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직장(너무 크면 들어가기 어려우며, 스트레스가 심할것이고, 너무 작으면 급여가 작아 생활이 힘들 거니까)에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손을 잡으면 전기가 ‘찌리릿’하고 통하고, 말이 잘 통하는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들딸 구별없이 하나에서 둘 낳아서 키우며, 퇴직 전에 자식들 결혼시키고,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넉넉한 연금을 받으며 건강한 몸으로 평균 연령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렵냐?’ 라는 말을 자주, 아주 자주 하며 살게 됩니다.
일단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으니, 인생은 시작 부터가 뽑기입니다. 어렸을때는 눈코입의 생김새부터 배열 상태, 뼈의 길이를 가지고 부모님 원망을 많이 하는데, 중년을 넘기면 혈압, 당뇨, 뇌혈관, 심장 혈관 질환 문제로 부모님과 나의 끈끈한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능력 위주의 현대 사회라 할지라도 ‘조상덕’과 ‘조상탓’을 생각 안 할수가 없습니다.
조상신을 모시는 유교가 나름의 합리성을 갖추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자기가 계획한 대학과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별로 없듯이, 자기가 계획한 직장과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연애할때는 손에서 전기가 찌리릿 통하고 말도 잘 통했던 연인이 결혼후에는 전기도, 말도 안 통하게 된 부도체가 되는 이유를 반도체 회사 연구원은 알고 있을까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는 생각보다 내 맘처럼 자라지 않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했던 그대로 그 아이가 나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도, 포기도 빠르겠지요.
나의 퇴직전에 자식이 결혼하는 것은 커녕, 결혼을 안하겠다는 ‘비혼선언’만 안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입사할때 뼈를 묻겠다는 맹세를 강요했던 회사는 언제부턴가 내가 뼈를 묻을까봐 걱정하며, 몸값 대비 실적, 즉 가성비를 따지며 매년 엄격한 평가잣대를 들이댑니다. 조금이라도 조직에 더 머물고 싶은 사람들은 서로 패거리를 만들어 같은편끼리는 밀어주고 끌어주고, 다른편은 밀어내고 끌어내리는 일을 편을 바꾸어 가며 반복합니다. 소위 사내정치라는 것인데, ‘정무감각 부재’는 중년의 회사원에게 중요한 퇴직 사유가 됩니다.
건강한 식습관, 운동습관, 금융지식이 없이 맞이한 노년은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하게 된 ‘암수술을 앞두고 있는 65세 ooo씨’가 될 수 있는 거죠. 평범하게 살기 참 어렵죠?
오늘 함께 얘기하게 될 ‘스토너’의 주인공 스토너씨는 1891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태어나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고, 1차 세계대전 기간에 박사학위를 받고 영문학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조교수로 강단에 섰던 한 미국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1차 세계 대전, 세계 대공황,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속에서 미국이 산업화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하며,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등극하는 드라마틱한 시기입니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족 최초로 대학교육을 받고 영문학자가 되어 이 드라마틱한 시기를, 소설 독자의 눈으로 볼때는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게 보냅니다.
농촌을 탈출하여 록펠러처럼 거대한 기업가가 된 것도 아니고, 1,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도 아니었고, 대공황 시기에 극적인 가난을 경험하거나 그것을 뒤집는 반전 같은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는 대학 강사였고, 조교수로 승진하며 대학에서 계속 강의를 하였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진주만’ 등 각종 전쟁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위대한 게츠비’, ‘에덴의 동쪽’ 등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이들의 사랑과 야망을 다룬 미국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 비해 너무나 평범하여 ‘이게 소설이 맞나?’라는 생각이 읽는 도중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난후의 여운이 오래 오래 가는 책입니다.
극적인 재미는 없지만, 인생과 일상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유지되면서, 공감으로 인한 몰입이 유지되는 책입니다. 이 책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다지 극적이지 않은 ‘나의 인생’을 받아들이게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이 출판(1965년)된지 50년이 지난 2013년부터 유럽 및 미국 도서 시장의 재평가를 통해, 역주행을 시작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이르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2015년에 출판된 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2021년쯤 읽었는데, 올해초 한국 방문시 교보문고에서 여전히 순위권 안에 있는 서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내 삶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불만이 들때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10%라면 나머지 대부분 90%의 시간은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이 현실을 딛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소한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더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겠다’라는 굳은 결심이 오늘도 우리를 삶이라는 전쟁터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주문, 부적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가진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평범한 삶 같은 것은 없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삶을 ‘평범하다’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각자 다른 조건과 출발선에서 시작하여, 노력을 통해 습득한 자기만의 무기를 통해 각자의 전쟁을 치뤄 가는 것이 인생인것 같습니다.
사회적 성취, 화목한 가정, 재산, 자녀 교육, 자아 실현, 육체적 정신적 건강 등 워낙 전선이 넓게 펼쳐져 있는 이 전쟁에선 일방적인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이기기로 결심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고 그는 그 전쟁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평범한 영웅’ 스토너를 만나보고 싶은 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