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옥 여행기 –
누구도 지옥에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활활 타는 불구덩이, 악마들이 휘두르고 찔러대는 칼과 창, 채울 수 없는 배고픔, 펄펄 끊는 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지옥에 실제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종교와 문화권 속에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옥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옥에 떨어질놈’, ‘Go to hell!(지옥에나 떨어져라)’ 같은 언어속에 지옥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지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고통을 받고, 나쁜 사람이 잘먹고 잘사는 현상에 대해 많은 종교인들과 학자들은 이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겪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서 고통을 받았으나 정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는 그가 죽은 후에 ‘천국’이라는 선물을 준비해주고,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했던 나쁜 사람에게는 ‘지옥’이라는 복수를 선사해주는 것을 문화로 만든 것이죠. 이게 일종의 ‘정신승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악인은 ‘악마’로, 선인은 ‘신’으로 불리우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왔고, 문자가 만들어진 후에는 그 이름이 역사책 속에 박제되어, 마치 유튜브에 올라와 사회 생활이 불가능해진 사람들처럼, 후손들에게 대대로 칭송을 받거나, 욕을 먹게 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옥은 실제로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길게 보면 공정하게 만드는, 인류를 단기 투자자가 아니라 장기 투자자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기 직전 1300년 전후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마지막 중세시대를 살았던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신곡(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이라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남김으로써 인류가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지옥’의 이미지를 선물해 주며 그 이름을 역사속에 남겼습니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신곡이 아니라 단테의 ‘신곡’은 읽어본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학교다닐때 세계사 시험 공부를 했던 전세계의 사람들이 한 번은 들어봤던 작품입니다.
정작 단테는 제목을 ‘Commedia(희극)’이라고 붙였지만, 후배들이 이 작품을 ‘Divina Commedia (신성한 희극)’이라고 부르면서 여러나라를 거쳐, 아마도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이름인 ‘신곡’으로 우리에게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에서 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해피엔딩’과 ‘잊을수 없는 슬픈 결말’에 있는 것처럼, 이책은 희망이 없는 지옥에서 시작되어, 회개와 구원의 기회가 있는 연옥을 거쳐, 구원 받은 이들이 사는 천국을 소개하며 해피엔딩을 맞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보면 내용이 그렇게 생각보다 진지하지 않고, 작가가 살았던 1300년대의 이탈리아 중세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만큼 인간적이며, 작가의 해박한 그리스로마 문화와 성경에 대한 지식을 통해 유럽 문화의 양대 산맥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생방송으로 보며 복습 및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타이거 우즈의 경기를 보며 골프 스윙의 원리를 생각해보는 그런 경험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 내용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너무나 지루하고 복잡한 독서 경험이 될수도 있어 이 책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극하게 갈릴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대학교 1학년 학생에게 단테의 신곡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써내라는 과제가 내려졌다면 극소수의 학생을 제외하면 이 책의 원제가 ‘희극’이라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을만큼 ‘비극’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 <신곡-지옥편>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단테의 지옥 여행기입니다. 산에서 길을 읽은 단테가 세마리의 맹수인 사자(교만), 표범(육체적 욕망), 늑대(탐욕)을 만나 위기를 만났을때 <아이네이스 : 로마 건국 서사시>의 저자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그를 길잡이로 삼아 지옥을 여행하게 됩니다. 9개의 원(고리)로 구성된 지옥은 각자의 죄업에 따라 구분되는데 1.림보(세례받지 않은 선인들이 있는 곳) 2. 색욕 3. 폭식 4.탐욕 5.분노 6.이단 7.폭력 8.사기 9.배신이라는 죄목에 걸맞는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단테는 그곳에서 자신이 책을 통해 만났던 사람, 사회에서 알았던 사람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합니다.

고대 사회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폭력 지옥에 있었던 것과 몇몇 교황들이 지옥에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고,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과 그 조상들을 지옥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는 예술가들의 소심한 복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이란 작품에서 자신의 작품을 비난한 교황청의 ‘비아지오 체세나’ 추기경을 지옥의 문지기인 ‘미노스 왕’으로 그렸던 일도 생각이 나며, ‘펜과 붓의 힘’을 느낄 수 있었죠. 어찌 되었건 단테와 함께 지옥 여행을 하는 동안 ‘착하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며 읽었으니, 700년이 넘도록 유효한 그의 위대한 필력에 찬사를 아낄수 없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 말은 단테가 들어가는 지옥문에 써있던 마지막 문구입니다. 사실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모습이나 여러 문화권에서 묘사한 지옥은 인간이 현실 세계에서 겪는 고통(육체적, 정신적, 생리적)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크게 새롭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시작부에 있는 이 문장은 책을 읽은지 한동안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운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란 없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곳은 지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기 바라며, 희망이 없다면 희망이 있는 곳으로 과감히 도전하시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책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나 공포 영화같은 것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지옥’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이나, 그리스 로마신화, 성경 지식을 증진시키고 싶은 분들에게 권합니다. 잘못 손을 대셨다가는 진짜 독서 지옥을 맛보실수 있으니, 신중한 선택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