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고용시장 특집(2)

교민 헤드헌터 대표가 바라본 구인난의 진실

오전 10시, 면접 예정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고객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니, 그 사람 오늘 열시에 오기로 했는데 안 왔어요.” 급히 후보자에게 연락했더니 출근길에 오토바이 사고가 났단다. 일주일 뒤로 면접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전화를 아예 안 받는다.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다른 건. 서류 통과, 면접 합격, 연봉 협상 완료, 입사일 확정 – 모든 절차가 끝났다. 그런데 입사 전날 밤, “못 가겠다”는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이유는 없었다.
또 다른 건. 한국 기업이 필리핀 주재원으로 한국인을 채용해 파견시켰다. 며칠 뒤 연락이 두절됐다. 지금도 찾고 있다.
호찌민시에서 헤드헌팅 회사 베스트HR솔루션(Best HR Solution)을 운영하는 장영욱 대표이사에게 이런 일은 일상이다. “열 건의 의뢰를 받으면 실제로 입사까지 이어지는 건 두세 건에 불과합니다. 이 바닥에서 10년을 버텨야 비로소 고객이 믿고 맡기기 시작해요.”

가방공장 법인장에서 헤드헌터까지…33년의 궤적

장 대표의 베트남 인생은 1993년에 시작됐다. 한국 가방업체의 베트남 법인장으로 호찌민에 첫발을 디뎠다.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는 베트남 정부의 노력 – 그 발전 가능성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법인장을 12년간 역임한 뒤 개인 봉제공장을 운영했고, 2015년 헤드헌팅과 HR 컨설팅 사업으로 전환했다. 올해로 베트남 생활 33년째. 제조업 현장에서 수만 명의 블루칼라 노동자를 관리했고, 자기 공장을 직접 돌렸고, 지금은 경력직 화이트칼라 인재를 중개한다. 베트남 노동시장의 모든 층위를 몸으로 통과한 인물이다.
현재 약 250개 거래처에 경력직 인재를 중개하고 있으며, 고객사 대부분은 대기업과 중견 제조업체다. 호찌민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헤드헌팅 회사는 그의 베스트HR솔루션을 포함해 서너 곳에 불과하다. 남부 지역에 등록된 한국 기업만 7,000~8,000개에 달하지만, 실제로 헤드헌팅을 이용하는 곳은 극소수다. 비용도 부담이지만, 대부분의 한국 중소기업은 “왜 사람이 안 구해지는지”를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 채 구인난을 호소한다.
전편에서 김춘곤 이사가 플랫폼의 데이터와 거시 구조로 한국 기업의 구인난을 해부했다면, 장 대표의 이야기는 채용 현장의 골목길 – 계약서 한 줄이 수천만 원의 분쟁으로 번지고, 면접장에 사람이 안 나타나고, 입사 당일 퇴사하는 그 생생한 현실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정보가 없는 것”

장 대표가 꼽은 한국 중소기업 구인난의 첫째 원인은 ‘정보의 비대칭’이다. 삼성, LG, 효성처럼 베트남에서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은 채용 공고만 올려도 지원자가 몰린다. 그러나 종업원 50~200명 규모의 한국 중소기업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구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채용 공고를 봤는데, 이 회사가 뭐 하는 회사인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어떤 위치인지도 모르고, 베트남에서 얼마나 안정적인 회사인지도 정보가 없어요. 그러니 지원을 안 하는 겁니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정보가 없는 거예요.”
한국에는 다트(DART) 전자공시, 블라인드, 잡플래닛 같은 기업 평가 인프라가 촘촘하게 깔려 있다. 50억 원 이상 매출의 기업이라면 누구나 재무제표를 열람할 수 있고, 현직자들의 익명 평가도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그러나 베트남에는 이런 인프라가 사실상 전무하다. 구직자가 회사를 평가할 수 있는 정보는 채용 공고문과 기업 홈페이지가 거의 전부다. 한국 본사가 코스닥 상장사이든, 매출 수천억 원의 중견기업이든, 베트남 구직자에게는 “처음 보는 이름”일 뿐이다.
장 대표가 꼽은 두 번째 원인은 역시 급여다. “필요한 만큼 급여를 주면 누구든 구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상관없어요. 구인난은 결국 이 두 가지 – 정보의 비대칭과 급여 정책 – 에서 갈리는 겁니다.”

헤드헌팅·플랫폼·아웃소싱… 세 개의 채용 통로

전편에서 김 이사가 공장 채용과 씨티잡의 통로가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장 대표는 여기에 ‘헤드헌팅’이라는 세 번째 통로를 더해 좀 더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줬다. 제조업 법인장 12년, 봉제공장 사장, 그리고 헤드헌터 10년 – 세 개의 통로를 모두 직접 경험한 사람다운 설명이었다.

첫 번째 통로: 인력 파견·아웃소싱(블루칼라)

공장 생산직, 물류 창고 인력, 콜센터 직원 같은 블루칼라 대량 채용은 ‘아웃소싱 업체’의 영역이다. 장 대표는 이 시장이 헤드헌팅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표현했다. 한국 최대 헤드헌팅 회사의 연매출이 100억 원을 넘기기 어려운 반면, 아웃소싱 대기업인 삼구의 매출은 2조 원에 달한다. 시장 규모 자체가 다른 세계라는 것이다.
아웃소싱의 범위는 단순 인력 파견을 훨씬 넘어선다.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라 불리는 업무 프로세스 통째로의 하도급, 데이터 라벨링 같은 AI 관련 작업 외주, 콜센터 운영 대행까지 사업 영역이 다양하다. 장 대표 역시 헤드헌팅과 별도로 한국 기업의 AI 데이터 라벨링 작업을 BPO로 수행하고 있다. “헤드헌팅만으로는 사업이 안 됩니다. 10년을 했지만 손익 분기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아웃소싱 같은 프로젝트가 들어와야 겨우 버티는 겁니다.”
베트남 HR 아웃소싱 시장은 장 대표가 이 사업을 시작하던 2015년 무렵만 해도 초기 단계였다. 미국·유럽·일본계 아웃소싱 기업들은 이미 진출해 있었지만, 한국계 아웃소싱 기업은 사실상 전무했다. 인허가 절차도 외국인에게는 까다로워 합작으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장 대표는 당시 “한국은 5년째 베트남 외국인 투자 1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한국 기업만 대상으로 해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삼구가 맞벌이(Mabao)라는 한국계 아웃소싱 업체를 인수하며 베트남 콜센터 시장에 본격 진출한 것은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시장에서 온라인 채용 플랫폼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1만 명 규모 공장에서 월간 이직률이 10%만 돼도 매달 1,000명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이런 규모를 이력서 검토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사지 멀쩡하고 근태만 기본이 되면 뽑는 구조”에서는 농촌 지역 학교 네트워크를 직접 관리하거나, 공장 앞에 현수막을 거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다.

두 번째 통로: 채용 플랫폼(화이트칼라)

사무직·IT·마케팅·영업 같은 시내 근무(씨티잡) 채용은 맨남웍스(VietnamWorks), 커리어빌드(CareerBuild), 탑CV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영역이다. 장 대표는 이들 플랫폼의 이용 비용이 “한국 사람인의 열 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력서 열람부터 채용 공고 게시까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한국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 비용 자체가 상당한 진입 장벽이 된다.

세 번째 통로: 헤드헌팅(경력직·관리직)

경력직, 관리자급 이상의 채용은 헤드헌팅의 몫이다. 성공 보수 구조이기 때문에, 추천한 인재가 실제로 입사해야만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성공률은 20~30%에 불과하다.
“진입 장벽이 낮아 보여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가격의 절반, 3분의 1로 치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6개월도 못 버티고 나갑니다. 의뢰를 못 받아요. 이건 볼펜을 사는 거하고 다릅니다. 내 회사의 핵심 인재를 맡기는 건데, 업력 없는 곳에 누가 맡기겠어요.”
장 대표의 거래처 대부분은 중견·대기업이다. “인사 팀장이 자기 머리 안 썩이고, 회삿돈으로 편하게 헤드헌터 부려먹을 수 있을 정도 규모의 회사”가 고객이라는 얘기다. 개인 사업자나 영세 기업이 헤드헌팅 비용을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헤드헌팅은 또한 “온라인만으로 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인 사업이다. 면접 어레인지, 돌발 상황 대응, 입사 후 팔로업까지 실제 업무의 절반 이상이 전화 통화와 현장 방문 같은 오프라인 작업이다. 이력서 데이터베이스도 단순히 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생물입니다. 내가 딱 맞는 후보를 갖고 있어도, 그 사람이 지금 옮길 생각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데이터가 돼 버리는 거죠.”
한국 기업들이 가장 자주 범하는 실수가 바로 이 세 통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장 생산직을 뽑겠다고 플랫폼에 공고를 올리거나, 5년차 경력직 개발자를 인력 파견 업체에 맡기는 식의 ‘채널 오류’ – 한국에서는 다 통했던 방식이지만, 베트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계약서 한 장이 수천만 원의 분쟁으로”

장 대표가 가장 강하게 경고한 대목은 ‘계약 문화의 차이’였다. 전편에서 김 이사가 “일본 기업은 매뉴얼이 치밀하고, 한국 기업은 ‘알아서 해라’ 식”이라고 지적한 문제의 연장선이다. 다만 장 대표는 이를 단순한 업무 스타일의 차이가 아닌, 법적 리스크의 문제로 환산해 보여줬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계약 문화가 느슨하다. 근로계약서에 직무를 ‘인사 담당’이라고 한 줄 적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조율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의 유산으로 서구식 계약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나라다.
“일본이나 유럽 기업은 계약할 때 업무 내역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명기합니다. ‘당신의 업무는 1번부터 15번까지이고, 이 범위 밖의 일은 별도 협의 사항이다’ – 이렇게 해 놓으면 문제가 생겨도 대처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두루뭉술하게 적어 놓으니까, 직원이 ‘이건 내 업무가 아니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장 대표는 과거 아웃소싱 업계 인터뷰에서도 같은 경고를 한 바 있다. “언어와 관습이 다른 나라에서 무조건 한국식으로 밀어붙이다 문제가 되는 사례를 수없이 보았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려면 현지 근로자들에 대한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 한 한국 제조업체 사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해당 업체는 종업원 100명 이상 규모에 한국 본사도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다시 1년 기간을 설정했다. 베트남 노동법상 기간 설정이 가능한 근로계약은 두 번까지이고, 세 번째부터는 반드시 무기한(종신) 계약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회사는 1년 후 해당 직원에게 퇴사를 통보했고, 직원은 곧바로 고소했다. 결과적으로 변호사 비용에 합의금까지, 원래 한두 달치 급여로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 6개월치 급여를 물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인사과 직원들이 있었는데, 이 기본 중의 기본을 놓쳤어요. 한국식으로 ‘뭐, 계약서에 뭐가 적혀 있든 현장에서 잘 하면 되지’라는 태도가 불러온 결과입니다. 베트남에서는 그 계약서 한 장이 수천만 원의 분쟁으로 번집니다.”
전편에서 김 이사가 언급한 수습기간 60일 규정(61일째 자동 정규 전환)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 관리자에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느껴지는 조항이, 베트남 법정에서는 회사의 귀책사유를 결정짓는 핵심 근거가 된다.
장 대표는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실용적 팁도 제시했다. “베트남 진출 전에 한국에 유학 중인 베트남 학생이나 베트남 출신 다문화 가정 자녀를 현지 사무소 직원으로 선발해, 한국에서 1~2년 실무를 경험시킨 뒤 현지에 배치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국 본사의 업무 방식과 베트남 현지 감각을 동시에 아는 인재가 있으면 계약 실수 같은 건 크게 줄일 수 있어요.”

제조업 인력난, “1980년대 한국이 보인다”

장 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사람을 못 구하겠다”고 호소할 때, 그 절반 이상은 제조업 현장직 구인난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1993년 가방공장 법인장으로 부임해 12년간 수천 명의 현장 직원을 관리한 경험에서 나온 진단이다. 당시만 해도 공장 앞에 사람이 줄을 섰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도 1980년대 후반부터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현상이 시작됐잖아요. 베트남도 벌써 그 단계에 진입한 겁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거예요.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호찌민·빈즈엉·동나이 인근에 집중되어 있던 공장들이 중부와 북부 지방으로 분산되면서, 농촌 출신 청년들이 굳이 남부까지 내려올 이유가 사라진 것도 구인난을 부추기는 구조적 요인이다. 예전에는 호찌민 근교 공장에서 일해야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고향 근처에도 공단이 들어서 있다. 기본급 차이는 크지 않은데, 호찌민의 생활비 – 집세, 교통비, 식비 – 는 고향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높다.
“고향에서 부모님 집에 살면서 동네 공장에 다니는 게, 호찌민에 올라와서 방 구하고 생활비 내면서 공장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나은 셈법이 된 거죠. 시골 청년들이 더 이상 호찌민으로 안 내려옵니다.”
전편에서 김 이사가 전한 ‘중국 기업의 라인 빼가기’도 장 대표는 현장에서 확인했다. “중국 애들은 돈 질을 잘합니다. 20~30% 급여를 확 올려주고, 친구 소개하면 보너스도 파격적으로 주고 – 한국 업체들은 그렇게 못 하니까 당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다만 장 대표는 “한국 기업이 그렇게 안 하는 게 오히려 맞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중국식 ‘빼가기’는 단기적 해법이지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 대표가 처음 베트남에 왔던 1993년, ‘세계의 공장’은 중국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중국의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제조업체가 베트남으로 이동했다. 한국은 베트남 외국인 투자 1~2위를 다투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지금 베트남도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건비가 오르고, 젊은이들이 공장을 떠나고, 그 빈자리를 채울 곳은 마땅치 않다. 미얀마는 내전, 캄보디아·라오스는 인프라 부족, 방글라데시는 생활 여건이 극단적으로 열악하다. 장 대표의 진단은 명확하다. “대체지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베트남에서 버텨야 하는 건데, 버티려면 인력 관리의 질을 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졸 신입이 진짜 힘들다”…역설의 반대편

블루칼라 구인난과 정반대로, 사무직(화이트칼라) 시장은 구직자가 힘든 상황이다. 장 대표는 “베트남 사무직 취업 시장도 지금 굉장히 어렵다”며 “특히 대졸 신입들이 진짜 힘들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경력직 위주로 채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신입의 설 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베트남 로컬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조업은 사람이 남아돌지 않는데, 대학 졸업자가 원하는 ‘씨티잡’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이 구조적 미스매치가 청년 실업률 10%와 공장 구인난이 공존하는 역설의 정체다.
장 대표는 오히려 이 시점이 기회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요즘 같은 때 신입을 뽑으면, 역설적으로 똘똘한 인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다들 경력직만 찾으니까 우수한 신입들이 묻혀 있는 거예요.”
전편에서 김 이사가 강조한 ‘한국어+α’ 인재 부족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장 대표 역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운전기사면 돈 더 받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재무 담당자면 아무나 못 구한다 – 결국 ‘언어+전문성’의 문제”라고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한국어 하나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AI가 바꾸는 게임…”도제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장 대표는 최근 자사에 AI 개발 인력을 채용하고, 기존 HR 업무에 AI를 접목하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고객사의 HR 프로세스 자동화를 컨설팅해주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한국 구직자 대상 무료 AI 교육 프로그램도 이달부터 시작했다. 주 3회, 5주 과정으로 AI 리터러시(이해도)부터 AI 에이전트 활용, 업무 자동화까지 실무 중심 커리큘럼이다.
“앞으로 기업들이 AI를 아는 직원을 채용하려 할 겁니다. 제가 이 교육을 시작한 것도 그 준비를 돕기 위해서예요.” 교육은 베트남인 강사가 진행하되, 한국어 교재를 미리 배포하고 스크린에 한국어·영어를 병기해 언어 장벽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의 전망은 전편에서 김 이사가 내놓은 진단과 정확히 겹친다. 엔터프라이즈 AI 번역 서비스 한 달 이용료가 300달러 안팎인 시대에, ‘한국어만 할 줄 아는’ 통역 인재의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판교에서 IT 신입을 안 뽑는 시대가 왔잖아요. 베트남도 예외가 아닙니다.”
장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전망까지 내놓았다. “앞으로는 도제처럼 신입이 돈을 내고 회사에 다녀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관리자 하나에 실무자 다섯 명이 붙던 팀이, 관리자 하나에 실무자 한두 명과 AI로 돌아가는 거예요. 신입 자리가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겁니다.”

한국 주재원 급여,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 주재원의 급여 동향이다. 베트남 현지 채용 한국인 관리직(과장~부장급)의 급여가 예전보다 오히려 하향 추세라는 것이 장 대표의 관찰이다.
“코로나 이후 제조업체들이 다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관리직 매니저급들 급여가 조금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신입의 경우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면 월 2,000달러 정도, 제조업 현장이 힘든 곳은 2,300~2,500달러까지도 줍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기업들이 예전만큼 쓸 여유가 없어요.”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싶고, 구직자는 더 나은 조건을 원한다. 양쪽의 기대치가 좁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빈자리만 늘어나는 구조다.

“윈윈? 솔직히 그럴 여유가 없다”

인터뷰 말미, ‘한국 기업과 베트남 인재가 윈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장 대표는 솔직한 답을 내놓았다.
“요즘은 한 직장에 오래 있지 않는 게 오히려 트렌드예요. 한국에서도 2~30대는 3년마다 옮기는 게 커리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베트남은 더합니다. 직원이 오래 있으면 좋죠. 그런데 구직자들 자체가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처한 현실적 제약도 짚었다. “해외에 나와서 외국인 입장에서 현지인을 채용하고, 경기도 안 좋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익을 내야 하는데, 직원 복지를 생각하며 서로 윈윈하자-그런 여유를 가진 회사가 많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알기로는요.”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진단이다. 전편에서 김 이사가 제시한 ‘매뉴얼화’와 ‘이벤트 문화 노출’이 이상적 처방전이라면, 장 대표의 조언은 좀 더 현실의 바닥에 밀착해 있다. 그렇다면 이 제약 안에서 한국 기업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계약서를 제대로 쓸 것. 직무 기술서를 하나하나 명기하고, 근로계약 갱신 규정을 정확히 지킬 것. 한국식 두루뭉술함이 베트남에서는 법적 분쟁으로 직결된다.

둘째, 채용 채널을 정확히 분리할 것. 공장 생산직에 온라인 플랫폼을 쓰거나, 경력직 관리자를 인력 파견 업체에 맡기는 식의 채널 오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셋째,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할 것. 회사 규모, 복지, 근무 환경, 급여 수준을 구직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출해야 한다. 정보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

넷째, 현지를 아는 인재를 미리 키울 것. 베트남 유학생이나 다문화 가정 자녀를 한국에서 1~2년 훈련시킨 뒤 현지에 배치하면, 계약 실수와 문화 충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장 대표는 개인적 소망도 하나 밝혔다. “베트남에 직업학교를 만들어서 베트남 사람들의 취업을 돕고 싶습니다. 동시에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베트남에 진출한 전 세계 기업에 취업시킬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한국과 베트남의 가교가 되는 거죠.” 33년간 베트남의 노동 현장을 관통한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실렸다.
인터뷰를 마치며 장 대표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헤드헌팅을 10년 했지만, 지금도 버티고 있는 겁니다. 이 시장은 쉽지 않아요. 그런데 기업들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만 구하면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겁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 자체가 경영의 핵심 역량이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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