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원 추경부터 AI 100조 투자까지… 민생회복과 미래 산업 육성 투트랙 전략이 경제 정책의 핵심
“개혁보다 더 급한 것이 민생·경제 회복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0.8%는 1954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저 수준이다. 내수는 건설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으로 얼어붙었고, 수출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와 중국의 기술 굴기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는 단기적 위기와 구조적 전환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30조원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민생 회복, 중장기적으로는 AI를 중심으로 한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취임 직후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즉시 실행 가능한 경제대책을 수립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과연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이 한국 경제의 활로를 열 수 있을까. 주요 정책 내용과 전문가들의 평가를 종합해 봤다.
단기 과제-비상경제대응 TF 가동과 30조원 추경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회복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로, 1954년 통계 작성 이후 2년 연속 2% 미만 성장률을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 이 대통령은 “개혁보다 더 급한 것이 민생·경제 회복”이라며 취임 즉시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경제정책은 30조원 이상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이 대통령은 선거 마지막 날 “30조원 이상으로 추경을 신속하게 편성해서 당장 말라 비틀어 죽는 골목 서민경제에 돈이 돌고 숨통이 트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추경 예산은 대부분 민생 경제 회복에 투입될 예정이며, 지역화폐와 소비쿠폰 등을 통해 내수 진작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35조원 규모의 추경이 실행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약 0.3%포인트 상승해 1%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새 정부의 재정정책이 경제성장률의 상방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미 통상협상 7월 마감 시한과 전략적 대응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또 다른 급박한 현안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7월 9일까지 개별 협상을 통한 관세 확정을 예고한 상황에서, 새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고강도 통상협상에 임해야 한다.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는 557억 달러에 달하며,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최악의 침해국’ 중 하나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미국의 비관세장벽 개선 요구에 대응하는 동시에, 조선업과 알래스카 LNG 사업 등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조선업 분야에서 미국과의 적극적 협력을 추진하고, 알래스카 LNG 가스관 사업 참여를 통해 대미 무역흑자를 일정 부분 상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사업성 검토와 일본, 대만 등과의 협력체제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100조 투자와 주력 산업 재편
이재명 정부의 중장기 경제정책의 핵심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이다. 한국을 ‘AI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100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를 국민펀드 형태로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AI 고속도로’ 조성, 고성능 GPU 5만 개 이상 확보 등이 주요 내용이다.
더불어경제위원회 한영도 공동위원장은 “AI 분야에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기초연구에서 상용화까지, 그리고 인재 양성까지 전 영역을 아우르는 범위”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장비 공동구매와 장기계약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K-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GPU 국산화와 AI용 반도체 개발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과 세액공제 확대가 추진된다. 국내 생산에 10%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해외 공장 투자에도 세제 혜택을 부여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RE100과 ‘융인 반도체 클러스터’ 신속 조성, 민간 100조펀드 조성 등도 포함됐다.
지역 균형 발전과 산업 클러스터 전략
이재명 정부는 수도권 집중에서 벗어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권역별 특화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자동차 산업은 대구·경북을 미래차 부품 클러스터로, 울산을 친환경 미래차 중심지로 육성한다. 배터리 산업은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을 잇는 ‘배터리 삼각벨트’ 전략을 통해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정부가 직접 지원한다.
조선업은 경남과 울산을 중심으로 스마트·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특수선박, 북극항로 전용선박 등 미래 수요를 대비한 기술 확보가 핵심이며, 가덕도 신공항과 동남권 철도망, 대륙철도 연계를 통해 부울경을 글로벌 해운물류 거점으로 육성하는 계획도 포함됐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에너지고속도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연결되는 U자형 해상풍력 송전망 구축과 전국 단위 재생에너지 전력망 구축이 핵심이다. 분산형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그린수소 연계 전략도 병행된다.
자본시장 개혁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이재명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는 ‘코스피 5000 시대’ 실현이다. 이를 위해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향상, 자사주 원칙적 소각 의무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통한 불공정 거래 엄벌 등이 추진된다.
한영도 위원장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단순히 숫자 목표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장 질서, 기업 지배구조, 투자 환경 등 다방면에서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고, 자사주 매입 후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해 투명성을 높일 계획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도 추진된다. 한 위원장은 “디지털 자산과 제도권 금융 간의 구조적 단절을 연결하기 위함”이라며 “향후 STO, RWA, CBDC와 같은 다양한 디지털 자산들이 상호 운용되는 융합형 거래소가 구축된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동정책-주 4.5일제와 포괄임금제 개편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이하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해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추진한다. 이는 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부응하여 단순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AI와의 협업을 통한 생산성 증대와 근로자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주 4.5일제를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한다. 중소기업, 제조업 등 도입이 어려운 업종에 임금 보전 장려금, 업무 프로세스 개선 및 공정 자동화를 위한 컨설팅과 설비 지원, 4대보험 일부 감면 또는 세액공제 등의 지원책이 고려되고 있다.
동시에 포괄임금제 전면 재검토와 연차 휴가 소진율 보장을 통한 실근로시간 단축에도 나선다. 한 위원장은 “실근로시간과 무관하거나 과도하게 산정된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라며 “전면적 검토를 통해 실노동시간 기반의 공정한 보상 체계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방위산업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
이재명 정부는 ‘K-방산’을 수출 중심 산업으로 육성해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한다. 대통령 주재 방산전략회의 정례화, 방산 R&D 세액감면, 병역특례 확대, 방산수출 컨트롤타워 신설 등 종합 지원책이 마련된다. 권역별 방산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지역 산업과 연계된 생태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문화콘텐츠 분야는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집중 지원하고,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구축해 집약적 콘텐츠 생태계를 조성한다.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5’ 진입을 목표로 한다.
바이오·제약 분야에서는 국가 투자 확대와 보상 체계 개편, 전문 인력의 국가 차원 육성이 추진된다. ‘바이오 허브’ 조성을 통해 바이오 밸리를 확장하고, AI 기반 전영역 혁신과 연계한 차세대 신약 개발 고도화도 병행된다.
소상공인과 내수 진작 정책
내수 경제 회복을 위해 ‘상권르네상스 2.0’ 비전이 추진된다.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의 발행 규모 확대, 저금리 대환대출 및 이차보전 등 정책자금 확대, 임대료·인건비·에너지비용 지원 등 종합대책이 마련된다.
특히 ‘소상공인 내일채움공제’ 도입을 통해 목돈 마련 기회를 제공하고, 폐업 시 지원금 현실화 및 대출금 일시상환 유예 요건을 완화해 재기의 기반을 마련한다. 공정한 배달 문화를 위한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 도입, 대출 상환 부담 완화, 중금리대출 전문 인터넷은행 추진 등 채무자 중심의 금융 지원 체계도 구축된다.
이중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냐가 경제정책의 핵심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단기 민생 회복과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라는 투트랙 전략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재원 조달과 정부 개입의 적정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민간 기업보다 수익성에 특화되어 있지 않은 만큼,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은 정부보다는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세수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재원 조달 계획이 뚜렷하지 않다”며 “정부 지출은 철저히 우선순위를 정해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AI 정책에 대해 “100조원으로 AI 3대 강국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있으나, 세부 전략은 부족해 보인다”며 “전략적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분야와 보편적 기반 조성 분야를 구분해 투트랙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중장기 국가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의 정상화는 코스피 5천을 통해 투자자들이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함께 부자가 되는 것, 그 이상의 중요한 구조적 의미가 있다”며 “소수 지배주주 중심의 낙후된 기업 거버넌스는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경제위기 극복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단기적으로는 추경을 통한 민생 회복과 한미 통상협상 돌파, 중장기적으로는 AI와 첨단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성공 여부를 가를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