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서 목격한 ‘AI 전쟁’의 실체

폭스콘·엔비디아 손잡고 제조업 혁명 선언…”3년 걸리던 일 매시간 처리”

대만 타이베이(Taipei)에서 21일 막을 내린 아시아 최대 기술박람회 ‘컴퓨텍스 2025(COMPUTEX 2025)’는 인공지능(AI)이 이미 모든 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8만㎡ 전시장 곳곳에서 ‘AI’ 간판을 걸지 않은 부스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반도체 대기업부터 무명 스타트업까지 모든 참가업체가 AI 기술 통합을 앞세워 제품을 선보였다. AI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닌 현재진행형 비즈니스 도구가 됐다는 방증이다.

폭스콘 회장 “젠슨 황과 그린 그림 한 장이 시작”

이번 컴퓨텍스의 백미는 단연 폭스콘(Foxconn) 영 리우(Young Liu) 회장의 기조연설이었다. 그는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NVIDIA) CEO와 함께 손으로 그린 그림 한 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며 1년 반간의 ‘AI 팩토리’ 구축 여정을 공개했다. 폭스콘이 야심차게 내놓은 ‘제네시스(Genesis)’ 프로젝트는 제조업 혁명의 청사진이다. 물리적 공장·디지털 트윈·AI 공장이라는 3단계 구조로, AI가 업무의 80%를 처리하고 숙련 기술자는 나머지 20%에만 집중하는 시스템이다. “과거엔 공장을 짓고 나서 시운전을 했지만, 이제는 엔비디아 옴니버스(Omniverse)에서 미리 설계하고 AI가 수천 번 시뮬레이션해 최적 조건을 찾은 뒤 실제 공장을 만든다”고 영 회장은 설명했다.

자체 AI ‘폭스브레인’ 개발, 100MW 데이터센터도

폭스콘의 준비는 철저했다. 자체 AI 모델 ‘폭스브레인(Foxbrain)’을 개발해 제조 현장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라마(LLaMA) 3·4 같은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폭스콘이 축적한 산업 데이터를 학습시킨 결과물이다.
100메가와트(MW)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20MW부터 시작해 40MW씩 두 차례 확장할 계획이다. 영 회장은 “단순 저장소가 아닌 폭스브레인과 스마트 플랫폼이 실시간 학습하는 두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조연설 도중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깜짝 등장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젠슨 황은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산업 그 자체”라며 “폭스콘이 AI 팩토리로 수조 달러 규모의 새 산업을 창조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두 CEO의 대담에서 핵심은 협업의 성과였다. 젠슨 황은 “우리가 함께 만든 AI 슈퍼컴퓨터는 기존에 3년 걸리던 일을 매시간 처리한다”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없이도 AI 학습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흥미롭게도 대담은 젠슨 황의 17세 연애담으로 마무리됐다. “오리건대(Oregon University) 전기공학과 250명 중 여학생이 3명뿐이었는데, 58kg 마른 몸의 내가 지금 아내에게 ‘숙제 좀 봐줄래?’라고 용기 내어 말 걸었던 게 나의 슈퍼파워였다”는 고백에 장내가 웃음바다가 됐다.

번역기부터 골프 시뮬레이터까지 AI 무차별 침투

전시장에서는 25개 이상 AI 적용 제품이 쏟아졌다. 업종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확산이 눈에 띄었다.
보안 분야에서는 시놀로지(Synology)가 지능형 영상감시 시스템을, 아이라(Aira)가 머신러닝 사이버보안 솔루션을 내놓았다. 아텐(Aten)의 텍스트 음성변환 기술은 사람 목소리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로봇 분야에서는 링커 비전(Linker Vision)이 엔비디아와 손잡고 재해 관리용 도시 매핑 시스템을 시연했다. 니스컴 테크놀로지(Nicecom Technology)는 거동 불편자용 보조 로봇 팔을 선보였다.
심지어 벤큐(BenQ)의 골프 시뮬레이터, 체스넛(Chessnut)의 AI 체스게임까지 등장했다. 아수스(ASUS)는 젠폰(ZenFone)에 AI를 집적했고, ROG는 전시장 안내용 가상 어시스턴트 ‘옴니 더 챗봇(OMNI the Chatbot)’을 배치했다.

대만, 반도체 넘어 AI 허브로 부상

이번 컴퓨텍스 2025는 대만이 ‘세계의 공장’에서 ‘AI 혁신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과거 대만이 반도체 제조와 전자제품 조립에 특화됐다면, 이제는 AI 기술 개발과 적용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대만 정부도 이러한 변화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전력 인프라 확충을 통해 AI 데이터센터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대학과 기업 간 AI 연구개발 협력을 촉진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특히 폭스콘의 100MW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대만의 AI 허브 구축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엔비디아, 폭스콘 외에도 미디어텍(MediaTek), 아수스(ASUS), 에이서(Acer) 등 대만의 주요 기술기업들이 모두 AI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들 기업의 AI 기술 투자 규모는 올해만 전년 대비 20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기술 트렌드의 나침반 역할 재확인

37년 역사의 컴퓨텍스가 다시 한번 글로벌 기술 산업의 방향타 역할을 증명했다. 1988년 PC 시대의 전령사 역할을 했던 컴퓨텍스는 이후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 등 매 시대 기술 혁신의 현장이었다.

이번 AI 중심의 컴퓨텍스 2025는 향후 5-10년간 글로벌 기술 산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는 박람회를 넘어, 기술 생태계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컴퓨텍스에서 제시된 AI 팩토리, 스마트시티, 물리적 AI 등의 개념들이 향후 2-3년 내 상용화되면서 전 세계 산업 지형을 바꿀 것”이라며 “대만이 이러한 변화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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