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 무대를 전방위적으로 제패해 온 ‘스포츠 강국’ 미국이 왜 유독 남자 축구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엘리트 선수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핵심 원인으로 시스템이나 자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문화적 장벽’을 지목하고 있다.
16일 글로벌 축구 포럼 및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북미 월드컵이 본격 가동되면서 미국 축구계에서는 자국의 축구 스타 부재 현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학계와 일선 지도자들은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의 부실함, 과도한 교육비 지목, 전술 라이선스 체계의 한계 등을 원인으로 꼽아왔다. 그러나 현장의 핵심 내부자들은 이 모든 현상의 뿌리에 결국 ‘축구 문화의 결여’가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유소년 축구의 체질을 전격 개선하는 데 기여했던 톰 바이어(Tom Byer) 전문위원은 “축구는 철저하게 문화가 주도하는 스포츠”라고 정의했으며, 수십 년간 미국 유소년 시스템을 지휘해 온 존 해크워스(John Hackworth) 감독 역시 “미국 전역을 관통하는 일관된 축구 문화 가이드라인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타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축구가 미국 사회에 너무 늦게 착륙했다는 점이다. 유럽과 남미에서 축구가 종교이자 제1의 스포츠로 확고한 자산 지표를 형성하는 동안, 미국인들의 관심은 미식축구(NFL), 농구(NBA), 야구(MLB)에 철저히 편중되어 있었다. 이 같은 문화적 공백은 단순히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해외 유명 코치진을 영입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메워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여기에 유소년 축구 시장이 지나치게 상업적 메커니즘으로 변질된 점도 발목을 잡았다. 수많은 사설 클럽과 리그가 미래의 축구 스타를 육성한다는 본질적 목표 대신, 고액의 학비 수임료를 챙기는 비즈니스 가이드라인에 맞춰 성장했기 때문이다. 매트 크로커(Matt Crocker) 전 미국축구협회 기술이사는 “미국 축구계 어느 계층과 대화를 나눠봐도 현재의 유소년 시스템에 사법적·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데 모두 동의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번 월드컵에 개최국 자격으로 참여하면서도 세계 탑 100위 반열에 드는 확실한 에이스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다. 전 세계 탑 100인 중 80퍼센트가 역대 월드컵 우승국 8개국과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단 10개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지표는, 오랜 축구 문화와 효율적인 육성 생태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증명한다.
세계적인 축구 거장들의 성장 배경을 보면 문화의 힘이 더욱 명확해진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킬리안 음바페, 라민 야말 같은 천재들은 모두 일상 속에서 축구가 공기처럼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출신의 메시나 프랑스 파리 외곽 본디 출신의 음바페에게 축구는 매일 먹는 빵과 물처럼 필수적인 삶의 일부였다. 이들은 2~3세 때부터 골목과 마당에서 스스로 공을 조작하며 감각을 익혔다. 반면 현재 미국 축구의 간판스타인 크리스천 풀리식은 자신이 자란 펜실베이니아주 허시(Hershi)를 두고 “축구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전형적인 미국의 시골 마을이었다”고 회고했다. 풀리식은 축구 선수 출신인 부모 밑에서 자라 영국에서 1년간 거주하는 특수한 행운 지표를 누렸지만, 이는 미국 내에서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스포츠 인재 발달을 연구하는 마리케 엘페링크-젬서(Marije Elferink-Gemser) 네덜란드 교수는 “축구의 볼 제어 기술은 극도로 복잡해 영유아기 시절의 독자적인 탐색이 필수적”이라며, 어른들의 개입이 최소화된 환경에서 스스로 기술을 체화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톰 바이어 위원 역시 만 6세 이전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며 “대다수 미국 아이들은 이 시기에 클럽에 가입해 기초적인 규칙을 수동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미 축구 선진국 아이들보다 출발선에서 수 마일 뒤처진 채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 짚었다.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아카데미들이 지난 20년간 수억 달러를 투자하며 엘리트 육성 면에서 괄목할 만한 기술적 지표를 이뤄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하부 구조로 내려가면 무분별한 사설 클럽 간의 선수 빼앗기 경쟁, 무자격 코치 양산, 상업적 이윤을 위한 장거리 원정 경기 유도 등 시스템이 매우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으로 꼬여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벨기에의 축구 컨설팅사 더블패스(DoublePass)의 한스 반더 엘스트(Hans Vander Elst) 이사는 “축구 강국들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세미프로, 프로 구단으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명확하고 촘촘하게 연계되어 있다”며 미국의 경우 인재의 밀도는 높으나 이들을 정상으로 이끌 효율적인 가이드라인 통로가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미국 축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낙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축구협회가 추진하는 공학적 보급 프로그램인 ‘학교 축구(Soccer at Schools)’ 등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일본이 과거 장기 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유소년기 축구 입문을 유도해 ‘인공적인 축구 문화’를 정착시킨 사례가 좋은 벤치마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내 세대교체가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과거 축구를 접해본 적 없던 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의 젊은 부모들은 MLS와 월드컵을 보며 자란 세대다. 야레드 미클로스(Jared Micklos) YSC 아카데미 전략이사는 “축구를 즐겼던 부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아이 손에 축구공을 쥐여주게 된다”며 문화의 대물림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미국이 단기간에 프랑스나 우루과이처럼 축구가 국가적 정체성과 직결되는 깊은 문화적 토양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매주 수십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고 있으며, 수천만 명이 월드컵을 주시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험적 자산이 축적되면 조만간 미국에서도 세계 50대 선수 반열에 드는 천재가 전격 출현할 것”이라며, 미국 축구는 이제 막 거대한 잠재력의 빗장을 열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단호한 전망을 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