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씬짜오베트남의 디지털 전환을 시작하면서 씬짜오베트남의 25년 역사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됩니다. 디지털로 씬짜오베트남을 소개하는 기록물이나 홍보 템플릿을 만들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제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운 지난 잡지 보관장에서 초기 책자 하나를 꺼내 봅니다. 표지는 누렇게 바래있고, 습기 먹은 모서리는 살짝 울려있습니다.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조심스레 펼쳐봅니다. 20여 년 전의 우스꽝스러운 디자인과 믿을 수 없는 예전의 서사가 담겨있습니다.
광고 지면에는 그 시절 우리 한인사회를 주름잡던 업체 이름이 빼곡합니다. 당시 잘나가던 여행사, 식당, 학원, 대형기업들, 그들에게 광고 영업을 하며 “우리 오래오래 같이 가자”고 약속한 업체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이곳에서 존재하지 않은 이름들입니다. 그 이름을 되새기며 희미한 추억을 불러 봅니다.
그분들 회사는 언제 문 닫았을까, 조용히 정리했을까, 아니면 안타까운 사연을 남기며 떠났을까? 혹은 더 큰 회사로 인수되었나? 그리고 그 사장님은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민사회의 수많은 회사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지내온 씬짜오베트남도 결국은 언젠가는 그들처럼 기억 속 깊은 곳에서 일부러 찾아내야 회상될 수 있는 운명이 되는 것은 아닐까?
25년 동안 하루를 살듯이 잡지를 만들며 지냈습니다.
싱그러운 하얀 종이에 풋풋한 인쇄 내음이 보람을 채워주었고, 그 책자에 반응하는 교민들의 호응이 우리 모두를 신명 나게 만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한 줄의 기사와 칼럼에 교민사회가 들썩이며 반응하는 시절이었죠. 아날로그 시대의 총아였지요.
첫 번째 충격은 팬데믹이었지요. 대면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아날로그 잡지는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2년여 만에 겨우 돌아온 세상에는 또 다른 태풍이 등장합니다. 팬데믹 시절부터 싹트던 디지털 세상이 성큼 다가옵니다.
디지털 세상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하던 일을 유튜브가, 네이버가, 구글이, 페이스북이 그리고 카카오 단톡이 앗아갑니다.
이 뜨거운 여름 나라가 한순간에 북풍한파가 몰아치는 북극의 한복판으로 변한 듯합니다. 낯선 땅, 황량한 바람만 불어오는 황무지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세상을 옮겨야 합니다. 디지털 세상으로 이주해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 잘난 디지털의 사고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데, 낯설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맨손으로 고르며 정체도 모르는 씨앗을 심는 기분입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되 뇌입니다. 이렇게 라도 해야 환생한다고, 소멸하지 않는다고.
데스 포인트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파이널 라인이 어디 쯤인지 어렴풋이 보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데스 포인트 말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성경 말씀을 되뇌며 다가서 봅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가선 파이널 라인에는 무엇이 있나요? 대망의 디지털 세상인가요? 디지털의 세상에 들어가면 다시 시대의 총아로 일어서나요? 그 세상은 변화하지 않나요? 그 변화는 또 어떤 세상을 만들어내는가?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결국, 이 회사의 마지막은 어디일까, 어떻게 끝날까?
25년 전 잡지 속 광고주들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광고를 유치하던 내 기억 속에도 희미합니다. 그럼 우리는?
결국은 망합니다. 모든 존재가 사라지듯이 회사 역시 망합니다. 이름을 남기든, 가죽을 남기든 뭔가를 남기고 망하겠지요. 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 두렵지 않습니다. 단지 울상을 지우면 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 고달픈 데스 포인트를 잘 넘겨야 합니다. 데스 포인트에서는 너무나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견디고 나면 다시 새로운 에너지가 솟는다고 합니다. 고된 노동으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지만 땀에 흠뻑 젖은 육체는 또 다른 쾌감을 불러옵니다.
결국은 망할 노릇인지만 살아있는 한 가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리고 누군가 그 바통을 이어가며 씬짜오베트남의 숨결을 지켜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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