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침묵하는 방

요즘 사람은 주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일 대 일 대화가 아니라면 단톡방을 만들어 집단적 대화를 나눕니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한자리에 모인 것처럼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 단톡방에서 가족, 회사 동료, 골프 모임, 군대 모임, 지역주민 모임 등, 수많은 단체 톡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 휴대폰의 카톡 목록을 내리다 보면, 한참 아래쪽에 잠들어 있는 단톡방 몇 개가 아무렇지 않게 존재합니다.
그 중에는 대학 때 친구들과 만든 방이 있기도 하고, 고교시절 절친한 친구 방도 있고, 죽마고우처럼 어울리던 사회 친구의 단체 방도 있습니다. 한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알림이 울리던 방이었습니다. 누가 어디 갔다, 누구네 아이가 입학했다, 어제 본 영화가 어땠다. 잡다한 이야기가 시냇물처럼 흐르던 그 단톡방에는 이제 옛 이야기 그림자만 희미하게 존재합니다.

이 방을 마지막으로 열어 본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못합니다.
무심코 그 방 하나에 들어가 봅니다. 마지막 메시지가 작년 가을이더군요. 누군가 가을 사진을 올렸고 그 아래로 두세 명이 이모티콘으로 답했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은 방. 사람은 여전히 여러명 남아있는데, 마치 빈 방처럼 고요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방이 있으십니까? 한때는 가장 시끄러웠는데, 이제는 숨소리마저 들릴 것같이 조용한 방 말입니다. 죽은 방은 아닌데, 살아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방이 가족 방이 아닌 게 다행입니다.
뭔가 인사라도 전해볼까 하다가 마땅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긴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결국 아무 말도 쓰지 못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어쩌면 이 방의 침묵은 우리 모두의 합의일지도 모른다고.

도연명이 [음주(飮酒)]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지요.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사람들 사는 곳에 오두막 한 채를 마련했으나.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다고 한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묻자.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외져진다.

마음이 머무르는 곳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마을에 살아도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자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대화 방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은 방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각자 다른 자리로 옮겨 간 것이지요.

그동안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지요. 누구는 한국에 남았고, 누구는 미국으로 갔고, 저는 베트남으로 왔습니다. 누구는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고, 누구는 부모님을 모시느라 분주했고, 누구는 사업을 시작했다 접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같은 방에 있었지만 사실은 점점 다른 동네에 살게 된 셈입니다.

골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한때 매주 함께 라운딩 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 무릎을 다치시고, 또 한 분은 일이 바빠지시고, 또 한 분은 한국으로 들어가시면서 자연스레 모임이 흐릿해졌지요.
누구도 절교를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서운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시간과 거리가 우리를 천천히 갈라 놓았을 뿐이지요. 이렇게 골프 친구들이 하나 둘 옅어 지는 것에 서운해 하다가도, 평생을 가는 골프 동반자는 없어, 그저 그 시기의 인연일 뿐이야 라는 생각을 하고 나면 서운함도 사라집니다.

이제는 조용한 단톡방을 만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는 부담도, 침묵이 무겁다는 자책도 내려놓았지요. 그 고요함은 우리의 우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양말에는 OUT OF SIGHT, OUT OF MIND 라고 하지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 곳이 다르다면 그 마음 역시 늘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이별에는 떠남과 남음이 떠오릅니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남는 안타까운 이별.

그러나 우리 인생의 이별을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저 흐르는 시간이 천천히 만들어내는 이별, 거리가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이별, 그래서 어느 누구도 잘못이 없는 이별. 그런 이별도 있는 것이지요. 베트남에서 맺어진 만남과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제 그대도 인생의 순리를 어느정도 깨우친 것입니다.

카톡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올립니다.
어느 골프모임방에서 이달의 라운딩 소식이 들려오고 참석자의 리스트가 분주하게 올라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방에도 적막이 찾아올 것입니다. 일부러 아래로 한참을 내려야 발견되는 흔적만 남은 예전의 방처럼 말입니다, 이제 더이상 침묵을 아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고요함에는, 한 시절 우리가 함께 나눈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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