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Trend – 푸미흥, 푸미흥, 황혼 녘의 상권을 걷다

호찌민 7군 한인타운 현장 르포

토요일 오후 세 시, 스카이가든(Sky Garden) 아파트 앞 도로. 점심 피크타임이 막 지나간 시간대임에도 거리는 한산하다. 오토바이 몇 대가 느리게 지나가고, 닫힌 셔터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은 건물 하나가 시야에 걸린다. 파리바게트(Paris Baguette) 앞에는 테이크아웃 봉투를 든 한국인 주부 서너 명이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흩어진다. 한때 이 거리는 토요일 오후면 한국어가 공기를 채우다시피 했다. 식당 앞에 줄이 늘어섰고, 아이들 웃음소리와 골목 깊은 곳 노래방 유리창 너머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가 뒤섞였다.
푸미흥(Phu My Hung). 베트남 호찌민시 7군에 자리한 이 신도시는 지난 20여 년간 동남아시아 최대 한인 상권의 대명사로 불려 왔다. 한국의 강남, 분당 같은 계획 신도시 구조, 넓은 도로와 잘 정비된 인도, 그리고 반경 2킬로미터 안에 밀집한 한인 아파트 군이 만들어낸 클러스터는 베트남에서 한국어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유일한 공간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기자가 수주에 걸쳐 이 거리를 요일별, 시간대별로 관찰하며 돌아다닌 결과, 푸미흥은 지금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예전과 똑같다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세 개의 상권, 세 개의 얼굴

푸미흥의 한인 상권은 외지인의 눈에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뚜렷이 다른 세 구역으로 나뉜다. 이 구분은 단순한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손님층과 업종, 그리고 상권의 온도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다.
첫 번째는 스카이가든 상권이다. 1~3차 단지로 구성된 스카이가든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구역은 가장 오래된 한인 상권의 원형에 해당한다. 파리바게트, 기름진 멜로, 나경 떡집, 아티산(Artisan) 같은 가게들이 늘어선 이 골목은 한국의 신도시 근린 상권과 흡사하다. 평일 낮에는 주부들이 주로 오가고, 저녁이 되면 식당이 술집 역할을 겸한다. 기자가 평일 수요일 오후 여섯 시에 이곳을 찾았을 때, 대여섯 개 식당 가운데 절반 정도는 빈 테이블이 보였다. 10년 넘게 이 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한다는 한 상인은 익명을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저녁 여섯 시면 이미 만석이었어요. 요즘은 일곱 시가 돼야 조금씩 차요. 그것도 주말에만.”

두 번째는 흥푹(Hung Phuc) 아파트 인근 상권이다. 이 구역은 스카이가든 상권과 일부 겹치지만 성격이 다르다. 백반집과 한식당이 즐비하고, 마사지 업소와 가성비 위주의 비즈니스 호텔이 몰려 있다. 주요 고객은 베트남 각지 공단을 순회하거나 호찌민을 거점으로 움직이는 중장년 한국 남성 출장자들이다. 금요일 저녁, 이 구역은 세 곳 가운데 가장 활기가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40~50대 남성들이 주점 야외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고, 마사지 업소 앞에는 가게 직원이 손님을 안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 활기 역시 주중 낮 시간대에 다시 찾아가 보면 낮잠 자는 동네처럼 조용해진다.

세 번째 상권은 크레센트 몰(Crescent Mall) 남쪽과 한국국제학교(KISH) 사이에 위치한 미드타운(Midtown) 상권이다. 2020년 이후 형성된 이 구역은 앞의 두 상권과는 시대부터 다르다. 안토니아(Antonia), 미드타운 더 그랜드(The Grand), 아센티아(Ascentia) 같은 새 아파트 단지를 배후로 두고 있으며, 주요 고객층은 가족 단위 주재원과 젊은 한인 여성들이다.
마사지 업소는 거의 없고, 카페와 건강식 레스토랑, 아이 동반 가족이 이용할 만한 가게들이 중심을 이룬다. 토요일 오전 이 구역을 찾았을 때,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몇 쌍이 카페 앞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한 30대 여성 주재원 배우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스카이가든 쪽은 거의 안 가요. 여기가 더 깨끗하고 아이 데리고 다니기 편해서요.”

넓다는 것의 두 가지 의미

푸미흥 상권이 가진 근본적인 약점 가운데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지역의 자랑인 ‘넓음’에서 비롯된다. 베트남의 전통 상권은 좁은 골목과 오토바이가 뒤엉키는 밀도 높은 공간에서 형성된다. 좁기 때문에 오히려 도보와 오토바이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소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푸미흥은 다르다. 신도시답게 도로가 넓고 인도도 잘 닦여 있지만, 그것은 곧 블록과 블록 사이의 거리도 멀다는 뜻이다. 스카이가든 상권에서 미드타운 상권까지 걸으면 땀이 날 만큼 거리가 있다. 도보로 이동 가능한 손님은 인근 아파트 주민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택시나 그랩(Grab)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2군과 7군에 각각 매장을 운영 중인 한 자영업자는 두 상권 손님의 행동 패턴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2군 손님들은 오시기 전에 다른 가게를 들렀다가 오시고, 식사가 끝난 뒤에도 걸어서 다음 곳으로 이동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7군 손님들은 체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자리를 옮기실 때도 이동 수단을 따로 부르시는 편이에요.” 2군은 걷는 상권이고, 7군은 머무는 상권이라는 말이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상권의 확장성 면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구조는 상권의 분산을 가속화한다. 한인 상권이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각각의 상권을 인근 아파트 주민에게만 의존하는 근린 상권에 머물게 만든다. 넓은 배후 인구를 하나의 중심으로 끌어모으는 구심력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다. 기자가 일요일 오후 스카이가든 앞 주요 거리를 두 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오토바이를 타고 온 손님보다 걸어서 온 손님이 압도적으로 적었다. 외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목적형 상권이 아니라, 거주자들의 일상 소비에 기대는 생활 밀착형 상권이라는 성격이 뚜렷했다.
수년째 한인 상권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호찌민으로 들어오는 한국인 수 자체가 예전만큼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 7군을 선택하는 사람은 더 줄었어요. 코로나 이후 메트로가 개통되면서 2군이 빠르게 부상했고, 요즘 새로 오시는 분들은 타오디엔(Thao Dien)이나 투티엠(Thu Thiem) 쪽을 훨씬 많이 보세요.” 유입 인구의 방향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상권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의 무게중심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숫자로 본 인구 이동의 흔적

인구 변화를 보여주는 직접 통계는 없지만, 대선 재외투표 데이터가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푸미흥 투표소 유권자 수는 2,718명, 총영사관 투표소는 2,754명으로 두 곳의 차이는 불과 36명이었다. 그런데 8년 뒤인 2025년 21대 대선에서는 총영사관 투표소가 3,055명을 기록한 반면, 푸미흥 투표소는 2,892명에 그쳤다.
절대적인 유권자 수는 양쪽 다 늘었지만, 두 투표소 사이의 격차가 200명 가까이 벌어진 것이다. 호찌민 한인 인구 전체가 증가하는 흐름 속에서 푸미흥 쪽 유권자 증가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뎌졌다는 뜻이다. 수치 자체가 이주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추세는 말을 한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이 숫자의 의미가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스카이가든 상권 골목의 빈 점포 몇 군데는 베트남어 혹은 중국어 간판을 달고 현지 업종으로 바뀌어 있었다.

평일의 고요, 주말의 온기

기자가 이 상권을 집중적으로 살핀 기간 동안 가장 선명하게 느낀 것은 요일과 시간대에 따른 온도 차이다. 평일 오후, 특히 화·수요일 낮 두 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말 그대로 조용하다. 파리바게트는 계산대 직원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식당들은 테이블을 닦으며 저녁 손님을 기다린다. 오가는 사람들은 장을 보러 나온 주부와 헬스장에 다녀오는 주재원 정도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오전이 이 상권에서 가장 활기 있는 시간대다. 주변 공단이나 지방 도시에서 주말을 맞아 호찌민으로 올라온 출장자들이 흥푹 인근 식당과 주점을 채운다. 스카이가든 카페들에도 토요일 오전엔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부터 다시 열기가 식는다.
일요일은 가족 단위 나들이 손님이 주를 이룬다. 미드타운 상권은 일요일 오전이 가장 활기 있고, 흥푹 쪽은 일요일엔 오히려 조용하다. 업종별로 보면, 카페와 빵집은 주말 오전에 집중적으로 손님이 몰리고, 마사지 업소는 금토 저녁이 가장 바쁘다. 식당은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점심이 피크이고, 병원·약국·미용실 같은 생활 서비스업종은 평일 오전에 의외로 꾸준히 손님이 드나든다.

상권의 시대를 읽는 방법

1주일간 이 상권을 바라보면서 가장 뚜렷하게 떠오른 비유는 뜻밖에도 한국이었다. 경기도 수지, 동탄, 일산, 파주. 수도권 외곽 신도시의 근린 상권을 보는 느낌이었다. 평일 오후는 한산하고, 저녁 시간대가 되어야 테이블이 조금씩 차고, 주말에는 평소의 두 배 수준으로 거리가 활기를 찾는 패턴. 장소는 베트남이지만, 리듬만큼은 영락없는 한국 신도시 상권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 거리의 본질적인 매력일지도 모른다. 베트남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한국적 일상의 질감이 이곳에는 살아 있다.

호찌민 인민위원회(UBND TP.HCM)가 2024년 스카이가든 앞 거리와 판반니(Phan Van Nghi) 거리 일대를 호찌민의 대표 먹거리 거리로 공식 선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다국어 메뉴판 배포, 영어·한국어 안내 인력 배치, 정기 푸드 페스티벌 개최 계획이 뒤따르면서 현지 당국이 이 거리의 관광 자원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그러나 상권 주변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외부 방문객 유입으로 매출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관광지 프리미엄이 임대료 인상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활성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은 언제나 같은 문으로 들어온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한국인들만 드나들던 골목에 베트남 현지 손님이 늘고, 한식당이 빠진 자리에 일식당이나 베트남 음식점이 들어서는 현상이 조금씩 눈에 띈다. 그것은 쇠락의 신호일 수도 있고, 상권이 더 넓은 소비자층을 향해 재편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다만 1주일의 관찰이 남긴 인상 하나는 꽤 선명하다. 푸미흥은 2010년대 전성기의 그늘 아래 서 있는 상권이라는 것, 그리고 본질적으로 중년 남성 친화적인 공간이라는 점이다. 눈에 띄는 가게들의 상당수가 40대 이상을 주요 고객으로 상정하고 만들어진 곳이었다. 넓지만 어수선한 거리의 분위기는 세련된 카페보다는 소주 한 잔이 더 잘 어울렸고,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간판들은 이 상권이 언제 전성기를 보냈는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젊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미드타운으로, 2군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이, 스카이가든 골목은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관성으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관성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결국 결정할 것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것들

지난 몇년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푸미흥의 한인들은 살아 있다. 아침 여섯 시, 파리바게트에서 빵을 사는 손님이 있고, 밤 열한 시에도 스카이가든 앞 포장마차 국밥집은 불이 켜져 있다. 한국 국제학교 등·하교 시간에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미드타운 인근이 잠깐 들썩인다.

상권의 활력은 단순히 유동 인구 숫자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이유로, 얼마나 자주 이 거리를 찾느냐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푸미흥은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써 나가고 있는 중이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이 골목을 걸은 것은 평일 수요일 저녁 일곱 시였다. 식당 두 곳에 빈자리가 있었고, 한 곳은 만석이었다. 어느 테이블에서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푸미흥은 아직,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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