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베트남 고용시장 특집 (1)

청년 실업률 10%인데 韓기업은 “사람이 없다”… 베트남 구인난의 역설

“매뉴얼 없는 한국식 경영, 베트남 MZ세대에 안 통한다”

호찌민(Ho Chi Minh)시 7군의 한 한국계 무역회사 법인장 A씨는 요즘 채용 공고를 내도 이력서가 쌓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쉰다. “한국어 되는 사무직 한 명 뽑는 데 석 달째다. 베트남 청년 실업률이 10%라는데, 도대체 그 청년들은 다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수 년 전만 해도 공고를 올리면 수십 장의 이력서가 쏟아졌다는 그의 회사는, 올해 들어 채용 에이전시 두 곳을 동시에 돌리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A씨의 하소연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 대부분이 공유하는 고민이다. 섬유·봉제 공장부터 한식당, 무역·유통 중소기업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사람 찾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호찌민한인상공인연합회와 한국 공단 관계자들도 “최근 2~3년 사이 체감 난도가 급격히 올라갔다”고 입을 모은다.
15~24세 청년 실업률은 8.86%, 도시 지역은 10.7%에 달한다. 전체 실업률(2.21%)의 4~5배 수준이다. 교육도 훈련도 일도 하지 않는 이른바 ‘니트족(NEET)’ 청년만 약 160만 명. 베트남 내무부 집계로 전체 청년 인구의 11.5%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람은 넘쳐나는데 기업은 구인난이다. 이 역설의 정체는 무엇인가. 본지는 이번호 취재를 위해 몇몇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이번호에서는 베트남 최대 채용 플랫폼 중 하나인 사람인베트남·탑데브(TopDev)의 다우키움기술 김춘곤 이사를 만났다. 그는 2019년 사람인이 탑데브를 인수한 뒤 지난해 8월 두 법인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을 지휘해온 인물로, 베트남 채용시장을 최전선에서 지켜봐 왔다.

다우키움기술 김춘곤 이사

‘두 개의 노동시장’… 공장 채용과 씨티잡의 고용 통로는 다르다

베트남 구인난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베트남 노동시장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사람인, 잡코리아 같은 온라인 채용 플랫폼이 생산직부터 대기업 공채, IT 개발자, 임원급 헤드헌팅까지 사실상 모든 직군을 포괄한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직군에 따라 고용 통로가 철저히 분리돼 있다.
김 이사는 이를 “한국의 1980~90년대 모습과 닮았다”고 표현했다. “한국도 옛날에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단체 취업시키고, 사무직은 신문 공채로 뽑고, 임원은 인맥으로 스카우트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베트남은 지금이 딱 그 지점입니다. 경계가 훨씬 더 명확하게 갈라져 있어요.”

첫 번째 트랙: 공장 생산직

베트남 제조업 현장의 채용은 대부분 ‘벌크(bulk) 방식’으로 이뤄진다. 삼성전자 박닌·타이응우옌 공장, 태광, LG디스플레이 하이퐁 공장처럼 수만 명을 고용하는 대형 사업장은 온라인 플랫폼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인력 파견 업체(labor dispatch agency)’를 끼고 있다. 이들 업체는 보통 베트남 중북부 농촌 지역-응에안, 타인호아, 하띤 같은 곳-의 중학교·고등학교 네트워크를 직접 관리한다. 졸업생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한 번에 송출하는 식이다. 단가는 인원 1명당 얼마로 책정된다.
“1만 명 규모 공장에서 월간 이직률이 10%만 돼도 1,000명이 빠져나가는 거예요. 베트남 공장에서는 월 10% 이탈이 지극히 흔합니다. 그러면 매달 1,000명씩 새로 뽑아야 하는데, 이런 규모를 온라인 플랫폼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력서 한 장 한 장 검토하는 구조가 아니라, ‘사지 멀쩡하고 근태 기본만 되는 사람 100명’을 한 번에 붙이는 구조니까요.”
공장 앞에 현수막 한 장 걸고, 인력 에이전시에 전화 한 통 하면 채용이 이뤄지는 이 방식은 김 이사의 표현대로 “이력서가 사실상 의미 없는 시장”이다. 한국 관리자가 아무리 사람인이나 탑CV에 공고를 올려도 생산직 이력서가 잘 붙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초에 그 시장이 온라인 플랫폼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트랙: 씨티잡(City Job)

반면 호찌민 1군·3군·7군, 하노이 바딘·꺼우저이 같은 도심에서 이뤄지는 사무직·IT·마케팅·영업·디자인 채용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이 시장에서는 사람인, 탑CV, 비엣남웍스(VietnamWorks), 내비고스, 그리고 최근에는 링크드인(LinkedIn)까지 여러 플랫폼이 경쟁한다. 직군도 훨씬 세분화돼 있다. 백엔드 개발자, 프런트엔드 개발자, UI/UX 디자이너, 퍼포먼스 마케터, 콘텐츠 마케터, 재무회계, 수출입 코디네이터-직무 하나하나가 별도의 채용 카테고리다. 당연히 이력서의 질도 중요하고, 면접 절차도 여러 단계를 거친다.
문제는 이 두 시장이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이 도시 사무직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 학력, 언어, 기술 숙련도, 네트워크 모두 다른 트랙이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 10%와 공장 구인난이 공존할 수 있는 것도 이 분절 때문이다. 농촌 출신 고졸 청년은 공장 라인에 묶여 있고, 도시 대졸 청년은 사무직 공석이 날 때까지 ‘니트족’으로 대기한다. 서로 다른 시장에서 각자 미스매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 트랙: 헤드헌팅

그 위에는 또 하나의 시장이 있다. 관리자급·임원급 채용은 전적으로 헤드헌팅 회사의 몫이다. 한국에서는 헤드헌팅 수수료가 연봉의 15~25% 수준이지만, 베트남에서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월급의 1~2개월 치만 받는 헤드헌터도 많다. 그만큼 난립해 있다는 얘기다. 김 이사는 “베트남에는 헤드헌팅 회사가 너무 많아서 역설적으로 ‘좋은 회사를 고르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고 했다. 경력직 채용에서 플랫폼과 헤드헌터 중 어느 쪽에 기대느냐는 직급과 전문성에 따라 갈린다. 대체로 신입~5년차는 플랫폼, 중간관리자 이상은 헤드헌터가 담당하는 구조다.
“한국 기업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이 세 트랙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공장 생산직을 뽑겠다고 사람인에 대량 공고를 올리거나, 반대로 5년차 경력직 백엔드 개발자를 뽑겠다고 인력 에이전시에 전화하는 식이죠. 한국에서는 다 통했던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각 트랙이 요구하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 분절 구조는 한국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채용 전략을 ‘한 덩어리’로 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공장 라인 인력은 인력 에이전시, 사무직·IT는 플랫폼, 팀장급 이상은 검증된 헤드헌터-세 개의 채널을 각각 운영해야 한다. 한 채널이 부진하다고 다른 채널이 메꿔주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이미지’가 문제”… 기피당하는 한국기업

베트남 구직자들에게 외국계 기업은 여전히 선호 대상이다. 내비고스그룹(Navigos Group)이 뗏(Tet·음력설) 연휴를 앞두고 발표한 ‘2026년 임금 및 노동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직(46%)과 IT소프트웨어(13%) 채용 수요가 폭발하고 있고, 의료·마케팅 등 신흥 직군 수요도 동반 상승 중이다. 톱CV 조사에서도 영업직 채용 수요는 48%에 달했다. 일자리 수요는 분명 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수요가 ‘한국계 기업’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이사는 “베트남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국계 기업은 단연 일본계이고, 한국계는 같은 외국계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가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의외로 급여나 복지가 아니라 ‘매뉴얼’이었다.
“일본 기업은 직무별 매뉴얼이 치밀합니다. 베트남 직원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만 정확히 하면 됩니다. 소프트웨어 하나 납품해도 소프트웨어보다 매뉴얼에 인력이 더 많이 투입되는 게 일본 회사예요. 그런데 한국 기업은 ‘야, 옆에 불량 떨어지려 하면 네가 잡아주면 되지’라는 식이죠. 좋게 말하면 유연성, 나쁘게 말하면 ‘내가 돈 주는데 왜 그것도 못 하냐’는 태도입니다.”
김 이사는 “한국 사람은 주차 금지 구역만 빼고 다 주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 사람은 주차 가능 구역만 찾는다”는 비유로 두 나라의 업무 문화 차이를 설명했다. 베트남 직원들은 후자의 방식에 훨씬 익숙하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정해진 범위 안에서 정확히 수행하는’ 훈련을 받아온 세대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식 ‘임기응변’과 ‘센스’는 베트남 신입 직원에게는 ‘부당한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업계 조사에서도 한국계 기업은 “야근이 많고 상명하복이 강하다”는 편견이 여전히 박혀 있다. 실제로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미 조직 문화를 상당 부분 개선했지만, 구직자 머릿속의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첫 장벽은 지원자 풀(pool) 자체가 좁아지는 것이다. 김 이사는 “한국계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력서를 내지 않는 우수 인재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 인식 격차를 깨는 것이 채용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사진 한 장 안 올리면서”… 홍보 부재의 덫

두 번째 장벽은 ‘자기 PR’의 부재다. 베트남 로컬 기업의 채용 페이지를 열어보면, 바닷가에서 직원들이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여성의 날에 꽃다발을 들고 웃는 사진, 송년 파티에서 드레스와 정장으로 차려입은 단체 사진이 빼곡하다. 호텔 연회장을 빌려 시상식처럼 진행하는 연말 파티, 다낭이나 푸꾸옥에서 1박 2일로 떠나는 컴퍼니 트립(company trip), 창립기념일 케이크 커팅식이 회사 소개 페이지의 주인공이다.
반면 한국 기업의 채용 페이지에는 건물 외관, 깔끔한 사무실 인테리어, 고급 사무용 의자가 전부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선진 복지’의 상징이지만, 베트남에서는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프라이버시 존중하고 회식 강요 안 하는 게 ‘선진 문화’이지 않습니까. 퇴근 후 카톡 보내는 것도 조심스럽고, 1박 2일 워크숍이라고 하면 직원들이 질색을 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정반대예요. 컴퍼니 트립, 송년회, 여성의 날 이벤트, 창립기념일 파티가 많은 회사가 ‘좋은 회사’입니다. 베트남 직원들은 그 사진을 자기 SNS에 올리고 싶어 합니다. ‘나 이런 회사 다닌다’는 자랑이 되는 거예요.”
김 이사에 따르면 베트남은 아직 한국처럼 기업 재무정보나 직장 평가 플랫폼(한국의 블라인드, 잡플래닛 같은)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즉 구직자가 회사를 평가할 수 있는 정보는 채용 공고에 실린 사진과 문구가 거의 전부다. 한국에서 누구나 아는 대기업 계열사라도 베트남에서는 “그게 뭐 하는 회사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김 이사는 “우리(다우키움)도 한국에서는 키움증권 브랜드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베트남에서는 증권이 뭔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라며 웃었다.
결국 돈을 더 쓰지 않더라도 사내 이벤트를 자주 열고, 이를 이미지로 꾸준히 외부에 노출하는 기업이 구인에 성공한다. 유니폼, 단체 사진, 파티 사진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베트남에서는 결정적 변수다. 여성의 날에 회사 입구를 풍선과 꽃으로 장식하고 직원들이 사진 찍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을 ‘여직원 조기 퇴근의 날’로 지정하는 것, 창립기념일에 유니폼을 맞춰 입고 기념 촬영을 하는 것-한국 관리자에게는 번거로워 보이는 이 작은 이벤트들이 베트남에서는 ‘좋은 회사’의 증거가 된다.

일반적인 베트남 채용공고 웹사이트에서 회사를 소개하면 건물 사진, 사무실 사진보다는 야유회, 이벤트 사진이 많은편이다

신흥 자본의 ‘라인 빼가기’… 한국 공장의 또 다른 적

제조업 현장의 구인난은 더 심각하다. 최근 미·중 갈등으로 베트남에 몰려든 중국계 공장들이 한국·일본 기업의 숙련공을 그대로 빼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자신이 들은 한 공장 사례를 전했다. “라인이 3개인 공장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 한 라인 직원이 전원 출근을 하지 않았답니다. 중국 회사가 밤사이 싹 데려간 거예요. 관리자가 출근했더니 생산 라인 하나가 통째로 비어 있었던 겁니다.”
중국 기업의 전략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일단 파격적인 급여를 내걸어 숙련공을 대거 빼낸 뒤, 1년 안에 근태·복장·작업 에러 등을 이유로 80%를 해고하고 다시 저임금 신규 인력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한국·일본 기업이 수년간 교육과 OJT(현장 훈련)로 투자해 길러낸 인력을 사실상 ‘무상’으로 가져다 쓰는 셈이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게 김 이사의 평가다.
여기에 공장 생산직의 임금 감각도 한국 관리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베트남 공장 노동자들은 잔업을 기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영한다. 최저임금(지역 1급 기준 월 2,800만 동 안팎) 수준의 기본급만으로는 월 550만~580만 동에 그쳐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 노동자들은 기숙사비와 생활비, 고향 송금까지 감안하면 기본급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야간 근무와 잔업을 포함해 월 1,000만 동 정도를 채워야 비로소 저축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일부 유럽 원청이 ‘ESG’와 ‘근로기준법 준수’를 이유로 잔업을 금지하면서 한국계 하청 공장은 오히려 직원을 구하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였다. “‘주 40시간만 지키고 대신 1,000만 동을 주라’는 게 유럽 바이어의 요구인데, 이는 베트남 공장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급여 총액은 늘어도 야근 없이는 일꾼들이 만족을 못해요. 우리한테 연락 오시는 회사 중에 그런 곳이 있는데, 저희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김 이사의 설명이다.
공장 한 곳의 밥값 1,000동(약 50원)을 올릴지 말지를 두고 며칠을 고민하는 것도 한국 관리자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5만 명을 고용하는 대형 봉제 공장에서 식대를 1,000동 올리면 하루에 5,000만 동, 월 단위로는 수십억 동이 추가된다. 제조업 마진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상황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결정이다.

“한국어 잘해도 안 된다”… 달라진 채용 공식

사무직 구인난의 원인은 또 다르다. 한국어 전공자는 넘쳐나지만, 기업이 원하는 건 ‘한국어+α’ 인재다.
“한국어는 여전히 베트남에서 입학 성적이 가장 높은 전공 중 하나입니다. 하노이 국립외대,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 한국어과 입결은 상위권이에요.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옵니다. 문제는 그들 중 대부분이 단순 통·번역만 할 줄 안다는 겁니다. 마케팅을 전공하면서 한국어를 따로 배운 사람, 베트남 상법과 세법을 아는데 한국어까지 되는 사람, 회계사 자격 없이도 수출입 실무를 꿰고 있는 사람-이런 인재는 극소수입니다.”
김 이사에 따르면 ‘한국어+전문성’을 갖춘 인재는 일반 인재보다 20~50%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재는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회계·재무·수출입·마케팅 같은 실무 지식과 한국어를 동시에 갖춘 인재는 한국 기업들이 서로 뺏어가는 희귀 자원이 됐다.
더욱이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단순 통·번역’ 직군 자체가 빠르게 소멸 중이다. 엔터프라이즈 AI 번역 서비스 한 달 이용료는 300달러 안팎. 베트남 통역 직원 한 명의 월급과 비슷하거나 더 싸다. 김 이사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외국인과의 실시간 통역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될 것”이라며 “‘언어만 할 줄 아는’ 인재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어 전공자에게 “엑셀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씁쓸한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 2025’ 보고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베트남에서 수동 조립 직군은 향후 7% 감소하고, AI·머신러닝 전문가는 36%, 전자상거래 전문가는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베트남 통계에 따르면 정식 교육이나 자격증을 취득한 숙련 노동자 비율은 여전히 29.2%에 머물러 있어, 수요와 공급의 질적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2~3년차 증후군’… 애써 키워놓으면 떠나는 직원들

어렵게 뽑은 인재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또 다른 고민이다. 베트남 사무직 이직률은 경력 2~3년차에서 가장 높다. 신입으로 들어와 한국 업무 방식을 익히고 ‘쓸 만해질 때쯤’ 이직을 통한 급여 점프를 노리는 세대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MZ세대 사이에서는 “한 회사에 오래 있을수록 손해”라는 인식이 공공연하다. 이직 한 번에 20~30%씩 임금이 오르는 구조가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연차의 직원에게는 급여와 복지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연봉 인상뿐 아니라 교육 기회, 타이틀 승진, 소소한 복지까지 패키지로 접근해야 해요. 반대로 5년차 이상이 되어 한국 기업 문화에 적응한 직원은 오히려 이직률이 매우 낮아집니다. 그 지점을 넘기면 정착하는 거죠.”
김 이사는 한국 기업이 ‘유리천장’ 문제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우수 인재는 관리직 승진이나 본사 파견 기회에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우수 인재라면 한국인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결정하거나, 아니면 한계를 명확히 긋고 새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전략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어정쩡한 중간은 최악이에요. 기대만 잔뜩 키워놓고 승진은 못 시켜주면 핵심 인재부터 나갑니다.”
그는 또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구조적 한계도 짚었다. “애초에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온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 때문입니다. 숙련 기술자 한 명에게 2~3배 급여를 주는 것보다 비숙련 기술자 2~3명을 새로 뽑는 게 경제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거죠. 게다가 베트남 내수 시장의 한계 때문에 ‘싸게 만들어 해외에 파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구조적으로 고임금 직책을 만들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채용 계약 실무에서도 베트남 노동법에 대한 오해가 잦다. 수습기간 중 최저 85% 급여 지급 의무, 60일이라는 수습 기간 상한선은 한국 본사가 가장 자주 놓치는 조항이다. 61일째부터는 자동으로 정규 계약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 날짜를 놓치면 회사에 법적 귀책사유가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허가서(Work Permit) 갱신도 최근 들어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있어, 주재원 파견 일정 관리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AI 시대, 베트남 노동시장의 갈림길

2026년 베트남 노동시장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청년들은 제조업 현장보다 ‘씨티잡(City Job)’을 원한다. 대학 학위를 따고 자격증을 취득한 세대에게 공장 라인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베트남 경제는 여전히 제조업이 핵심이고, 청년들이 원하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그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다. 청년 실업률 10%와 공장 구인난이 공존하는 미스매치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베트남 정부도 이 구조를 인지하고 있다. 정치국 결의 71-NQ/TW(교육·훈련 발전의 돌파구 마련)는 직업교육을 고숙련 노동력 양성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고, 결의 06/NQ-CP는 2025년 말까지 고숙련 노동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는 목표를 담았다. 그러나 전국 1,163개에 달하는 직업교육 기관은 대부분 소규모이고 교육의 질도 고르지 않아, 내무부는 최근 네트워크 재편 지침을 내린 상태다. 국립경제대학 장 탄 롱 교수는 “전문대 이상 학력자 중 전공 불일치 취업률이 저숙련자보다 높다”며 “지적 자본과 사회적 자원이 크게 낭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AI가 변수를 더한다. 베트남 정부가 키우려는 AI·반도체·핀테크 분야는 고학력 청년의 희망이지만, 역설적으로 같은 AI가 콜센터·단순 사무직·통·번역 같은 기존 씨티잡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김 이사는 “앞으로는 AI를 도구로 잘 다루는 경력자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신입은 오히려 돈을 내고 회사에 다녀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도제식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 판교에서는 이미 “IT 신입은 안 뽑는다”는 말이 공공연하고, 사람인 본사도 지난해 IT 채용 건수가 급감하면서 실적이 흔들렸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한국 기업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김 이사는 “여전히 베트남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다만 ‘싼 인건비를 쫓아 진출’한다는 과거의 공식은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강조했다.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가 놓인 위치, 미얀마·캄보디아의 정치적 불안정을 감안할 때 베트남을 대체할 생산기지는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시장에서 ‘사람을 제대로 뽑고 지키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느냐다.

체질 개선 없이는 승산 없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사람을 구하려면 결국 세 가지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이사의 결론이다.
첫째, 채용 채널을 직군별로 분리할 것. 공장 생산직은 인력 에이전시, 사무직·IT는 온라인 플랫폼, 팀장급 이상은 검증된 헤드헌팅 회사-한국식으로 ‘한 곳에서 다 뽑는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베트남 노동시장은 구조적으로 분절돼 있고, 각 트랙은 서로 다른 언어로 돌아간다.
둘째, 직무별 매뉴얼과 명확한 R&R(역할과 책임) 체계를 갖출 것. ‘일머리’와 ‘센스’에 의존하는 한국식 관리는 베트남에서 통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이 베트남 청년들에게 선호되는 이유도, 중국 기업이 무리한 방식으로나마 인력을 빨아들이는 이유도 결국 ‘역할이 명확하다’는 점 때문이다. 김 이사는 “매뉴얼화된 업무 체계는 직원 이탈률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회사의 문화와 이벤트를 외부에 꾸준히 노출할 것. 베트남 구직자에게 ‘좋은 회사’는 번쩍이는 사옥이 아니라 직원들이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는 회사다. 한국 관리자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사내 이벤트 문화’가 베트남에서는 채용 경쟁력의 핵심 지표가 된다.
김 이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기업도, 베트남 구직자도 똑같이 명심해야 합니다. AI 시대에는 결국 각자의 생산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유창한 외국어만 하는 인재가 아니라, 외국어에 영업력·마케팅력·개발력·디자인 감각을 더한 인재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기업 역시 ‘한국에서 이 정도면 베트남에서는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착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베트남 방식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트남 노동시장의 풍요 속 빈곤-청년 160만 명이 일자리를 못 찾고, 동시에 수많은 한국 공장과 사무실이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이 역설의 해법 절반은, 결국 한국 기업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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