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3월 11일, 열도를 뒤흔든 동일본 대지진과 거대 쓰나미가 도호쿠 지방을 덮친 지 올해로 15주기를 맞았다.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현 등 연안 지역을 초토화했던 그날의 비극은 재난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엄중한 경고로 남아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비상식량과 식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통신 인프라 파괴 시 대응 능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난 상황에서는 스마트폰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전력이 끊겨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거나, 피난 과정에서 기기를 분실·파손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무선 네트워크가 일시적으로 과부하에 걸려 메시지 전송조차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때 일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번호가 바로 ‘171’이다.
일본 통신기업 NTT가 운영하는 ‘재해용 전언 다이얼(Saigai Dengon Dairu)’은 일종의 음성 게시판 서비스다. 이용자가 171을 누르고 자신의 음성을 최대 30초간 녹음해 두면, 상대방이 해당 번호로 접속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메시지를 남긴 기기와 받는 기기가 달라도 된다는 점이다. 본인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더라도 주변의 공중전화나 지인의 전화를 빌려 상대방의 번호만 입력하면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일반 유선전화는 물론 휴대전화, IP전화, ISDN 등 모든 통신 수단과 호환된다. 특히 공중전화에서는 별도의 요금 없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 번에 최대 20개의 메시지까지 저장되며, 새로운 메시지가 등록되면 가장 오래된 내용부터 순차적으로 삭제된다.
전문가들은 ‘171’ 번호와 함께 ‘가족의 전화번호 암기’를 필수 생존 전략으로 꼽는다. 디지털 기기에 모든 연락처를 저장해두는 현대인들에게 기기 분실은 곧 통신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연락처를 외울 순 없더라도, 가장 중요한 인적 연결고리인 가족과 친지의 번호만큼은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음성 메시지는 웹 버전인 ‘재해용 전언판(web171)’과도 연동되어 텍스트 메시지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다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될 수 있는 게시판 형식이므로 민감한 개인정보를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15년 전 도호쿠의 교훈은 명확하다.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아날로그적 대비책은 더욱 강력한 생명줄이 된다. 일본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이들에게 ‘171’은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수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