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트럼프는 유학생을 타깃으로 하는가

‘반엘리트 정치’VS 저항하는 교육의 대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를 향해 전방위적 공격을 퍼붓고 있다. 40억 달러 규모의 연방 보조금 취소에 이어 외국인 유학생 등록 금지, 기부금 면세 혜택 박탈까지 위협하며 사실상 대학 재원을 완전히 차단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하버드 때리기’는 단순한 반유대주의 척결이 아닌,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 전략의 산물이다.

하버드가 저항의 상징이 된 이유

트럼프 행정부가 수많은 명문대 중 하버드를 집중 타깃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등 다른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들이 행정부 요구에 일부 굴복하며 타협점을 찾는 모습을 보인 반면, 하버드는 정면으로 맞섰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유대주의 대책 태스크포스(Anti-Semitism Task Force)’가 하버드에 제시한 요구사항은 가혹했다. 특정 학과나 프로그램 폐지를 넘어서 “미국 가치에 적대적인” 학생 입학을 원천 금지하고, 학생회와 교수진 전원의 정치적 이념을 분기별로 감시·보고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이는 대학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전례 없는 조건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에 보낸 이메일이 처음에는 ‘실수로 발송됐다’고 해명했다가, 나중에 공식 요구사항으로 돌변한 경위다. 이는 행정부가 얼마나 치밀하게 대학을 압박할 방법을 모색했는지를 보여준다.
하버드가 이런 요구를 거부하고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본보기’를 만들 절호의 기회가 됐다. 크리스티 노엠(Kristi Noem) 국토안보부 장관이 소셜미디어 엑스(X)에 “전국 모든 대학과 교육기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쓴 것은 이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하버드의 저항은 단순한 교육정책 반대가 아니라 미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이념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1636년 설립된 미국 최고(最古) 대학인 하버드는 미국 엘리트 교육의 상징이자, 8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권력의 산실이다. 트럼프에게 하버드를 굴복시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노동계급 결집을 위한 ‘엘리트 공격’

트럼프의 하버드 공격이 정치적으로 계산된 행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야후 파이낸스(Yahoo Finance)는 “트럼프에게 엘리트 기관과의 싸움은 핵심 전략”이라며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계급 백인 유권자가 그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미국 유권자의 59%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이들에게 하버드 같은 엘리트 대학은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특권층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연간 등록금만 8만 달러에 육박하는 하버드는 일반 미국인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트럼프는 이런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활용하고 있다. 그의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은 제조업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학 졸업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각종 혜택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
특히 조 바이든(Joe Biden) 전 대통령이 대학생 2600만 명을 위해 학자금 대출 최대 2만 달러를 탕감한 정책은 트럼프에게 좋은 공격 소재가 됐다. 트럼프는 취임 후 이 정책을 즉시 폐지하며 “왜 대학에 간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느냐”고 반문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혜택이 없느냐”는 것이 그의 논리다.
CNN은 “트럼프의 정치 전략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고등교육, 언론, 관료를 공격해 민주당이 이들을 감쌀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민주당을 ‘엘리트 정당’으로 낙인찍어 일반 서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유학생이 표적이 된 배경

트럼프가 외국인 유학생을 특별히 겨냥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하버드 전체 학생의 27%가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15%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 학생들 때문에 하버드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미국 학생이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트럼프는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거의 31%가 외국인 학생이며 우리는 그 학생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며 “그들은 세계의 매우 급진적인 지역에서 사람들을 데려오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문제를 일으키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국가들은 우리를 돕는 것도 아니고 하버드대에 투자하지도 않는다”며 외국인 학생 비율을 문제 삼았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타격이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대학 재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등록금 전액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고, 학문적으로도 캠퍼스를 풍성하게 만든다. 하버드의 경우 외국인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만 연간 수억 달러에 달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 유학생 비자(F, M, J 비자) 인터뷰 중단을 지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학생 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을 상대로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특히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과 연관된 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향후 중국인 학생 비자 신청에 추가 심사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는 약 27만5000명의 중국인 학생이 있는데, 이는 전체 학생 비자 소지자의 20%에 해당한다. 인도만이 미국에 더 많은 학생을 보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인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하며 “선동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정부는 미국 엘리트 대학들이 보수적 사고를 억압하고 반유대주의자들을 감싸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외국인 학생들이 이런 분위기 조성에 일조한다고 봤다.
리오 터렐(Leo Terrell) 태스크포스 선임 법률고문은 “이 대학들을 파산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스티브 밀러(Steve Miller) 백악관 국내정책 참모를 비롯한 트럼프 핵심 참모들이 이런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학 때리기’가 실제로 노동계급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시된다. 트럼프가 “하버드 보조금 30억 달러를 직업학교(trade school)에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후속 조치나 입법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야후 파이낸스는 “후속 조치 없이는 단지 하버드를 처벌하려는 계획의 부산물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하버드대 모린 마틴(Maureen Martin) 이민서비스 책임자는 “많은 유학생들이 전학을 문의하고 있다”며 “학생과 교직원 커뮤니티에 깊은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했다”고 밝혔다. 일부 미국 학생들도 “유학생이 부족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다”며 전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전 세계가 나서고 있는 ‘하버드 유학생 유치전’

트럼프의 하버드 유학생 금지 조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이 앞다퉈 하버드 유학생들을 자국으로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적극적 수용 의지

일본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베 도시코(阿部俊子) 문부과학상은 5월 27일 기자회견에서 “의욕과 재능이 있는 젊은이들의 배움을 보장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력하면서 임하고자 한다”며 하버드대 유학생 지원 의향을 공식 표명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이 일본인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출신 하버드대 유학생도 차별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각 대학에 하버드대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요청했으며,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일본학생지원기구(JASSO)가 각 대학으로부터 취합해 발표할 예정이다.
도쿄대학교(東京大學)는 이미 하버드대 유학생을 한시적으로 수용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에 직면한 일본 대학들에게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기회가 되고 있다.

홍콩의 ‘문호 개방’ 선언

홍콩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존 리(John Lee) 홍콩 행정장관은 5월 27일 “미국 정책에 영향을 받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한 학생이라면 누구든 홍콩에서 공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선언했다.
리 행정장관은 “특별행정구 정부는 8개 대학교육자조위원회(UGC) 지원 대학과 함께 불공평 대우를 받은 학생을 지원하고 그들이 홍콩에서 계속 공부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UGC 지원 대학에는 홍콩대학교(University of Hong Kong), 홍콩중문대학교(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홍콩과기대학교(Hong 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홍콩이공대학교(Hong Kong Polytechnic University) 등 세계적 명문들이 포함된다.
홍콩과기대는 5월 31일 하버드대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들이 대신 홍콩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홍콩에는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의 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에 4개 대학이 포함돼 있어 교육 수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유럽연합의 ‘Choose Europe’ 이니셔티브

유럽연합(EU)도 대응에 나섰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집행위원장은 5월 파리 소르본대학교(Sorbonne University)에서 5억7000만 달러 규모의 ‘Choose Europe’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폰 데어 라이엔 위원장은 트럼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롭고 열린 연구”를 강조하며 “세계 전역에서 위협이 증가하고 있지만, 유럽은 원칙에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학문적·과학적 자유의 터전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EU 연구위원회는 5월 23일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도로테 베어(Dorothee Bär) 독일 연구부 장관은 “이는 긴급히 번복돼야 할 결정”이라며 “다른 유럽 국가 동료들도 광범위한 동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베어 장관은 유럽이 과학적 자유의 영역으로서, 그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국제 환경에서 새로운 교육 및 학술 기회를 고려하는 학생과 연구자들의 대안적 목적지로서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나 마리아 베르니니(Anna Maria Bernini) 이탈리아 대학연구부 장관도 “우리에게 대학은 항상 자유와 국제주의의 공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대화와 비판 정신이 길러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베르니니 장관은 이탈리아가 현재 9만6000명 이상의 외국인 학생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탈리아 대학은 세계에 열려 있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외교적 대응

중국은 외교적 채널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월 31일 정례브리핑에서 미중 교육협력이 “상호 이익”이라며 “중국은 해외 중국 학생과 학자들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일관되게 교육 교류의 정치화에 반대해왔다”며 “미국의 이런 행동은 자국의 이미지와 국제적 신뢰도만 손상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미국에는 약 27만5000명의 중국인 학생이 있는데, 이는 2019-20년 37만2000명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갈등, 그리고 트럼프 1기 때의 ‘차이나 이니셔티브(China Initiative)’로 인한 인종 프로파일링 논란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대학과의 전쟁은 계속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과의 전쟁’은 하버드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터렐 고문은 “캘리포니아대학교(UC) 시스템에 대한 대규모 소송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UCLA, UC 버클리 등 10개 캠퍼스로 구성된 UC 시스템은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주의 대표적 공립대학이다.

미국 명문대 입학은 전 세계 학생과 학부모들이 갈망하는 목표로, 미국의 핵심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상징한다. 하버드, 스탠퍼드(Stanford), MIT 등 미국 명문대는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엘리트를 양성해온 산실이다. 이들 대학 출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친미적 성향의 지도층이 되는 것은 미국에게 막대한 외교적 자산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유학생 제한 정책은 이런 소프트파워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중국, 인도, 한국 등 주요 유학생 송출국에서는 미국 대신 캐나다, 영국, 호주 등으로 유학 방향을 틀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인재들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술기업들이 외국 출신 창업자나 핵심 인력들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학생 제한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기술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버드를 비롯한 대학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트럼프 정책을 비판한 교수진·행정직원·학생들이 있는 대학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연방의회를 통과 중인 공화당 예산안은 엘리트 대학 기부금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 대학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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