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찌민 7군 응우옌반린(Nguyen Van Linh) 대로변에 자리한 사이공전시컨벤션센터(SECC). 5월 초의 햇살이 유리 파사드를 달구던 6일 오전, 전시장 입구에는 개막 시각이 채 되기도 전에 학교 관계자로 보이는 무리들이 줄을 이었다. 가방에 명찰을 주렁주렁 건 그들 손에는 노트패드와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표정에서는 ‘예산 집행을 앞둔 담당자’의 예리함이 묻어났다.
올해로 2회를 맞은 에듀케이션 베트남 2026(Education Vietnam 2026)은 베트남 교육훈련부의 후원 아래 엑스포럼 베트남(Exporum Vietnam)이 주관하는 행사다. 5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SECC에서 개최된 이번 전시회에는 450개가 넘는 기업이 참가했다. 전시회와 함께 기업 간 미팅 세션인 비즈니스 매칭, 전문가 컨퍼런스 에듀콘(EDUCON), 학생 로봇 대회 M.E.R.C, 에듀테크 혁신 제품 쇼케이스 오렌지 레이블(Orange Label) 등 4개의 부대 행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교실 한 칸이 이렇게 달라졌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Samsung)의 부스였다. 단순히 제품을 진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삼성 포 에듀케이션 (Samsung for Education)은 스마트 클래스룸, 오디토리엄, 스페이셜 사이니지/가상 3D 디스플레이 등 여러 체험 공간으로 나누어 부스를 꾸몄다.
스마트 클래스룸 구역의 중심에는 WAFX-P 75인치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가 놓여 있었다. 안드로이드 15를 탑재하고 구글 EDLA 인증을 받은 이 제품은 구글 플레이를 통해 Google Classroom, Google Drive, Docs, Slides 등에 바로 접근할 수 있어, 구글 생태계를 이미 수업에 활용하는 학교들의 기존 인프라와 연동하기 용이하다.
삼성 직원이 직접 수업 내용, 수식, 설명 이미지를 조작하며 시연에 나선 가운데, 화면의 특정 영역을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쳐서 관련 정보를 즉석 검색하는 ‘서클 투 서치(Circle to Search)’ 기능이 시선을 모았다. 수업 흐름을 끊지 않고 개념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관 교사들의 반응이 유독 뜨거웠다. AI 요약 (AI Summary)과 실시간 전사(Live Transcript) 기능도 탑재돼 있어, 수업 중 발언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키워드·제목·타임스탬프가 포함된 요약본을 생성해준다.
교사 공간 (Teacher Zone)에 전시된 삼성 플립 프로(Flip Pro)는 55인치 크기에 26ms의 낮은 응답속도, 2048단계의 필압 감지, 최대 20명의 멀티터치를 지원한다. 교무실 협의나 소규모 그룹 활동에 적합한 스펙이다.
그러나 이날 전시장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단연 스페이셜 3D 사이니지 (Spatial 3D Signage)였다. 삼성이 독자 개발한 3D 패널 기술을 사용해 별도의 안경 없이도 입체감을 체감할 수 있는 무안경 3D 디스플레이로, 85인치 크기에 4K 해상도, 밝기 500니트, 두께 52mm의 슬림한 폼팩터를 갖추고 있다. 인체 구조나 물리적 구조물, STEM 실험 모형 같은 콘텐츠를 3D로 구현하면 학생들의 개념 이해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삼성 측 설명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삼성 부스의 모습
“시스템 전체를 팝니다”
삼성 부스 맞은편에서 긴 줄이 이어지던 공간은 디자인 ai로 유명한 캔바(Canva)였다. 본 회사는 스마트 교실, 스마트 도서관, 외국어 스마트 교육 플랫폼 등 학교 현장에서의 실제 활용 필요에 초점을 맞춘 솔루션들을 선보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자통신기업인 화웨이도 이번전시회에 참가했는데. 이들은 교육제품을 판매 한다기 보다는 교육도 포함한 스마트시티 AI솔루션을 판매한다는 느낌이 더 컸다. 텅텅빈 거대한 부스를 보면은 이번 전시회의 방점과 맞지 않는 다는 느낌이 강했다.
야마하가 음악학원을 프랜차이즈로 파는 이유

한편 전시장 한 켠에서는 악기 브랜드로 더 익숙한 야마하 뮤직 베트남(Yamaha Music Viet Nam)이 다소 의외의 행보를 펼쳤다. 악기 전시가 아니라 가맹점 모집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이다. 야마하는 이번 전시에서 악기 판매와 음악 교육을 결합한 프랜차이즈 모델을 소개했다. 가맹 파트너는 국제 표준 음악 교육 과정, 야마하 독자 교수법, 표준화된 교사 연수 및 운영 프로세스를 패키지로 지원받는다. 대상은 호찌민, 하노이, 다낭 등 대도시와 신흥 개발 지역의 35∼55세 투자자층으로, 중산층 확대와 함께 예술 교육 수요가 늘고 있는 흐름을 정조준한 전략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쓸 수 있느냐”
전시회를 돌아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화려한 제품 시연이 아니었다. 삼성 스마트 클래스룸 시연 직후, 한 관람객이 담당 직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거, 연수 없이 혼자 쓸 수 있나요?” 그 질문 하나가 이번 전시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참가한 교육관계자에 따르면 베트남 교육기관들의 디지털 전환 준비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학교 유형과 지역에 따라 격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자율형·사립·국제학교 계열 대학에서는 통합 생태계와 데이터 관리에 대한 수요가 깊어지고 있는 반면, 일반 초중고 현장에서는 예산·IT 인프라·교사 역량·학교별 방향성에 따라 준비 수준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삼성, 캔바, 야마하, 화웨이,엡손, 벤큐, 오라클 아카데미, 뷰소닉 등의 글로벌 브랜드와 함께 영국문화원, 캠브리지, VFIS, 세드버그(Sedbergh), 빅토리아 스쿨 등 국제교육기관도 한자리에 모인 에듀케이션 베트남 2026은 분명 베트남 교육 기술 시장의 현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 AI 교육 보조, 3D 무안경 디스플레이, 스마트 도서관 RFID, 외국어 스마트 플랫폼까지 – 기술은 이미 교실 앞에 와 있다. 남은 과제는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아쉬운 한계
에듀케이션 베트남 2026은 분명 규모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나 전년 대비 한 단계 성장한 행사였다. 하지만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한 가지 불편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교육 박람회인지, AI 기술 박람회인지, 아니면 전자제품 박람회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삼성의 스마트 클래스룸이나 벤큐(BenQ)의 AI 교육 소프트웨어는 완성도가 높고 실용적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된 인상이 떠오른다. TV를 더 이상 팔기 어려워진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교육’이라는 명분을 달아 새 판로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술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교육적 맥락보다 하드웨어 성능이 전면에 나서는 전시 방식이다. AI가 수업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아니라, AI 기능이 몇 가지인지를 강조하는 순간, 그 부스는 교육 공간이 아니라 양판점이 된다.


한국 기업의 존재감이 삼성과 아이스크림 미디어(i-scream Media) 두 곳에 그쳤다는 점도 씁쓸함을 더했다. 한국이 교육 강국이라는 말은 이미 국내외에서 공인된 이야기다. 하지만 교육 시장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세계화보다 지역화에 가깝다. 언어, 교육 과정, 규제, 문화적 맥락이 시장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싱가포르, 호주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교육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단순히 영어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국제학교를 직접 설립하고 교육 과정을 수출하며 브랜드를 현지에 심는다. 반면 한국 교육 업계는 아직 학원 모델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콘텐츠의 우수성이 곧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번에 참가한 한국업체 아이스크림 미디어 부스 모습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높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K팝, K드라마, K푸드가 앞장을 서고 있지만, 소프트파워의 진정한 끝판왕은 교육이다. 타국의 다음 세대를 자국의 교육 체계 안에서 길러내는 것, 그것이 가장 오래 지속되고 가장 깊이 뿌리내리는 영향력이다.
10년 뒤, 호찌민에 세워진 한국계 국제학교들이 이런 박람회 부스에서 영국 학교들과 나란히 서서 교육 철학과 입학 정보를 설명하는 광경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면, 에듀케이션 베트남은 비로소 한국에게도 ‘전자제품 박람회 그 이상’의 자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