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스티브 잡스·머스크, 베트남엔 누가 있나

미국엔 스티브 잡스·머스크, 베트남엔 누가 있나

출처: Cafef
날짜: 2026. 6. 11.

올해 고등학교 국가졸업시험(대입 수능) 국어(문학) 과목에 “미국에는 세계를 바꾼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가 있는데 베트남은 어떻게 해야 이들 같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가”라는 사회논술형 문제가 출제되면서, 현지 학계와 자본시장에서 베트남 테크 산업의 현재 위치를 진단하는 뜨거운 논쟁이 촉발됐다. 글로벌 정보기술 거인들과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난 삼십여 년간의 시장경제 발전 속에서 자신만의 기술 영토를 구축하며 베트남판 테크 기적을 일구고 있는 선구자들의 발걸음이 주목받고 있다.

12일 베트남 자본시장 및 정보통신 업계 등에 따르면 베트남 기술 생태계는 글로벌 아웃소싱부터 소프트웨어 자체 개발, 디지털 인프라 구축, 그리고 첨단 전기차와 인공지능 로봇 제조에 이르기까지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진화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드는 초거대 빅테크 기업은 아직 없을지라도, 국가 기술 경제의 뼈대를 세우고 글로벌 가치 사슬에 진입한 다섯 명의 대표적인 테크 경영인들이 베트남 기술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론된다.

가장 먼저 베트남 지식의 세계화를 이끈 ‘개척자’로는 에프피티(FPT) 그룹의 쯔엉 자 빈 이사회 의장이 꼽힌다. 지난 1988년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소규모 정보학 기업으로 출발한 에프피티는 현재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그리고 차세대 반도체 설계까지 아우르는 베트남 최대 정보기술 엔터프라이즈로 성장했다. 인도 시장의 인포시스나 위프로처럼 수만 명의 베트남 엔지니어들을 양성해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수출함으로써 베트남이 단순 저임금 노동력 공급처가 아닌 고급 지식과 기술력을 갖춘 테크 허브임을 전 세계에 증명해 냈다.

인터넷 소비 플랫폼 경제의 상징이자 베트남 최초의 유니콘 기업을 일군 주역은 브이엔지(VNG)의 레 홍 민 이사회 의장이다.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으로 자본을 축적한 브이엔지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처럼 메신저 기반의 거대 디지털 생태계인 ‘잘로(Zalo)’를 성공시켰다. 페이스북이나 와츠앱 등 글로벌 플랫폼의 파상 공세 속에서도 7000만 명이 넘는 자국 유저들을 독점하며 공공 행정, 비즈니스, 전자결제 등을 하나로 묶는 스마트폰 필수 앱으로 자리 잡았다. 브이엔지의 성공은 현지 테크 기업이 해외 기술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 시장에 최적화된 독자적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거인들과 정면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강력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경제의 ‘척추’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인물로는 씨엠씨(CMC) 그룹의 응우옌 뚱 찐 회장이 주목받는다. 아마존웹서비스나 마이크로소프트 애저가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발전소 역할을 하는 것처럼, 찐 회장은 고도화된 자체 데이터 센터와 대규모 기업형 클라우드 시스템, 그리고 독자적인 인공지능 연산 인프라를 베트남 영토 내에 조밀하게 구축하고 있다. 국가 디지털 주권과 금융 데이터 보완이 핵심 화두로 떠오른 현 시점에서 외산 인프라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기업들에게 안전한 디지털 전환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다.

또한 척박한 보안 시장과 하드웨어 영역에서 고집스럽게 국산 기술 자립을 외쳐온 비카브(BKAV)의 응우옌 뜨 꽝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토종 백신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린 뒤 사이버 보안, 스마트홈, 인공지능 카메라 분야로 영역을 넓힌 꽝 회장은 애플과 삼성 등 글로벌 공룡들이 장악한 스마트폰 시장에 국산 브랜드인 ‘비폰(Bphone)’을 출시하는 등 숱한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비록 상업적인 대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지라도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정밀 하드웨어 제조 기술을 동시 확보하려는 그의 무모한 도전은 베트남 차세대 테크 인력들에게 귀중한 기술 자산과 제품 개발 노하우를 이식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최근 전 세계 테크 시장에서 가장 가파른 주목을 받는 인물은 단연 차량 전기화와 스마트 로봇 공학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빈그룹의 팜 냣 부엉 회장이다. 부동산으로 이룬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전기차 제조사인 빈패스트(VinFast)를 창업한 부엉 회장은 단기간에 자체 생산 라인을 갖추고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배터리 내재화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고도화를 추진하는 한편,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의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개발을 전담할 ‘빈로보틱스’ 등 첨단 딥테크 부문 자회사들을 잇달아 출범시켰다. 이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추진하는 미래 우주·로봇 산업과 궤를 같이하는 대담한 도박으로, 베트남 제조 산업을 단순 조립 기지에서 하이테크 엔지니어링 강국으로 체질 개선하겠다는 강한 야심의 방증이다.

베트남 거시경제 및 교육 전문가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파괴적 혁신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뛰어난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 문화, 기초 과학 위주의 교육 혁신, 그리고 규제를 과감히 푸는 제도적 ‘샌드박스’ 등 고도화된 기술 생태계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라지(차고)에서 출발한 애플이나 기숙사에서 시작한 페이스북처럼, 베트남의 선구적 1세대 테크 기업들이 다져놓은 토양 위에서 향후 10~20년 내에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들 진짜 ‘베트남의 스티브 잡스’가 탄생할 수 있을지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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