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업계
“재고도, 창고도, 통신 장비도 필요 없다.
홈페이지 하나만 있으면 오늘 당장 통신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
요즘 인터넷과 SNS에 넘쳐나는 eSIM 판매업자 모집 광고들이 하나같이 내세우는 말이다.
플라스틱 유심(SIM) 카드를 대신하는 새로운 방식인 eSIM(이심)이 널리 퍼지면서,
이걸 싸게 떼어와 되파는 업자와 광고가 부쩍 늘었다. 광고들은 한결같이
“많이 남고, 위험은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관련 자료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그래서 eSIM이 뭔가… ‘유심 없는 유심’
먼저 개념부터 짚자. eSIM은 우리말로 ‘내장형 유심’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손톱만 한 플라스틱 유심 카드를 휴대폰에 끼워 넣었다. eSIM은 그 카드를 아예 휴대폰 안에 심어 두고, 카드를 바꿔 끼우는 대신 통신사 정보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쓰는 방식이다.
▲ 작은 변화, 더 큰 자유
eSIM이 만드는 스마트한 연결의 시대
쓰는 법은 간단하다. 요금제를 하나 사면 QR코드가 오고, 그 코드를 휴대폰으로 한 번 찍으면 끝이다. 해외여행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예전에는 공항에서 현지 유심을 사서 갈아 끼우거나 비싼 로밍을 켜야 했지만, eSIM은 출국 전에 스마트폰으로 현지 데이터 상품을 사두고 QR코드만 찍으면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이 터진다.
이 방식이 빠르게 퍼진 데는 이유가 있다. 애플이 일부 나라에서 유심 꽂는 자리를 아예 없앤 아이폰을 내놓고, 삼성과 구글도 잇따라 eSIM을 기본으로 넣으면서 이제 플라스틱 유심 자체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쓰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이걸 파는 시장도 같이 커진 것이다.

eSIM 업체들의 정체… ‘통신사’가 아니라 ‘중간 상인’

여기서 오해 하나를 풀어야 한다. 여행 다닐 때 많이 쓰고, 요즘 유튜브에서 광고를 많이하는 에어알로(Airalo)나 홀라플라이(Holafly) 같은 업체들은 통신사가 아니다. 이들은 기지국도, 통신망도 없다. 쉽게 말해 여러 통신사의 데이터를 대신 받아다 파는 ‘중간 상인’에 가깝다.
이 바닥은 위아래로 층이 나뉘어 있다. 맨 아래에 진짜 통신망을 가진 회사가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그걸 넘겨받아 되판다. 맨 아래는 우리가 아는 진짜 통신사다. 기지국과 통신 장비를 직접 갖추고 수십억 달러를 들여 망을 운영하는 곳으로, 한국의 SKT나 KT 같은 회사를 떠올리면 된다. 그 위에는 이런 통신사에서 데이터를 도매로 사다가 여러 통신망을 묶어 상품으로 만들어 되파는 중간 도매 회사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소비자에게 앱으로 직접 파는 곳이 바로 에어알로와 홀라플라이다.
두 회사가 어떤 곳인지 보면 성격이 분명해진다. 에어알로는 2019년에 생긴 세계 첫 eSIM 장터로, 200개가 넘는 나라의 데이터 상품을 판다. 규모도 꽤 커서 여러 투자사로부터 2억8700만 달러를 투자받아 회사 가치가 10억 달러에 이르렀다. 홀라플라이는 2017년 스페인에서 시작한 회사로, 여러 나라의 유심과 eSIM을 판매한다. 둘 다 자기 통신망 없이 남의 데이터를 받아다 파는 장터인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큰 업체들조차 이제는 소규모 판매업자들에게 물건을 대주는 ‘도매상’ 노릇까지 한다는 것이다. 에어알로는 다른 업체들이 200개국 넘는 곳에서 여행용 eSIM을 팔 수 있도록 물량을 대주는 사업도 함께 한다. 요즘 쏟아지는 소규모 판매업자들이 바로 이런 큰 곳에서 데이터를 떼어와 되파는 것이다.
“하나 팔면 4달러 넘게 남는다”… 솔깃한 숫자들
판매업자를 모집하는 쪽이 내세우는 수익은 확실히 솔깃하다. 한 판매 대행 업체는 4.99달러에 파는 상품의 원가가 0.70달러밖에 안 돼 하나 팔면 4.29달러가 남고, 물건을 부치거나 창고에 쌓을 필요가 없어 남는 돈이 곧바로 이익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한 달에 100개만 팔아도 개당 7달러씩 700달러가 남고, 더 비싼 상품을 붙이면 이익률을 60% 넘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게 가능한 건 시작하기가 너무 쉬워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통신사와 계약하고 장비를 갖추고 몇 달씩 개발을 해야 하지만, 남이 만들어 둔 판매 시스템에 자기 이름표만 붙이는 방식을 쓰면 이 과정을 전부 건너뛰고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 여기에 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고 이익을 전부 가져가는 데다, 아래에 다른 판매자를 끌어들이면 그 사람이 번 돈에서도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까지 얹힌다. “너도나도 뛰어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SIM 장사, 어떻게 뛰어드나… 네 가지 방법
그럼 이 시장에는 어떻게 들어갈까. 들이는 돈과 어려움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위로 갈수록 어렵고, 아래로 갈수록 쉽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의 시스템을 빌려 자기 이름으로 파는 것이다. 큰 업체와 계약해 데이터를 싸게 받아다 자기 브랜드를 붙여 파는 방식으로, 요즘 광고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통신사 계약도, 장비도, 개발도 필요 없어 홈페이지와 결제 기능, 도매 계약만 있으면 시작된다. 그다음 단계는 큰 업체의 시스템을 자기 앱에 연결해 주문과 QR코드 발급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여행사나 금융 앱이 자기 서비스 안에 eSIM을 끼워 파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제법 규모 있는 사업이 된다. 통신사에서 직접 데이터를 도매로 사들이고, 여러 통신망을 묶어 상품을 만들고, 자체 판매 시스템까지 운영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와의 직접 협상과 큰 자본이 필요하다. 맨 위는 eSIM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과 장비 자체를 만드는 회사들이다. 탈레스, G+D, IDEMIA 같은 전문 기업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새로 뛰어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가장 쉬운 문일수록 위험도 크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 경쟁을 버텨내는 곳들의 공통점으로 자기만의 판매 시스템을 직접 갖췄거나, 단순히 이름표만 바꿔 파는 게 아니라 큰 업체와 제대로 된 협력 관계를 맺은 곳을 꼽는다. 남이 만든 시스템에 얹혀 이익만 챙기는 방식은 들어오긴 제일 쉬워도 밀려나기도 제일 쉽다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실제로 남는 건 ‘절반’
하지만 광고 문구를 걷어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판매업자에게 돌아가는 몫부터가 광고만큼 크지 않다. 여러 도매 업체가 실제로 제시하는 이익률은 파는 양과 등급에 따라 30~50% 정도다. 더 중요한 건 ‘진짜로 손에 쥐는 돈’이다. 한 도매 회사가 공개한 실제 사례를 보면, 첫해에 2만2000개를 팔아 평균 이익률이 28%였는데, 그마저도 3분의 1은 위쪽 업체가 수수료로 가져갔다. 광고가 외치는 ‘50% 이상’과 실제 ‘28%, 그나마 3분의 1은 떼인다’ 사이의 차이가 이 시장의 진짜 모습이다.
‘위험이 없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도매로 데이터를 사는 방식이 문제다. 데이터는 개별 상품을 하나씩 사는 게 아니라 큰 덩어리로 미리 약속하고 사들이는데, 약속한 양을 실제로 다 팔지 못하면 손해가 난다. 예를 들어 3만 개 분량을 미리 사놓고 2만7000개만 팔면, 못 판 3000개어치가 고스란히 손실이 되면서 실제 원가가 올라가고 남는 게 줄어든다. 여기에 광고가 절대 말하지 않는 비용들, 즉 손님을 끌어오는 광고비, 결제할 때 떼이는 수수료, 그리고 “연결이 안 된다”는 손님 문의를 처리하는 비용까지 더하면 실제로 남는 돈은 훨씬 더 줄어든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이 커지는 건 분명하다. 다만 조사기관마다 전망치가 제각각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 시장의 불확실함을 보여준다. 한 보고서는 여행용 eSIM 시장이 2025년 약 5억8500만 달러에서 2026년 7억1000만 달러로 커졌고 2032년 18억5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다른 곳은 2025년 9억6000만 달러에서 2033년 23억1000만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잡았다. 훨씬 더 큰 숫자를 내놓는 곳도 있지만 믿을 만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문제는 시장이 커지는 만큼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업체들이 협력과 인수를 통해 판매 통로를 확보하려 다투면서 시장이 잘게 쪼개지고 있다. 앞서가는 업체도 안심할 수 없다. 2019년에 시작한 최고참 에어알로조차 경쟁이 심한 2026년에는 ‘1등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 싸움도 이미 벌어지고 있다. 한 비교 자료는 에어알로 평균 가격이 25.96달러인데 어떤 경쟁사는 14.33달러라며 후발 업체들이 싼값으로 밀고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들어오지만, 오래 버티긴 어려운 문
정리하면 eSIM 되팔기 장사는 재고도 없고, 시작하기 쉽고, 시장도 크고 있는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광고가 내세우는 큰 이익의 상당 부분은 도매로 미리 사둔 물량의 위험, 광고비, 그리고 넘쳐나는 경쟁자들 때문에 빠르게 사라진다. 오히려 “eSIM 광고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 자체가, 업자들이 이미 남는 돈의 상당 부분을 광고비로 쓰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문은, 대개 누구도 오래 버티기 어려운 문이기도 하다. 골드러시 때 진짜 돈을 번 사람은 금을 캐러 간 사람들이 아니라 곡괭이와 청바지를 판 상인들이었다는 오래된 이야기를, 이 시장이 다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