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베트남 호찌민의 유서 깊은 길거리 카페 문화가 전격 착륙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현대적인 에스프레소 머신 대신 알루미늄 필터를 사용해 한 방울씩 우려내는 전통 ‘핀(Phin) 커피’와 길거리에 깔린 낮은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미식 트렌드로 떠올랐다.
16일 미국 현지 외식업계 및 소셜미디어(SNS) 등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미션(Mission) 지구의 한 골목은 주말마다 베트남 현지 노천카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호찌민 출신의 유학생이자 직장인인 히에우 한(Hiếu Hân·27세)과 쭝 끼엔(Trung Kiên·25세)이 공동 창업한 이동식 팝업(Pop-up) 카페 ‘나우 커피(Nâu Coffee)’를 찾은 현지인들이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평균 1시간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사업 아이디어는 지난 2025년 여름 끼엔이 고향을 방문해 아버지를 만나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순간에서 비롯됐다. 필터에서 커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느림의 미학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발견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동업자 한과 함께 호찌민 길거리 카페의 감성을 온전히 재현하기로 결심했다.
나우 커피의 성공 비결은 현지화라는 타협 대신 베트남 오리지널 스타일을 고집한 데 있다. 이들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레시피를 수정하는 대신, 베트남 최대 커피 산지인 부온마투오트(Buôn Ma Thuột)에서 직수입한 고품질 로부스타(Robusta) 원두를 사용해 특유의 진하고 씁쓸한 풍미를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특히 연유와 추출용 필터는 물론, 길거리 감성의 핵심 지표인 ‘빨간색 낮은 플라스틱 의자’까지 모두 베트남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오는 끈기를 보였다.
지난 2025년 7월 샌프란시스코 외곽 알라메다(Alameda)에서 소규모로 시작했던 이 팝업 카페는 입소문을 타고 도심으로 진출하며 전방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현재 오후 1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는 4시간의 영업시간 동안 매회 400잔 가까운 커피가 동이 난다. 메뉴는 베트남 전통 연유커피(까페스아다)를 비롯해 소금커피, 계란커피, 판단잎커피 등으로 구성됐으며 가격은 잔당 7달러(한화 약 9,500원) 안팎이다.
미국 현지 언론의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의 유명 미식 매체 에디터(Eater)는 나우 커피를 샌프란시스코의 신흥 문화 현상으로 소개하며, 기사 전반에 호박색 소금커피의 독창적인 짠맛 크림 층을 극찬했다. 현지 방송사 KRON4 역시 올해 초 설 명절(Tet) 팝업 행사 당시 바이어와 스태프들이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진행한 이색 문화 현장을 취재해 방영했다.
까다로운 캘리포니아주의 노점 유통 제재 법률을 우회하기 위한 젊은 창업가들의 영리한 연대 방식도 돋보인다. 이들은 독자적인 매장을 임대하는 대신 주말마다 마당이나 테라스 공간이 있는 현지 식당 및 바(Bar)와 협력하여 공간을 공유하는 상생 메커니즘을 택했다. 카페 공간에는 잔잔한 베트남 음악이 흐르고 전통 소품들이 배치되어 이국적인 밀도를 높였다.
매장을 찾은 현지인 세라(Sarah) 씨는 인터뷰에서 “몇 초 만에 나오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커피가 추출되기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 자체가 신선한 휴식으로 다가온다”며 가벼운 의자가 팝업 매장에 매우 실용적이라고 평가했다. 주 고객층은 20~40대의 아시아계 미국인과 베트남 교민들이 주를 이루며, 틱톡 영상을 보고 다른 도시에서 2시간을 운전해 찾아오는 교민이 있을 정도로 향수를 달래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창업 1년을 넘어선 나우 커피는 현재까지 11곳의 거점을 순회하며 팝업을 전개해 왔다. 본업과 병행하느라 매번 가대를 철거하고 이동해야 하는 체력적 한계가 있지만, 이들은 조만간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정식 고정 매장을 오픈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향후 베트남 전통 음료인 센텔라(rau má) 즙이나 복숭아 차 등으로 메뉴를 다변화하고, 현지 비엣끼우 청년 브랜드들과 전 선구적인 문화 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창업주 한 씨는 “미국 소비자들이 이제 단순한 쌀국수(포)나 반미를 넘어 베트남의 가장 원초적이고 정통성 있는 라이프스타일 경험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