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소리가 달라지고 있다. 배기음 대신 낮게 미끄러지는 모터 소리가, 호찌민과 하노이의 아침 도로를 채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전기차는 낯선 물건이었지만, 2026년 베트남은 전기차 판매 비중이 신차 전체의 33.1%에 달해 동남아에서 이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태국(31.4%), 인도네시아(15.6%), 말레이시아(8.0%)를 앞선 수치다. 흥미로운 건 판도의 모양새다. 모델 숫자로만 보면 중국과 유럽 브랜드가 훨씬 많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베트남 토종 브랜드 하나다. 지금 베트남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전기 승용차 경쟁을, 국적별로 정리했다.

베트남의 자존심, 빈패스트(VinFast)
베트남산 전기 승용차는 사실상 빈패스트 한 곳이 전부다. 다른 토종 브랜드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이 한 곳이 시장을 압도한다.
핵심 라인업은 소형 VF 3와 VF 5부터 준중형 VF 6·VF 7, 중대형 SUV VF 8, 플래그십 VF 9까지 6종에 이른다. 초기 모델 VF e34까지 더하면 7종이다. 가장 작은 도심형 VF 3부터 큰 덩치의 VF 9까지, 사실상 모든 가격대와 차급을 홀로 메운다. 2026년 5월 판매 순위에서 빈패스트가 상위 10위 중 6자리를 차지했을 만큼, 그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비결은 두 가지다. 전국에 촘촘히 깔린 충전소 생태계, 그리고 무료 충전 정책이다. 여기에 개인 고객뿐 아니라 택시와 기술 기반 차량 호출(그랩 등), 운송 서비스 시장까지 파고든 점이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이웃 나라에서는 중국 브랜드가 장악한 자리를, 베트남에서는 빈패스트가 지키고 있는 셈이다.
가장 공격적인 도전자, 중국 브랜드
모델 숫자로는 중국 진영이 가장 많고, 확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선두는 비야디(BYD)다. 2024년 5월 베트남에 진출한 이 브랜드는 순수 전기 모델만 추려도 소형 해치백 돌핀(Dolphin), SUV 아토 2·아토 3(Atto 2·Atto 3), 세단 실(Seal)과 한(Han), MPV M6, 대형 M9까지 다양하다. 가격대는 6억5,900만 동부터 14억 동 이상까지 걸쳐 있다. 강점은 블레이드 배터리(Blade Battery)로, 안전성과 내구성, 공간 효율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빈패스트의 안방 이점에 눌려 판매량은 아직 겸손한 수준이다. 비야디는 2026년 중 약 4개 모델을 추가할 계획이다.

저가 시장은 우링(Wuling)이 노린다. 현지 TMT모터스가 조립·판매하는 홍광 미니 EV(Hongguang Mini EV)와 빙고(Bingo)가 대표작으로, 빙고는 3억4,900만 동부터 시작한다. 대략 2억~4억 동대의 이 초소형 전기차는 시장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선택지다.
2026년 들어 신규 진입도 줄을 잇는다. 지리(Geely)는 EX2·EX5를 타스코(Tasco)를 통해 들여왔고, 지커(Zeekr)도 진입을 준비 중이다. 눈길을 끄는 건 로터스(Lotus)다. 영국 스포츠카의 혈통을 지녔으나 지금은 중국 지리 소유인 이 브랜드는, 2026년 5월 중국산 순수 전기 모델 에메야 (Emeya) 세단과 엘레트레 (Eletre) SUV를 선보였다. 에메야는 44억8,800만~71억8,800만 동으로, 고성능 버전은 0-100km/h를 2.78초에 주파한다.

한국의 첫 깃발, 현대 아이오닉 5(IONIQ 5)
한국 브랜드로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5가 베트남에서 판매되는 첫 순수 전기 SUV다. 익스클루시브(Exclusive)와 프레스티지(Prestige) 두 버전으로 나오며, C급 전기 SUV 시장을 겨냥한다. 국내 교민에게는 익숙한 브랜드라는 점에서 심리적 문턱이 낮은 선택지다. 기아(Kia)의 EV6 등도 소량 유통되나, 아직 정식 라인업은 제한적이다.


럭셔리 전동화 경쟁, 독일 4强
고급 시장에서는 독일 브랜드들이 2026년 들어 전기 라인업을 빠르게 완성했다.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는 EQB, EQE SUV, EQS 세단·SUV, 그리고 초대형 G바겐의 전기 버전 G580까지 갖췄다. EQS는 47억8,900만 동부터 시작하며, 곧 전기 세단 CLA 200이 라인업에 더해진다. 아우디(Audi)는 기존 e-트론 GT(e-tron GT)와 Q6 e-트론에 더해, 2026년 고성능 세단 S6 e-트론을 42억 동부터 내놨다. 94.9kWh 배터리로 639~678km를 달린다.
포르쉐(Porsche)는 2020년 타이칸(Taycan)으로 베트남 전기차 럭셔리 시장의 문을 처음 연 브랜드다. 마칸 EV(Macan EV)에 이어, 2026년 말에는 대표 SUV의 전기 버전 카이엔 EV(Cayenne EV)를 47억2,000만 동부터 사전예약으로 받고 있다. BMW는 iX와 i4, i7을 판매 중이며, 새 노이에 클라세(Neue Klasse) 플랫폼의 첫 모델 iX3 출시를 앞두고 있다.
조용히 존재하는 이름들, 일본과 미국
일본 브랜드는 신중하다. 토요타(Toyota)는 bZ4X가 첫 순수 전기 SUV지만, 여전히 하이브리드 중심이라 전기차 비중은 낮다. 렉서스(Lexus)는 ES 500e를 시작으로 순수 전기차 판매에 발을 들였고, 2026년 RZ 모델 유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 브랜드로는 포드(Ford) 머스탱 마하-E(Mustang Mach-E)가 소량 등록·판매된 것으로 확인된다.

모델은 외국이 많지만, 판매는 빈패스트가 이끈다


정리하면 이렇다. 베트남 도로 위 순수 전기 승용차는 판매 중이거나 출시가 임박한 것만 대략 35~40종. 브랜드 국적으로 나누면 베트남 1개사(약 6~7종), 중국 4개사 이상(약 13종), 그리고 한국·일본·독일·미국 등 기타 외국 8개사 안팎(약 18종)이다.
그러나 숫자와 실제 판매량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모델을 쏟아내는 건 중국과 유럽이지만, 실제로 팔리는 차의 대부분은 빈패스트다. 이웃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전기차 판매 순위가 비야디와 지리 같은 중국 브랜드로 빼곡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충전 인프라를 손에 쥔 토종 브랜드의 이점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리고 2026년 밀려드는 중국·유럽 브랜드가 그 벽을 어디까지 허물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