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 컴퓨텍스 2026(COMPUTEX 2026)

“AI Together”, 모든 것이 지능을 갖기 시작했다

해마다 6월 초 대만 타이베이는 전 세계 IT 업계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는 도시가 된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6월 2일부터 5일까지 난강 전시장과 타이넥스(TaiNEX) 일대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은 1,500개가 넘는 기업과 6,000여 개 부스가 들어선, 예년보다 한층 커진 규모로 막을 올렸다.
한때 PC와 주변기기 위주의 행사였던 이곳은 이제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로봇, 모빌리티를 아우르는 무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올해의 주제는 단출하면서도 야심만만했다. “AI Together.” 모든 것이 지능을 갖기 시작했다는 선언이다.

노트북을 다시 발명하겠다는 칩, ‘RTX 스파크’

올해 행사의 주인공은 단연 엔비디아(NVIDIA)였다. 엔비디아는 “PC를 재발명하겠다”고 선언하며 그 무기로 새로운 슈퍼칩 ‘RTX 스파크(RTX Spark)’를 공개했다. 최대 1페타플롭(1초에 1,000조 회 연산)의 AI 성능과 최대 128GB 통합 메모리를 지원하는 이 칩은,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노트북에서 직접 대규모 언어 모델과 AI 에이전트를 구동하도록 설계됐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이 칩을 품은 차세대 초경량 노트북 제품군을 올가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마크 린톤(Mark Linton) MS 윈도·디바이스 세일즈 부문 부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윈도11의 전 세계 일일 활성 사용자가 10억 명을 넘어섰다고 강조하며, AI 추론 수요가 클라우드에서 엣지(edge)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RTX 스파크는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Surface) 제품군은 물론 에이수스, 델, HP, 레노버, MSI 등 주요 파트너사 노트북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한 발 더 나아가 ‘윈도용 세계 최강 데스크톱 AI 슈퍼컴퓨터’를 표방한 DGX 스테이션(DGX Station)도 선보였다. GB300 그레이스 블랙웰 울트라(Grace Blackwell Ultra) GPU와 72코어 엔비디아 그레이스 CPU, 748GB 메모리를 갖춰 최대 1조 개 파라미터 규모의 AI 모델을 윈도 PC에서 돌릴 수 있다. 올해 말 출시 예정이다.

에이수스, 손바닥 위에 올린 ‘AI 페타플롭’

엔비디아의 행보에 가장 발 빠르게 호응한 곳은 에이수스(ASUS)였다. 에이수스는 가장 적극적으로 신제품을 쏟아낸 업체 중 하나로, 노트북 익스퍼트북 울트라(ExpertBook Ultra)를 비롯해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자리에 펼쳐 놓았다.
익스퍼트북 울트라는 인텔의 최상위 코어 울트라 X9(Core Ultra X9) 프로세서와 50 TOPS(초당 50조 회 연산)급 NPU를 갖추고도 무게 0.99kg, 두께 10.9mm에 그쳤다. 14인치 탠덤 OLED(Tandem OLED) 3K 터치 디스플레이, 최대 64GB LPDDR5X 메모리, 미군 표준(MIL-STD-810H) 내구성까지 챙겼다.
개인용 AI 컴퓨터를 표방한 어센트 GX10(Ascent GX10)도 주목할 만하다. 엔비디아 GB10 그레이스 블랙웰 칩과 128GB 통합 메모리를 탑재해 페타플롭급 연산을 손바닥만 한 본체에서 구현했다. 여기에 NPU 80 TOPS와 스냅드래곤 X2 엘리트(Snapdragon X2 Elite)를 얹은 미니 PC 어센트 QN10(Ascent QN10)까지, 에이수스는 ‘개인을 위한 AI’라는 키워드를 분명히 했다. 다만 대부분 제품의 판매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300달러 노트북 시대를 여는 퀄컴 ‘스냅드래곤 C’

화려한 고성능 칩의 향연 속에서, 퀄컴(Qualcomm)은 정반대 방향에서 시선을 끌었다. 저가형 칩 스냅드래곤 C(Snapdragon C)다. ‘C’는 ‘컴퓨트(Compute)’의 약자다. 최신 오라이언(Oryon) 코어 대신 구형 크라이오(Kryo) 코어를 써서 원가를 낮췄다.
퀄컴 측은 이 칩을 쓴 기기도 빠른 반응성과 하루 종일 가는 배터리, 조용한 무팬 구동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소규모 모델 한정이긴 하나 로컬 AI 구동도 지원한다. 외신은 스냅드래곤 C가 300달러대 윈도 노트북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부품값 상승으로 노트북 가격이 계속 오르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셈이다. 에이서, HP, 레노버가 초기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첫 제품은 에이서 아스파이어 고 15(Acer Aspire Go 15)다.

맥북 네오에 맞불 놓은 에이서 ‘스위프트 에어 14’

올봄 애플이 공개한 보급형 노트북 맥북 네오(MacBook Neo)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화제를 모았고, 보급형 노트북 시장에 새로운 전선을 열었다. 에이서(Acer)는 이번 컴퓨텍스에서 스위프트 에어 14(Swift Air 14)로 정면 응수했다.
이 제품은 맥북 네오의 약점으로 지목되던 부분들을 대부분 메웠다. 키보드 백라이트, 120Hz 주사율 화면, 그리고 더 넉넉한 램이 그것이다. 통 알루미늄 보디에 무게 1.19kg, 두께 12.99mm로 휴대성을 갖췄고, 180도까지 펼쳐지는 힌지를 적용했다. 14인치 IPS 패널은 1,920×1,200 해상도에 sRGB 100% 색역을 재현하며, 맥북 네오의 60Hz를 넘어서는 120Hz 주사율을 지원한다.
성능 면에서는 최신 인텔 코어 시리즈(Core 3·5·7)를 선택할 수 있고, 램은 최대 16GB까지 제공된다. 단일 8GB 구성뿐인 맥북 네오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AI 비서 도구 에이서 인텔리전스 스페이스(Acer Intelligence Space), 듀얼 마이크 잡음 제거 기술 퓨리파이드 보이스(Purified.Voice)도 함께 담겼다. 70Wh 배터리로 영상 재생 최대 19시간을 버틴다. 다만 베트남 출시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한층 두꺼워진 ‘한국 기업’의 존재감

올해 컴퓨텍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한국 기업들의 약진이었다. 공식 집계 기준 한국 참가 기업은 39개사. PC 제조사 중심이던 과거와 달리, AI 서버 투자 확대와 함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업용 SSD, 첨단 패키징 장비, AI 반도체 기업들이 대거 대만을 찾았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한미반도체, 파두 등이 글로벌 고객사 확보에 나섰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행보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에 이어 웨이저자(魏哲家) TSMC 회장과도 이틀 간격으로 연쇄 회동하며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로 이어지는 AI 반도체 삼각동맹을 한층 다졌다. 젠슨 황은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7세대 HBM(HBM4E)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 달라(Please Make More)”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AI 칩 수요 최전선에 선 인물이 메모리 업체 부스에서 증산을 요청한 이 장면은, 지금 AI 인프라 생태계에서 고성능 메모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딥엑스(DEEPX)의 행보도 두드러졌다. 올해로 4회째 참가한 딥엑스는 AI 반도체 ‘DX-M1’을 자사 부스뿐 아니라 어드밴텍, 애즈락, MSI 등 30여 개 글로벌 파트너사 부스에서 함께 전시하며 양산 단계 진입을 알렸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올해 매출 목표를 600억 원으로 제시하며, “2030년쯤이면 누구나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컴퓨텍스의 또 다른 핵심 화두가 바로 이 ‘피지컬 AI’였다. 로봇과 드론, 스마트팩토리 등 실제 산업 현장에서 AI가 작동하는 시대를 가리킨다.

삼성디스플레이, 더 얇아진 노트북 OLED

삼성디스플레이(Samsung Display)는 노트북용 ‘초박형’ OLED 패널을 선보였다. 양산 중인 기존 노트북 OLED 대비 외곽 베두께를 약 20% 줄인 제품이다. 수치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이지만, 노트북 세계에서 단 몇 밀리미터를 깎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화면의 작은 변화 하나가 프레임 구조, 내구성, 방열 시스템, 배터리 공간, 그리고 사용 경험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TFT 기판 유리와 외부 커버 유리 두께를 30% 이상 줄여 이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얇아질수록 휘거나 변형되기 쉬운 만큼, 내구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 공정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165~240Hz 주사율과 비자(VESA) 디스플레이HDR 트루 블랙 1000 인증이라는 고급 사양은 그대로 지켰다. 다만 어떤 상용 노트북에 언제 적용될지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화제의 부스, MSI – 33kg 케이스와 스타워즈 그래픽카드

전시장에서 가장 붐빈 부스 중 하나는 MSI였다. 검정 바탕에 RGB 조명을 더한 익숙한 연출 속에 PC 마니아를 위한 ‘끝판왕’ 하드웨어가 가득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플래그십 케이스 멕 마에스트로 900R(MEG MAESTRO 900R)이었다. CNC 알루미늄 프레임과 곡면 강화유리를 결합한 이 케이스는, 빈 프레임만으로도 무게가 약 33kg에 달한다. 세 면에 4mm 두께 강화유리를 두르고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쓴 결과다. E-ATX 대형 메인보드와 420mm 라디에이터 2개, 최대 14개의 팬을 수용한다.
VGA(그래픽카드) 코너는 또 다른 화제였다. MSI는 플래그십 카드 대신 게임·영화·애니메이션과 협업한 지포스 RTX 50 시리즈를 다수 내놓았다. 스타워즈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를 입힌 ‘RTX 5080 만달로리안 앤 그로구 에디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테마의 ‘RTX 5070 미드나잇’ 시리즈,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葬送のフリ-レン)을 담은 ‘RTX 5070 Ti 프리렌 에디션’ 등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모두 엔비디아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와 DLSS 4.5를 기반으로 한다.
MSI는 디스플레이에서도 신기술을 과시했다. QD-OLED 5단 적층 구조 펜타 탠덤(Penta Tandem)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27인치 게이밍 모니터 ‘MAG OLED 271QPX32’, 5K 180Hz와 2K 330Hz를 오가는 듀얼 모드(Dual Mode) 미니 LED 모니터 ‘MAG 271KRAW18’ 등이 그것이다. 소프트웨어 없이 화면만으로 작동하는 AI 게이밍 모니터 MEG X도 선보였다.

시놀로지, ‘AI를 품은 데이터 금고’

스토리지 전문 기업 시놀로지(Synology)는 순수 저장 브랜드를 넘어 ‘지능형 데이터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핵심은 보안과 데이터 통제권이다.

차세대 운영체제 DSM은 GPU를 내장한 스토리지를 통해 기업이 데이터를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사내에서 직접 AI 분석과 대응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대규모 운영을 한 화면에서 관리하는 클러스터 매니저(Cluster Manager), 다거점 일괄 배포를 돕는 매스 디플로이먼트(Mass Deployment)도 함께 제공된다. 데이터 보호 플랫폼 액티브프로텍트 매니저 2.0(ActiveProtect Manager 2.0)은 AWS EC2, 애저(Azure) VM, 구글 워크스페이스 등 다중 클라우드·가상화 환경으로 보호 범위를 넓혔고, 머신러닝으로 랜섬웨어를 조기에 탐지한다.
이 밖에 출입 통제와 영상 분석을 아우르는 보안 생태계, 사내 메신저 챗플러스(ChatPlus)와 화상회의 도구 미트(Meet)를 더한 시놀로지 오피스(Synology Office Suite), 개인·가정용 클라우드 비 시리즈(Bee Series)까지 라인업을 넓혔다. 필립 웡(Philip Wong) 시놀로지 회장은 “데이터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제품의 중심이며, 신뢰가 그 토대”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지능을 갖기 시작하는 시대

올해 컴퓨텍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AI가 더 이상 데이터센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 노트북 칩에서, 그래픽카드에서, 모니터와 스토리지에서, 심지어 사무용 메신저에서까지 ‘AI’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클라우드에 의존하던 연산이 손안의 기기로 내려오고, 생성형 AI를 넘어 로봇과 공장으로 향하는 ‘피지컬 AI’가 다음 화두로 떠올랐다.
베트남에서 이들 제품을 손에 쥐기까지는 시차가 있을 것이다. 가격도, 정식 출시 일정도 아직 안갯속인 제품이 많다. 하지만 호찌민시의 전자상가 유통망에 이 신기술들이 모습을 드러낼 날은 그리 멀지 않다. 타이베이에서 켜진 불빛은, 머지않아 이곳의 진열대에서도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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