 대비되는 도시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등장 인물들간의 교리 논쟁, 대화, 사건 사고는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화자가 담담히 고백하는 심리적 갈등은 독자에게 철학적, 윤리적 질문을 던져주며 ‘생각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긴장감을 주는 한편의 추리소설로도 손색이 없으며, 마치 내가 유럽 중세 사회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의 상급의 세계사책이며, 졸립지 않은 철학책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방대한 지식과 도발적인 질문을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속에 지루하지 않게 녹여넣은 작가가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은 보는 이의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327년에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깊게 해보면 150년전의 일에도, 현재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적용이 가능한 지식과 질문을 던져줍니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65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을 지적인 수도사가 해결하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물’로 기억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방대한 지식, 논쟁, 질문 거리를 담기에 2시간이란 러닝타임은 너무 부족한 시간입니다.
이런 영화 조차 ‘지루해서’ 못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에, 우리 시대 볼거리들의 특징은 빠른 화면 전환, 다양한 각도의 화면, 쏜살 같은 전개가 특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재미와 몰입감을 얻는 대신, ‘내가 속도를 조절하며 생각하는 기회’를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쉽게 ‘현실화’ 시킬수 있는 기회가 더욱 커지고 있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과 남의 생각을 쫓아가는 사람 간의 간격은 과거 시대보다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게 이 시대에 책과,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