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물자와 식량이 국가의 배급 제도로 통제되던 베트남의 이른바 ‘바오껍(Thời bao cấp·배급제 시절)’ 시기에 민초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길거리에서 전격적으로 가동했던 독특하고 고질적인 희귀 직업들의 역사적 가공 데이터가 외국인 렌즈를 통해 전격 공개됐다.
19일 역사 학계 및 사진 아카이브 연구계 등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의 옛 시절을 추억하는 온라인 연구 모임과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베트남 전역을 지배했던 배급제 시절의 생생한 길거리 풍경 사진 데이터들이 공유되며 기성세대의 아련한 호환(향수)을 전격 자극하고 있다.
베트남의 배급제 시기는 크게 1964~1975년의 북베트남 시절과 통일 이후인 1976~1986년의 전국 배급제 시절 등 두 가지 범주로 정밀 분류된다. 이 시기 주민들은 국가가 발행한 배급표(Tem phiếu)와 쌀 통장(Sổ gạo)이 없으면 생필품 수치를 단 1g도 조달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물자 부족 리스크를 전격 겪었다. 이에 따라 버려지는 물건을 끝까지 재활용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기상천외한 거리의 직업들이 전격적으로 성행했다.
대표적인 희귀 직업이 바로 ‘볼펜 잉크 충전소(Bơm mực bút bi)’였다. 당시 볼펜은 민간에 흔하게 유통되지 않는 귀한 자산이었기에 잉크가 떨어지면 버리는 대신 무조건 전격 재사용해야 했다. 프랑스 일간지 뤼마니테(L’Humanité)의 하노이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루셀(Daniel Roussel) 기자가 지난 1985년 포착한 사진을 보면, 하노이 항응앙(Hàng Ngang)과 항다오(Hàng Đào) 거리의 점포 매장에는 주사기를 든 상인들이 전격 포착됐다. 이들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감청색, 적색, 흑색 잉크를 정밀 주입해 주는 기술 수소(과정)를 수행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필립 존스 그리피스(Philip Jones Griffiths) 역시 주사기로 볼펜 잉크를 충전하는 여인의 모습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전격 기록했다.
자전거가 가문 내 독점적인 최고가 금융 자산 지위이자 유일한 이동 인프라였던 1980년대에는 ‘자전거 타이어 규격 축소 및 재생업(Rút lốp xe đạp)’이 성행했다. 영국 외교관 존 램스던(John Ramsden)이 하노이 쩐쑤옌소안(Trần Xuân Soạn) 거리에서 촬영한 상점 가공 데이터를 보면 주민들이 타이어를 수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성상이 관찰된다. 당시 타이어는 공급량 수치가 극치에 달할 만큼 희소해 직장에서 배급 추첨(제비뽑기)을 수차례 거쳐야만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역사학자 즈엉 쭝 꾸옥(Dương Trung Quốc)은 저서를 통해 “내 자전거 휠 규격은 650mm인데 직장에서 배급받은 타이어는 680mm 규격인 기형적 미스매치 현상이 비일비재했다”라며 “이 때문에 타이어 가장자리의 강철 와이어(Tanh)를 과감히 절단해 길이를 줄여 휠에 억지로 맞추는 ‘타이어 축소 기술’이 탄생했다”라고 증언했다. 아울러 다 닳은 타이어 표면에 생고무 조각을 덧대고 뜨거운 압축 틀에 넣어 재생해 내는 ‘타이어 땜질업’ 역시 당시의 핵심 생계 인프라였다.
이와 함께 거리 곳곳을 독점했던 ‘슬리퍼 접착 및 재생업(Dán dép vỉa hè)’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주민들은 평생 동안 오직 고무타이어를 깎아 만든 호찌민 샌들이나 저가 플라스틱 슬리퍼 한 켤레만을 고스란히 소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슬리퍼 끝부분의 끈이 뜯어지거나 밑창이 갈라지면 노점의 땜질 장인을 찾아 불에 달군 쇠붙이로 고무를 녹여 붙이는 수소(과정)를 거치며 신발 수명을 강제 연장했다.
한편 물자가 극도로 통제되던 국영 매점(Quầy mậu dịch)의 ‘배급 mậu dịch viên(국영 매점 판매원)’들은 당시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 지위를 누렸던 존재로 정밀 묘사됐다. 상업계 고등학교나 2년제 경제 전문 기초 수소(과정)를 이수하고 상품 계측, 저울질, 창고 관리 지표를 터득한 이들은 생필품을 분배하는 독점적 권한을 가졌기에 주민들 사이에서 가히 ‘호랑이’ 같은 지위로 군림했다.
또한 하노이 골목길 전역에는 공동체 자치 기구인 ‘조복무(Tổ phục vụ·생활 서비스대)’ 인프라가 촘촘히 가동됐다. 이곳은 독거노인이나 일손이 부족한 가정을 대신해 배 속을 데워줄 뜨거운 끓인 물을 판매하거나 쌀과 부품을 대신 배급받아 주는 대행 서비스를 전격 전개했다. 특히 민족 최대 명절인 설(Tet) 시즌이 도래하면 전통 떡인 반쯩(Bánh chưng)을 거대한 솥에 대신 쪄주거나 명절용 특수 배급품 꾸러미 유통을 완벽히 보조하며 고난의 행군 시절을 함께 버텨내는 이웃 간의 전격적인 완충 장치 역할을 수행했다고 역사학자들은 강력히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