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에 위치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거벽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메카다. 19세기 후반 유럽 알프스 봉우리들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며 등정된 이후 1950년대부터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거봉巨峯에 눈길을 돌렸다. 1970년대까지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대부분이 등정되던 그 시기, 새로운 등반 스타일이 등장한다. 이른바 ‘거벽 등반’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경기도만 한 면적이다. 그 곳에는 63빌딩 다섯 채를 수직으로 쌓아올린 1,000m 이상의 암벽이 즐비하다. 그 바위들은 여러 개의 바위들이 합쳐 진 게 아니라 단 하나의 바위가 그렇게 솟아 있다. 바위꾼들은 그 숨막히는 수직의 암벽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었다. 요세미티에서 대암벽 등반, 거벽 등반이라 불리는 등반 사조가 처음 생겨난다. 1970년대 미국의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등반가들이 …
Read More »오토바이, 그 자유의 바람
날아오는 맞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말의 갈기처럼 거침없이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달리는 여인. 나에게 오토바이 타는 여인의 심상은 이렇게 다가온다. 마치 옛날 ‘한 손에 손도끼를 불끈 쥔 채 양다리를 벌려 말을 타고 밤새 배회하는 여자’의 현대적 질감 같은 것.베트남은 가히 모터바이크의 나라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오토바이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처음 왔을 땐 이 나라 사람 모두가 오토바이를 끌고 거리에 나왔나 싶을정도로 많은 오토바이에 놀랐다. 그때는 신호등 파란 불에도 쌩쌩 달리는 그들이 무서워 도로를 건너지 못했다. 맞은 편 식당을 두고 길을 건너지 못해 점심을 거른 적이 있다. 오토바이와 친근해 지면서부터 ‘사이공 사람’이 되는 모양이다. 무서웠던 오토바이가 정겹다. 이젠 …
Read More »산의 영혼
산의 영혼이라는 책을 읽었다. 등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발견’의 문제고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기꺼이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다고 머리말에 새겨 놓은 저자의 다짐.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는 살짝 비켜서면서도 등산이라는 오름 짓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의 능력을 창조주와 같은 위치에까지 상승시킨다는 20세기 초의 오만한 근대 유럽인의 사고가 엿보였는데, 등산을 최종적이고 필연적인 인간 활동의 계기로 본 것에서 헤겔의 향기도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20세기 초 영국사람이다. 나라를 대표해 국제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를 경쟁적으로 ‘정복’하던 일이 민족과 국가의 외교적 힘이라 생각하던 때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등반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일갈하며 나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한다. 1, 2차 세계 대전을 목도하며 등산마저 싸움터로 바뀌는 세태에 …
Read More »두 선생님 이야기
두 사람의 프랑스인에 관해 말해 보려 한다. 먼저 소피. 너희 나라 놀이문화를 다 알게 됐다. 재미있었다. 나도 해보고 싶더라.(하늘 위로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너도 어릴 때 그런 놀이하며 놀았니?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에 유행이라지만 체감하진 못했는데 아내와 동네 맥주집을 어슬렁거리며 갔다가 우리 주위를 애워싸는 프랑스 아지매들은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놀이들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 했다. 그 중 소피가 단연 천진하게 물었다. 너 ‘달고나’ 만들 줄 아니? 나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소피는 앞 집에 산다. 그녀는 자유분방하다. 소싯적부터 술과 담배를 즐겼고 이 세계는 기쁘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언제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어디서나 당당하다. 누구와의 대화도 스스럼없다. 얼마전 그녀는 …
Read More »다 사는 것, 마지막까지 길에 있으라
출근하려 신발을 신었는데 물컹한 무엇이 밟혀 딸래미가 물 묻은 휴지를 넣어 장난치나 싶었던 것이다. 손을 넣어 빼도 빠지지 않았는데 기울여 털어봐도 휴지 뭉텅이는 나오지 않았다. 신발을 곧추세워 바닥에 털어냈더니 커다란 두꺼비가 튀어나왔다. 나는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마당에서 혼자 파다닥거렸다. 밤새 내 발 안에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모를 역한 인간의 냄새에도 아랑곳없이 깊이 숨어 웅크리고 있었을 두꺼비에게 내 발은 기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보는 너의 모습이 기괴했던 만큼 놀라 자빠지는 내 모습을 봤을 때, 너는 얼마나 기괴하고 또 같잖았겠는가. 그러나, 내 발이 안식을 얻었던 그곳, 한동안 같은 공간에서 추위와 천적을 피하며 함께한 너의 그 축축한 기억을 나는 간직하겠다. 요즈음 동네에 고양이들이 …
Read More »독서여유산 讀書如遊山
스무 살, 처음으로 산과 한 몸이 되어 다닐때, 학교에 간 날보다 산에 간 날이 더 많았다. 산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고,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사소함이 좋았다. 산에 들어가는 일이 반드시 그 산 정수리 밟고자 함은 아니라고 생각한 지 오래다. 산꼭대기에 올랐거나 말았거나 하루를 산과 놀다 들어온 뒤 내 방 낡은 책상에 낮에 같이 놀던 그 산을 생각하는 일이 좋았다. 산을 내 집에 풀어놓으면 나는 마치 오래 묵은 책을 펴 들고 이리 저리 넘겨보고 냄새 맡아보고 가슴에 안았다가 종이를 촤라락 거리는 기쁨처럼 새롭고 아득했다. 산의 깊은 골짜기를 건너고 구비구비 돌아가는 오솔길을 걸어간다. 그러다 날 선 능선을 만나 두려움과 아찔함도 느낀다. …
Read More »어느 등산가의 회상
시간이 상처 입힐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대에게는 필요하다. 서슴지 말고 걸어가라. 그대는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니다. – 에밀 자벨 – 19세기 ‘정상 정복’ 이라는 다소 천박한 욕망을 토대로 진행된 비약적인 등산 발전은 1세기 내에 대부분의 알프스 지역 봉우리들에 인간의 발을 허락하게 했다. 여전히 인류의 대부분이 수렵을 통한 원시적 삶이 지배적 시간이라면 아무런 대가 없이 죽음을 담보하고 오르는 등산이라는 행위는 이전의 인류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수렵의 시대, 그 먼 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중세, 신이 인간을 지배하던 시대는 자연을 두려워하고 신봉하며 대지보다 높은 지경의 산들을 신격화했다면 그런 산들을 인간이 올라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신이 지배하던 세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근대 인간의 …
Read More »그 모든 헛발질이 나의 길이었으니
산이 주는 선물 재택 근무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좀이 쑤시는 듯 집 밖을 향한 마음이 간절합니다. 코로나가 갉아먹은 근육은 당최 회복되질 않습니다. 관계의 인간이 감정을 나누지 못해 마음은 터지고 갈라집니다. 맨소래담도 듣질 않고 후시딘도 가라앉힐 수 없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머릿속에서라도 나가야지요, 눈을 감습니다. 사방이 흐려지며 머릿속엔 상상 하나가 지나갑니다. 문득 먼데 하늘을 바라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손 닿는 것들을 무심하게 주섬주섬 꾸려 불룩해진 배낭을 들쳐 멥니다. 눈을 감으니 무거워야 할 배낭도 우주선 진공상태처럼 가볍습니다. 가을을 향해 가는 늦여름 산이 한심한 듯 내려다봅니다. 왜 이제 왔냐는 것 같습니다. 작은 내 키를 산 만큼 키워서 산은 자신의 꼭대기에 …
Read More »이 사람을 보라
김홍빈(1964~, 산악인), 그는 열 손가락이 모두 없다. 그가 컵에 물을 따라 마실 때엔 두 손바닥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해야 마실 수 있다. 신발 끈을 동여 맬 때엔 항상 누군가 매어 주어야 하고, 대소변을 볼 때엔 누군가 그의 바지 자크를 내려줘야 한다. 그도 한 때 열 손가락이 모두 붙어 있던 전도유망한 산악인이었다. 대학시절 암벽대회에서 수위 석권은 물론 노르딕, 스키, 바이애슬론까지 섭렵했던 전천후 산악인이었다. 더 없이 잘 나가던 때, 1991년 5월 북미대륙 최고봉 데날리(6,194m)에 오르며 사달이 났다. 혼자 산을 오르던 중 갑작스러운 혹한과 계속되는 악천후로 정상 직전에 정신을 잃고 조난당하고 만다. 기적적으로 구조됐으나 동상은 온 몸에 퍼진 뒤였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긴급 후송된 후 …
Read More »나의 사람들아, 나는 잘 살고 있노라
근래 베트남 코로나 소식이 한국에 제법 자세하게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연락으로 지난 주는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반가운 목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전화기를 붙잡고 밀렸던 말들을 즐겁게 쏟아냈습니다. 거긴 괜찮냐는 안부와 지내기에 어떠냐는 말에 넉살을 보태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젠 올 때가 되지 않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새삼, 여기가 베트남이라는 자각이 일어나더군요. 어쨌든 고맙지요, 긴 시간 떨어져 있으면서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와 주시니 반갑기가 그지없었습니다. 한번 떠나와 봐서 그런지 다시 떠나는 데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중에 돌아오라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역마살을 소환하는 부지깽이 였지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불붙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겨웠습니다. 그렇다고 이곳 생활이 …
Read More »고전에서 길어 올린 ‘깊은 인생’: 스승을 찾아서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할 숙명을 타고난 자들이다. 뛰어넘기 위해 뛰어넘기 힘든 사람을 곁에 두고 지켜보며 배우는 것이 제자 된 자의 몫이다. 스승이 자신의 삶에 등장하는 건 순전히 우연에 기대어 있다. 그 우연을 설명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준비된 자, 간절한 자가 스승을 만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아무도 가지 마라는 그 길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스승은 나타난다. 왜냐하면 스승이란 사람들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위험하다고 말할 때, 바로 그 길이 네가 유일함으로 가는 길이라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流水之爲物也 不盈過不行, 채우지 않고는 흐르지 않는다. 맹자(孟子) 에 나오는 말이다. 물은 웅덩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채우고 나면 다른 웅덩이를 찾아 흐른다. 모자라면 …
Read More »“30대, 십년을 위한 나침반”
1. 에둘러 첨단에 이른다 세상의 슬픔은 조급함에서 온다. 절망의 순간은 환희를 잉태하고 있으니 기다림은 기쁨을 출산하는 산통의 과정이다. 삼 십대 십년은 이 지루한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기다리고 둘러가고 쉬어 갈 수 있다는 것은 삶을 남김없이 다 살 수 있는 능력이다. 빨리 가는 얕은 사람보다 느리게 가는 깊은 사람을 좋아한다. 스토리가 없는 삶에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인생의 그늘 하나 없는 사람은 재미없다. 세상에 진실한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입으로 씹어 삼킨 밥과 자기 발로 걸어간 길이다. 밥은 먹은 만큼 내 몸을 살찌우고 발은 둘러간 만큼 근육을 만든다. 인격 없는 인간이 볼품없는 만큼, 근육과 상처 없는 매끈한 다리엔 아무도 업히려 들지 않는다. …
Read More »황홀한 일상
가상화폐, 주식, 아파트,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욕망의 광기가 오랜 팬데믹으로 턱밑까지 올라온 인류의 불안 같다. 남의 얘기를 열심히 퍼 나르고 단편적인 사실만을 옮기는 데 급급한 이들이 근래는 사뭇 경박해 보인다. 더는 이전과 같은 정상적인 일상을 맞이할 수 없다는 초조함인지 억눌린 상황 뒤에 터져버릴 희망의 복선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욕망은 바이러스보다 빨리 퍼져 온 세상은 투기의 대상이 된 것 같다. 그 광기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이 너도나도 욕망의 전차에 올라타는 기폭이 되고 성급함이 장악한 세상에서 이제 잔잔한 일상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마침내는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과 아파트 얘기가 아니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다. 어떤 말이나 사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제 경박함을 드러내는 …
Read More »오늘, 그 사나이에게
간 밤, 갑작스런 고열로 잠을 설쳤습니다. 벌써 우기가 시작된 모양인지 아이들과 함께 세찬 비를 맞고 놀았더니 몸살이 왔던 모양입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마냥 좋다고 비 맞고 놀 나이는 아니지만, 쏟아지는 비가 그리 좋을 수 없었습니다. 신나게 놀았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나아지겠지요. 쑤시는 몸을 겨우 일으켜 출근했습니다. 출근 길에 문득 이대로 죽는다면 내 인생은 아름다웠다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3초간 했습니다. 조금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막았습니다. 체력이 갈수록 바닥나니 생각도 약해집니다. 눈물이 많아지니 두려움도 커졌던 모양입니다. 분명 이 따위로 살려고 밥을 축내고 있진 않을 텐데, 고작 일상에 쫄아 두려움에 떨어선 안 될 텐데,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아직 …
Read More »꿈이 없어도 아, 삶은 기묘하게 전진한다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다. 분홍색 조봇한 혀, 빨간 살이 드러난 콧등, 유난히 털이 길고 숯이 많아서 안아 보기 전엔 얼마나 작고 따뜻한 지 알 수 없는 몸뚱아리, 조그만 몸에 심장은 어찌나 세차게 팔딱거리는지, 휴양림 들어가는 길처럼 굽이굽이 도는 귓속, 습도까지 감지한다지 신비롭기까지 한 흰 긴 수염, 야옹거리다가도 밥을 주면 들릴 듯 말 듯 작게 그르렁대며 좋아하는 녀석이 우리 집 안에 들어와 의문의 동거를 한 지도 어느새 5개월이 다 되어간다. 5개월 전 녀석은 무턱대고 우리 집 앞에 한참을 있더니 열린 문으로 마치 자기 집인 양 터프하게 들어왔다. 그때 녀석의 그 당당한 카리스마에 나는 쩔었었다. 녀석은 나방이 눈앞에서 현란하게 …
Read More »가난을 벗어나는 법
어제까지, 남방 팔꿈치 부분이 해진 줄 모르고 다녔다. 곧 큰 구멍이 날 기세였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팔을 흔들며 다녔다. 직장 동료들에겐 팔을 올려가며 인사했고 커피를 들고 마실 때마다 팔꿈치가 구부러지며 아슬아슬하게 피부가 보였다 말았다 했을 테다. 아무려면 어떤가, 아무 일 없는 듯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모르면 몰랐겠지만, 알고 난 다음 왠지 칠칠치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영 마음이 편칠 않다. 누군가는 눈치채지 못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나를 꽤나 어지간한 사람이라 여겼을 테고 더러는 안타깝게 봤을 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해진 남방에 나는 왜 부끄러울까 싶은 것이다. 해진 옷을 입은 사람을 사람들은 왜 안타까워하는가, 궁핍과 가난은 왜 …
Read More »과거에 사로잡힌 그대에게
지난 성공은 독(毒)이다. 과거에 이루어 낸 일들에 대한 집착은 다가올 성공을 가로 막는다. 지금 오르는 봉우리를 위해서는 이전에 올랐던 봉우리는 잊어야 한다. 오직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사람만이 과거의 빛나던 순간을 회상한다. 과거는 대부분 그 당시에 빛나지 않았더라도 회상하는 순간 빛났던 것으로 뒤 바뀌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 당하기 때문이다. 회상에 의한 과거의 의식적 분칠은 삶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인간의 방어기제다. 아무도 그대의 빛났던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은 탁월했고 지금, 과거 자신과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꼰대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때는 모든 것이 좋았고 지금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는 …
Read More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자책하는 그대에게
[고전에서 길어 올린 ‘깊은 인생’] – 물론 일상은 고달프다. 가끔 힘에 부쳐 숨 쉴 때마다 절망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저 아래로 처박히는 느낌은 수시로 들락거린다. 모두가 나보다 잘난 것 같고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수록 나는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 그런 일상에서 꿈이고 지랄이고 언감생심이고 나로 살아가는 인생은 하루하루 멀어지는 것 같다. 생긴 대로 산다는 건 만만한 게 아니었던 게다. 그런데도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자책한다. 그러나 그대 보아라. 삶은 그저 똥이다. 산해진미 지나간 끼니가 지금을 배부르게 할 수 없는 건 내가 먹은 모든 것이 똥이 되었기 때문이다. 밥뿐이랴, 내가 했던 생각, 입 밖으로 뱉었던 이야기, 쏘다닌 길, 분노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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