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노동당 내각의 핵심 축이자 국제 안보 전선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아온 존 히리(John Healey) 국방장관이 재정 당국과의 국방 예산 증액 갈등 끝에 전격 사임했다. 히리 장관은 사임 서한을 통해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와 재무부의 안보관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출범 2년 차를 맞은 스타머 행정부가 최대의 정치적 시험대에 직면하게 됐다.
13일 영국 국방부 및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존 히리 국방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군 전력 강화를 위한 재정 확보 실패의 책임을 정부 수반에게 돌리며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이번 사임은 국가방위력 증강을 위한 군사 예산 편성을 두고 국방부와 재무부가 수개월간 팽팽한 대치 전선을 이어온 끝에 최종 합의 도달에 실패하면서 발생한 구조적 파열음으로 분석된다. 두 부처 간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정부가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기획해 온 대규모 군사 투자 및 전력 현대화 로드맵은 전면 표류하게 됐다.
앞서 스타머 총리는 국방비를 오는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퍼센트, 2034년까지 3퍼센트 수준으로 점진적 인상하겠다고 대내외에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영국 군부와 국방부는 현재 유럽과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 수위를 감안할 때 정부가 제시한 예산 증액 속도가 지나치게 안일하고 느리다며 강력히 반발해 왔다. 히리 장관은 스타머 총리에게 보낸 고강도 사직서를 통해 “총리는 국방 재원을 약속할 능력이 없고, 재무부는 안보 위협이 날로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할당할 의지조차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히리 장관은 내각이 이번 주 초 발표한 국방 투자 계획안에 대해 “극도로 위험한 현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를 방위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날을 세웠다. 재정 지원 지연으로 장기적인 안보 프로그램 가동이 막히자 영국의 방위산업계 역시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더불어 미국의 유럽 안보 방위 분담률이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독자적인 방산 투자가 가로막힌 상황에 대해 히리 장관은 “내게는 사임서 제출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24년 7월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 국방 수장으로 발탁된 히리 장관은 정계와 군부에서 매우 유능하고 엄격한 원칙주의자라는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 약 2년간의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 사회의 무기 자금 지원을 결속하는 데 결정적인 킹메이커 역할을 수행했으며, 향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휴전 협정 체결 시 가동될 다국적 평화유지 안보 연합체 결성을 주도해 왔다. 또한 미국과 이란의 평화 협정 체결 가능성에 대비해 호르무즈 해협의 국제 항행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다국적 해군 전력 구축을 이끄는 등 글로벌 안보 지형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그의 파격적인 중도 사퇴로 영국의 대외 안보 정책 전반에 단기적인 사태 공백과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