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없는 듯, 모든 것을 가진 급성장한 폰 브랜드
스마트폰 시장은 언제부터인가 지루해졌다. 모서리가 살짝 더 둥글어지고, 카메라 렌즈가 하나 더 늘고, 화면이 조금 더 밝아지는 것 말고는, 해마다 출시되는 새 제품들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삼성과 애플이 양분한 세계에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
2024년, 방콕에 새롭게 개장한 원 방콕(One Bangkok) 쇼핑몰을 들렀다가 낯선 브랜드의 전용 매장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낫싱(Nothing).’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이름을 내건 신생 브랜드였다. 진열대에 놓인 스마트폰은 내부 회로와 부품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후면을 하고 있었다. 가격표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손이 갔다.
베트남에서는 한동안 보이지 않던 브랜드였다. 그러던 것이 2025년부터 조용히 현지 시장에 발을 들여놓더니, 어느새 셀폰에스(CellphoneS) 같은 주요 유통망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 호 가젯 섹션에서는 이 묘하게 눈길을 끄는 브랜드의 정체를 들여다봤다.
칼 페이라는 이름
낫싱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칼 페이(Carl Pei)다. 그는 2013년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원플러스(OnePlus)를 공동 창업해 ‘플래그십 킬러’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2020년 원플러스를 떠난 그는 같은 해 10월 낫싱을 설립하고 아이팟(iPod) 초기 개발자 토니 파델(Tony Fadell), 유튜버 케이시 나이스태트(Casey Neistat), 트위치(Twitch) 공동창업자 케빈 린(Kevin Lin) 등으로부터 700만 달러의 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그 뒤로도 GV(구 구글 벤처스), EQT 벤처스, 타이거 글로벌 등으로부터 연이어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2025년 기준 기업 가치 13억 달러를 기록한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요즘 테크 제품들은 너무 지루해졌다.” 칼 페이가 창업 직후 공개적으로 남긴 이 한마디는 낫싱이라는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압축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품은 오히려 감정을 잃어간다는 역설, 그 역설에 맞서는 것이 낫싱의 출발점이었다.

투명함이라는 철학 – Glyph Interface
낫싱의 첫 제품은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2021년 7월, 낫싱은 완전히 투명한 케이스에 내부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무선 이어폰 ear (1)을 선보였다. 회로와 부품을 숨기는 대신 드러냄으로써 ‘감춤 없는 기술(nothing to hide)’을 디자인 언어로 삼은 것이다. 이 이어폰은 출시 직후 기술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듬해인 2022년 등장한 첫 스마트폰 Phone (1)은 그 철학을 더욱 밀어붙였다. 투명한 후면 너머로 내부 부품 배치가 보이고, 후면에 수십 개의 LED를 격자 형태로 배치한 ‘글리프 인터페이스(Glyph Interface)’가 빛으로 알림을 전달했다. 전화가 오면 빛이 켜지고, 타이머가 돌아가면 진행 상황을 표시하고, 음악이 흐르면 리듬에 맞춰 깜빡인다. 화면 없이도 정보를 전달하는 이 기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인간이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낫싱 디자인의 시각적 문법은 일본 아이코노그래피와 1960~70년대 산업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점(dot), 선, 흑백 대비, 반복되는 원형 패턴은 ‘화려함’이 아닌 ‘정밀함’을 추구한다. 디지털 세계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점으로 시각화하는 이 접근은, 브루탈리즘 건축이 재료를 그대로 드러내듯 기술을 포장하지 않고 노출한다.

제품 라인업 – 이어폰부터 헤드폰까지
낫싱의 현재 제품군은 크게 스마트폰 시리즈, 이어폰·헤드폰 시리즈, 그리고 보급 서브 브랜드 CMF by Nothing으로 나뉜다.
스마트폰은 2022년 출시된 Phone (1)을 시작으로 Phone (2), 보급형 Phone (2a)·Phone (2a) Plus, 그리고 2025년 3월의 Phone (3a)·Phone (3a) Pro로 이어졌다. 2025년 7월에는 플래그십 모델 Phone (3)이 출시됐다. Phone (3)은 6.67인치 AMOLED 디스플레이와 스냅드래곤 8s Gen 4 프로세서, 50MP 트리플 후면 카메라를 탑재하고, 기존 Glyph Interface를 대체하는 ‘글리프 매트릭스(Glyph Matrix)’를 도입했다.

25×25 격자에 489개의 LED로 구성된 이 원형 매트릭스는 알림, 시스템 상태, 각종 인터랙션을 시각화한다. 가격은 인도 기준 79,999루피, 국제 시장 기준 799달러부터다. 2026년 3월에는 보급 라인 Phone (4a)와 Phone (4a) Pro가 공개됐다.
이어폰 라인은 ear (1)부터 ear (2), ear (2024), ear (a), ear (open), ear (3)으로 이어진다. 2025년 9월 출시된 ear (3)은 충전 케이스에 내장 듀얼 마이크 시스템 ‘Super Mic’을 탑재해 케이스 자체를 고음질 마이크로 활용하는 실험적 기능을 선보였다. 같은 해 7월에는 KEF와 협업한 오버이어 헤드폰 Headphone (1)이 공개됐다. 299달러에 ANC 오프 기준 80시간의 배터리를 자랑하는 이 제품은 아날로그 볼륨 롤러와 물리 버튼을 고집하며 낫싱 특유의 투명 미학을 오버이어 폼팩터에 구현했다.
2025년 말에는 서브 브랜드 CMF by Nothing이 독립 법인으로 분리돼 인도를 기반으로 한 독자 행보를 시작했다. CMF는 스마트워치, 이어폰, 스마트폰 등을 더 저렴한 가격대에 내놓으며 새로운 소비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 시장 – 늦게 왔지만 조용히 자리잡는 중
낫싱 폰은 유럽, 인도, 북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인도에서는 2024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577% 성장을 기록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한 스마트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베트남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공식 유통망이 없었다. 기술 애호가들이 직구나 비공식 경로로 구입하는 이른바 ‘알음알음 폰’으로 통했다.
변화는 2025년 1월부터 시작됐다. 베트남 최대 스마트폰 유통망 중 하나인 셀폰에스(CellphoneS)가 Nothing Phone (2A)와 Nothing Phone (2A) Plus의 공식 판매를 시작했다. 12개월 정품 보증, 30일 이내 교환 등 정식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전국 35개 성시 약 140개 매장과 온라인 채널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베트남 시장에서 공식 구매 가능한 낫싱 제품은 다음과 같다. Nothing Phone (2A)는 약 679만 동 선에서, Nothing Phone (2A) Plus는 약 1,049만 동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어폰 제품군은 글로벌 온라인 채널 및 일부 테크 매장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기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꽤 오래전부터 입소문이 돌았던 브랜드인 만큼, 셀폰에스 입점 이후 실제 고객 반응도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베트남은 삼성, 오포(OPPO), 샤오미, 애플, 비보(Vivo)가 시장을 강하게 장악하고 있는 구조다. 낫싱이 이 구도를 단기간에 흔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디자인 차별화와 합리적인 가격대, 순정에 가까운 안드로이드 경험이라는 조합은 분명 틈새 소비자층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호찌민시의 테크 커뮤니티와 젊은 외국인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폰’으로 통한다.
베트남에서 지금 살 수 있는 낫싱 제품들
현재 베트남 내 공식 유통망을 통해 구입 가능한 낫싱 제품은 스마트폰 라인을 중심으로 상당히 폭넓게 구성돼 있다. 주요 판매처는 전국 35개 성시에 약 140개 매장을 운영하는 셀폰에스(CellphoneS)이며, 비엣타블렛(Viettablet), 모바일시티(MobileCity) 등 테크 전문 유통점에서도 취급한다. 구매 시 12개월 정품 보증, 30일 이내 교환 서비스가 적용된다.
Nothing Phone (2A)
베트남 공식 출시의 첫 모델로, 6.7인치 AMOLED 디스플레이와 MediaTek Dimensity 7200 Pro 칩셋, 5,000mAh 배터리를 탑재했다. 50MP 듀얼 후면 카메라와 구글과 공동 개발한 TrueLens Engine 이미지 처리 기술이 적용됐으며 IP54 생활 방수를 지원한다.
셀폰에스 기준 판매가는 약 809만 동,
상위 모델 Phone (2A) Plus는 약 1,049만 동이다.

Nothing Phone (3A)
스냅드래곤 7s Gen 3 칩셋과 6.77인치 AMOLED 화면, 50MP 트리플 카메라(광각+초광각+2배 광학 망원)를 갖췄으며 IP64 방수 등급을 지원한다. AI 기반 메모·기록 도구인 에센셜 스페이스(Essential Space) 전용 버튼이 측면에 배치돼 있다.
셀폰에스 기준 8GB+128GB 모델 849만 동,
12GB+256GB 모델 969만 동이다.

이어폰 및 헤드셋
이어폰 라인은 낫싱 공식 글로벌 웹사이트(nothing.tech) 직구 또는 쇼피(Shopee), 라자다(Lazada) 입점 공식 셀러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ar (a)는 99달러(약 250만 동), ear (3)은 179달러(약 450만 동) 선이다. 가격 및 재고는 시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므로 셀폰에스 공식 홈페이지(cellphones.com.vn) 또는 매장에서 확인을 권한다.

지루함에 질린 소비자들에게
그럼에도 낫싱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검은 유리 직사각형에 질린 소비자들에게 “왜 스마트폰은 다 똑같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2024년 낫싱은 창사 이래 누적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고, 연간 매출이 5억 달러를 넘어서며 판매 대수 700만 대를 기록했다. 틈새 브랜드가 아닌 실제 시장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베트남에서도 이 브랜드는 이제 막 공식적인 출발선에 섰다. 호찌민시의 휴대폰 매장에서 낫싱 폰의 투명한 후면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삼성도, 애플도 아닌 세 번째 선택지를 찾는 이들에게, 낫싱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