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간의 분쟁을 종식하기 위한 2차 평화 협상이 추진되는 가운데, 해외에 묶인 이란의 동결 자산 해제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어떤 협상도 시작되기 전에 동결된 자산이 먼저 해제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지난 11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1차 협상 당시 미국이 자산 일부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미국 정부는 즉각 이를 부인하며 동결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은 약 1,000억 달러(약 138조 원)로 추산된다. 이는 이란의 연간 석유 및 가스 수입의 약 4배에 달하는 거액이다. 이란 경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시작된 제재를 시작으로, 핵 개발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인한 지속적인 제재를 받으며 극도로 위축된 상태다. 프레데릭 슈나이더 중동 글로벌 문제 협의회 전문가는 이 자금이 수십 년간 제재를 받아온 국가에 있어 매우 큰 액수이며, 미국이 자산 해제에 동의하더라도 사용처에 대한 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5년 핵 합의(JCPOA) 당시에도 이란은 투자 약정이나 부채 상환 등의 이유로 전체 자산의 절반 정도만 접근할 수 있었다. 현재 테헤란 측은 신뢰 구축의 일환으로 우선 60억 달러 규모의 자산 해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란 자산 동결의 역사는 1979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미국 안보에 대한 특별한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 합의를 통해 잠시 자산 접근권이 회복되기도 했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당시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제재를 재개하면서 다시 묶였다. 2023년에는 포로 교환 조건으로 한국에 묶여 있던 석유 대금 60억 달러가 카타르로 송금되어 이란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1년 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마저도 다시 차단했다. 현재 이란의 자산은 일본(15억 달러), 이라크(60억 달러), 인도(70억 달러), 미국(20억 달러), EU(16억 달러), 카타르(60억 달러) 등 여러 국가에 분산되어 보관 중이다.
수십 년간의 제재와 최근 미국·이스라엘과의 충돌로 이란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파테메 모하제라니 이란 정부 대변인은 6주간의 전쟁으로 인한 피해액이 약 2,700억 달러(약 373조 원)에 달한다며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 배상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00억 달러의 동결 자산 해제는 이란 GDP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자금을 즉시 수혈받는 것과 같다. 록산 파르만파르마이안 캠브리지 대학 교수는 자산 해제가 이뤄지면 이란이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경화를 국내 경제에 투입해 환율 변동을 제어하고, 노후화된 유전과 전력망 등 산업 기반 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후 복구 과정에서도 이 자금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와 국민 간의 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크리스 페더스톤 요크 대학 전문가는 자산 해제가 미국이 압박을 완화하겠다는 중요한 외교적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