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말의 무게

무심코 SNS를 보다가 한 사진 속에 흥미로운 글을 보았습니다.
言出如箭 前不可輕發 一入人耳 有力難拔
“말의 화살을 가벼이 던지지 말라. 한번 사람의 귀에 박히면 힘으로는 빼낼 수 없다”
13세기 중국의 극작가인 왕실보라는 분이 쓴 글인데, 의미가 깊지 않습니까?
말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통하는 이야기지요. 특히 저같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쉽게 말을 내뱉는 인간에게는 좋은 반성의 시간도 줍니다.
제가 그러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도 있지만 이기적이기도 하지요. 남의 말만 듣고 자신은 내 보이지 않는 사람. 그래서 존경하긴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지요. 만날 때마다 늘 나만 손해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말은 묘한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말들은 너무 가벼워서 금세 흩어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너무 무거워서 온종일 마음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들은 말 한 마디가 평생을 맴도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는 날, 집으로 돌아와 동네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그만 다리가 뿌려져 6개월을 쉰 적이 있었습니다. 6개월 후 학교를 가보니 다른 아이들은 다 한글을 익히고 읽고 쓰는데 저만 몰랐지요. 그 당시 선생님이 한글을 모르는 저를 보고 “우리 반에 지진아가 하나 생겼구나” 하던 말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중학교 3년 시절,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이 좋아서 열심히 듣던 과목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선생님이 내린 지진아의 판결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공부와는 거리가 있었지요. 어느 날 그 선생님이 불시에 주관식 시험을 치렀는데 제 답안을 한참 들여다보고는 “너는 천재적 머리를 갖고 있구나” 하며 칭찬을 합니다.
그냥 어린 학생에게 시험을 잘 본 것에 대한 의례적인 칭찬일 수 있지만, 저는 그때 믿어지요. 아, 나도 공부를 하면 잘 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그리고 얼마 후 제 자신도 놀랍게도 학급에서 1등을 합니다. 제 인생에 유일한 1등 사건이었죠. 아무튼 그 여자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10년 간의 지진아 수렁을 빠져나옵니다.

말은 이렇게 한 인생을 풍비박산 내기도 하고, 치유를 주기도 합니다. 결국 말의 핵심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을 합니다. 하지만 더욱 본질적인 과제는 따로 있습니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기보다 먼저 심성을 곱게 닦아야 고운말이 나오고, 점잖은 태도를 지녀야 점잖은 말이 나옵니다. 늘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심성이 거칠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 역시 속에 분노를 담고 사는 공격적인 사람입니다. 말에 앞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우선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자연히 정제된 언어가 나오겠지요.
요즘처럼 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흔치 않은 듯합니다. 도저히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득세를 하는 세상을 보면 그간 배운 것이 무너지는 듯한 혼란이 옵니다. 말조차 조심하지 않는 사람이 이끄는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우려스럽습니다. 육두문자가 섞인 거친 말이 용기나 남자다움의 표현이라고 믿는 치기 어린 사람들, 그런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역시 심성이 궁금합니다.
이에 더하여 또 하나 우려되는 사회적 이상 현상이 있습니다. 말보다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인데, 젊은 여성들이 음성을 꾸면서 말합니다.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쇠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연예인이나 SNS 인플루언서 중에도 그런 목소리를 꾸며 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재주가 좋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 소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줄 모르나 듣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듣는 이는 ‘꾸밈’이 느껴져 오히려 마음이 멀어집니다. 말과 목소리는 마음의 솔직한 표현인데, 목소리까지 억지로 꾸미면 마음 역시 꾸겨집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한국어인데,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소리를 들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말에 대한 경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에도 있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3:8)
말에 대한 일상적인 경고이긴 하지만, 성경도 말이라고는 안 했습니다. 혀라고 표현했지요. 혀는 인간이 몸이고 그를 관리하는 건 인간이니 말을 표현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즉 어떤 말을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하고 삼가하라는 표현보다 “말을 곱고 긍정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라” 는 표현이 더욱 적절한 가르침이 아닐 까 싶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의 순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감사의 말, 긍정의 말이 그것입니다. 이왕 하는 말, 곱고 긍정적인 언어를 구사하자는 것입니다. 말없이 전해지는 진심도 값어치 있지만,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사람 사이에 가장 효과적인 소통방식은 역시 “말”입니다.
마음으로 느낀 감사함을 말로 표현하지 않은 것은 선물을 주려고 포장을 한 후에 전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말을 아끼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선한 말이 주는 행복도 즐길 만합니다.
서로 배려하고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친구들과 악의없는 대화로 나누는 수다가 주는 행복을 아시나요? 그런 선한 말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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