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달 볼 만한 극장 영화와 OTT 작품을 골라 소개하는 엔터테인먼트 코너. 6월 극장가에는 좀비 장르의 새 지평을 여는 한국 영화가, 안방극장에는 냉전 시대의 우주 경쟁을 파고드는 스핀오프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다.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 이후 다시 한번 좀비 유니버스를 확장한 ‘콜로니(Colony)’는 호찌민 시내 CGV에서 개봉하며, ‘포 올 맨카인드(For All Mankind)’의 세계관을 소련 측 시점에서 뒤집어 보는 ‘스타 시티(Star City)’는 애플 TV+(Apple TV+)에서 전 화 스트리밍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극장에서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122분의 생존기와, 철의 장막 너머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우주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볼만한 극장 상영작 (Cinema)
개미의 지능을 가진 좀비 떼가 서울을 점령하다
– ‘콜로니’가 제시하는 공포의 새 문법
연상호 감독에게 좀비란 단순한 공포의 도구가 아니다. ‘부산행(Train to Busan·2016)’에서 계급과 이기심의 은유로, ‘반도(Peninsula·2020)’에서 폐허가 된 사회의 거울로, 그리고 애니메이션 ‘서울역(Seoul Station·2016)’에서 보이지 않는 사회적 타자의 형상으로 좀비를 빚어 온 이 감독에게 좀비 아포칼립스는 곧 인간 본성의 실험실이었다. 신작 ‘콜로니(Colony)’에서 연상호 감독은 네 번째로 그 실험실의 문을 연다. 이번에 그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만약 좀비가 개미처럼 집단 지성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사냥한다면, 인간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6월 12일 베트남 CGV에서 4DX·ScreenX를 포함해 개봉한다.

■ 서울 도심 고층 빌딩, 122분의 수직 생존기
영화는 서울 한복판의 한 고층 빌딩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생화학 테러를 예고한 뒤, 스스로 백신을 주사하고 과거의 복잡한 인연이 얽힌 교수에게 바이러스를 투여한다. 전파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몸이 뒤틀리고 눈이 뒤집힌 감염자들이 건물 안을 기어 다니고 질주하며, 닿는 사람마다 물어뜯고 찢어 감염시킨다. 마침 같은 건물에서 컨퍼런스에 참석 중이던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 분)은 이 지옥도를 목격하고, 과학적 추론을 무기 삼아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시작한다.
‘부산행’이 달리는 기차라는 밀폐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면, ‘콜로니’는 수십 층짜리 고층 빌딩을 수직으로 세운 밀실극이다. 층마다 다른 공간 구조,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라는 제한된 이동 경로, 그리고 옥상이라는 유일한 탈출구. 이 건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서사 구조 그 자체다. 고전적인 ‘그랜드 호텔’ 서사처럼 각 층에서 벌어지는 군상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며, 관객은 이 건물 안에 갇힌 채로 122분을 보내게 된다.
■ 개미의 페로몬을 가진 좀비, 장르의 규칙을 다시 쓰다
‘콜로니’가 기존 좀비물과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은 영화 초반에 제시되는 과학적 청사진이다. 컨퍼런스에서 강우철 교수(김종태 분)는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를 인용하며 개미의 네트워킹 시스템을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한 형태로 소개한다. 영화의 악당 서영철(구교환 분)은 바로 이 원리, 즉 페로몬을 통한 유기적 정보 교환과 다자간 연결의 통합을 인간에게 적용하려는 뒤틀린 과학자다. ‘인류를 다음 단계로 밀어붙이겠다’는 신념 아래 그가 풀어놓은 바이러스는 감염자들을 단순한 좀비가 아닌, 서로 소통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군체(colony)’로 진화시킨다.
고층 빌딩 곳곳에 퍼진 분비물은 뉴런이나 네트워크처럼 작용하여 좀비들이 인간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포위하고, 체계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게 한다. 기존 좀비물에서 감염자들이 소음이나 빛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였다면, ‘콜로니’의 좀비들은 학습하고, 진화하며, 사회적 집단을 형성한다. 대니 보일(Danny Boyle) 감독의 ’28년 후(28 Years Later)’가 기묘한 변이 바이러스로 공포의 질감을 바꿨다면, 연상호 감독은 생태학과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좀비라는 존재 자체를 재정의한다.

■ 전지현의 귀환, 그리고 지창욱의 풀 스로틀 액션
생태학자이자 생명공학자로 등장하는 전지현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Milla Jovovich)에 비견할 만한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CCTV를 통해 건물 내부의 좀비 동선을 파악하고 생존자들에게 전술적 지시를 내리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로 재난에 맞서는 새로운 유형의 주인공상을 제시한다. 김신록이 맡은 CCTV 통제실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로 몰입감이 높다. 빌딩의 눈이 되어 각 층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이 역할은, 관객에게 신(神)의 시점과 개미 한 마리의 시점을 동시에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특히 지창욱의 후반부 액션은 영화 전체의 아드레날린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맨손과 칼 한 자루만으로 벌이는 일대일 좀비 전투는, 한국 좀비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격투 액션의 새로운 이정표라 할 만하다. 구교환과 김종태 사이의 학문적 긴장감, 전지현과 고수 사이의 깊은 인간적 유대, 그리고 지창욱과 김신록의 독특한 형제애는 이 절박한 생존극의 골격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 재난 앞에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
연상호 감독이 좀비 장르를 통해 일관되게 탐구해 온 것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콜로니’에서도 이 주제는 빗나가지 않는다. 여섯, 일곱 명 단위의 소그룹으로 움직이는 생존자들 사이에는 극도로 이기적인 인물들이 넘쳐난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들을 죽음의 입으로 밀어 넣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이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일진이었던 인물이 재난 상황에서도 기어이 권력을 휘두르려는 모습은 관객에게 좀비보다 더 큰 좌절감을 안겨 준다. 영화는 또한 비효율적인 긴급 구조 시스템과 관료주의의 광기를 묘사한다.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 동안 바깥의 구조 체계는 느리고 경직되어 있으며, 누가 결정권자인지조차 불분명하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122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수많은 인물과 서브 플롯을 소화하다 보니 일부 캐릭터의 서사는 충분히 무르익기 전에 급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있고, 서영철이라는 악당의 동기 역시 ‘뒤틀린 과학적 신념’이라는 틀 안에서 더 깊이 파고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과학적 상상력, 수직 공간을 활용한 연출, 그리고 인간 군상의 밀도라는 세 축이 단단하게 맞물리면서 한국 좀비 영화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힌 작품임은 분명하다.
호찌민 시내 CGV에서 한국어 음성에 베트남어·영어 자막으로 6월 12일 부터 상영 중이며, 4DX와 ScreenX 특별관에서는 빌딩 내부의 수직 추락과 좀비 떼의 습격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6월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치열한 122분이 될 것이다.

볼만한 OTT 드라마
‘스타 시티’가 그리는 또 다른 1969년 ‘포 올 맨카인드’ 스핀오프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영광과 공포를 파고들다
‘포 올 맨카인드(For All Mankind)’가 미국의 시점에서 대체 역사의 우주 경쟁을 그려 왔다면, 스핀오프 시리즈 ‘스타 시티(Star City)’는 카메라를 180도 돌려 철의 장막 뒤편으로 향한다. ‘만약 소련이 먼저 달을 밟았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5시즌에 걸쳐 지켜본 관객에게, 이번에는 그 승리를 거머쥔 쪽의 이야기가 주어진다. 그런데 승리의 풍경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 환호도 잠시, 스타 시티라는 이름의 폐쇄 도시에는 감시와 배신, 그리고 천재들을 집어삼키는 체제의 경직성이 감돌고 있다. 애플 TV+(Apple TV+)에서 시즌 1 전 8화를 스트리밍 중이다.

■ 달에 첫 발을 디딘 나라의 축하받지 못한 사람들
1969년, 소련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i Leonov·샘 윌킨슨[Sam Wilkinson] 분)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딛는다. 레오노프의 아내가 한밤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공포에 질린 채 끌려간 곳은 감옥이 아니라 관제실이었고, 스크린에 비친 남편의 역사적 첫걸음을 목격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시리즈의 정체를 단번에 선언한다. 인류 최대의 성취가 벌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도 공포와 감시가 일상인 세계. ‘스타 시티’는 우주 경쟁의 화려한 겉면이 아니라 그 이면의 어둠을 파고드는 편집증적 스릴러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대부로 불리는 ‘수석 설계자(Chief Designer)’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리스 이판스[Rhys Ifans] 분)가 서 있다. 현실에서 코롤료프는 1966년 수술 중 사망했고 이로 인해 소련의 달 프로젝트는 좌초되었지만, 이 대체 역사에서는 살아남아 새로운 임무를 꿈꾼다. 그러나 체제는 그에게 달 너머를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련을 떠나는 것조차 금지된 이 천재 설계자의 처지는, 스타 시티라는 공간이 우주를 향한 도약대인 동시에 거대한 감옥임을 상징한다.
■ 도청하는 여자, 도청당하는 여자, 두 여성의 보이지 않는 연결
코롤료프만큼이나 이 시리즈를 끌고 가는 것은 두 여성의 이야기다. 모스크바에서 어린 딸 조야(Zoya·이디 존슨[Eadie Johnson] 분)를 데리고 스타 시티에 부임한 이리나 모로조바(Irina Morozova·아그네스 오케이시[Agnes O’Casey] 분)는 KGB 감시 부서의 신참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저명한 우주비행사 발랴 미로노프(Valya Mironov·아담 나가이티스[Adam Nagaitis] 분)와 그의 아내 타냐(Tanya·루비 애시본 서키스[Ruby Ashbourne Serkis] 분)의 집을 도청하는 것. 한때 전문 피아니스트였던 타냐가 스타 시티의 벽이 좁혀 오는 것을 느끼며 남편에게 토로하는 사적인 대화를 매일 엿듣는 일은 야심 찬 젊은 여성에게 매력적인 직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리나는 점차 도청을 통해서만 알게 된 타냐에게 묘한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도청하는 여자와 도청당하는 여자,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지는 이 관계는 ‘스타 시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축이다.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구도는 냉전 시대 스릴러의 고전적 긴장감을 계승하면서도, 여성의 시점에서 체제의 폭압을 체감하게 만드는 신선한 접근이다. KGB 감시 부서를 이끄는 류드밀라 라스코바(Lyudmilla Raskova·안나 맥스웰 마틴[Anna Maxwell Martin] 분)의 악의적인 존재감은 이 감시 체제의 무게를 한층 무겁게 만든다.
■ 우주를 향한 꿈, 그리고 그 꿈을 짓누르는 체제
남성 중심의 우주 프로그램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여성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는 야나 아흐마토바(Yana Akhmatova·니암 앨거[Niamh Algar] 분)와 불안에 시달리는 아나스타시아 벨리코바(Anastasia Belikova·앨리스 잉글러트[Alice Englert] 분)는 과연 자신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날이 올 것인지 자문한다. 인도에서 건너온 과학자 차다 락슈미(Chada Lakshmi·프리야 칸사라[Priya Kansara] 분)는 낡은 실험실 구석에 격리된 채 재능을 썩히고 있다. 반항적인 우주비행사 사샤 폴리바노프(Sasha Polivanov·솔리 맥레오드[Solly McLeod] 분)는 엄숙한 분위기를 거스르며 주변을 긴장시킨다.
이들 각자의 서사가 퍼즐 조각처럼 시즌 전체에 걸쳐 하나씩 맞춰지는 구성은 ‘스타 시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보타주, 죽음, 혹은 그보다 더 끔찍한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타 시티 안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회색빛 톤으로 칠해진 감옥 같은 공간 안에서, 관객에게는 진실의 조각들이 조금씩 흘려지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 ‘포 올 맨카인드’를 모르더라도, 아니 모를수록 더 빠져든다
‘스타 시티’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본편 ‘포 올 맨카인드’를 한 회도 보지 않은 시청자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체 역사라는 설정은 냉전이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 자연스럽게 얹혀 있고, 핵심 서사는 우주 경쟁이 아니라 인간의 야망과 희생, 위험과 기회 사이의 줄다리기다. 버라이어티(Variety)가 꼬집은 것처럼 일부 배우들의 러시아식 억양이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이는 서사의 밀도와 인물들의 흡인력 앞에서 사소한 흠집에 불과하다.
‘포 올 맨카인드’ 시즌 5가 2010년대 화성 식민지의 독립 투쟁을 그리고 있다면, ‘스타 시티’는 시간을 되감아 1969년 달 착륙의 순간으로 돌아가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을 보여 준다. 두 시리즈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대체 역사가 양쪽 진영의 시점에서 입체적으로 완성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즌 1 전 8화가 애플 TV+에서 스트리밍 중이며, 본편 ‘포 올 맨카인드’와 함께 6월 안방극장의 가장 든든한 SF 라인업을 구성한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이 아름다운 만큼 잔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철의 장막 뒤편에서 들려오는 이 목소리들이 조용하고도 강렬하게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