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 필요도 없지요!
브런치 약속을 했어요.
점심 약속보다 브런치 약속이 좋은 것은 제법 한가한 시간을 넉넉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죠. 가득 찬 음식 내음으로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 전문 식당은 아니고, 널찍한 공간에 커피향이 물씬 밴 작은 테이블들이 앙증맞게 앉아 있는 카페에서 오전 10시경에 아침과 점심을 겸한 약속 자리입니다.
조금 일찍 나섰지요. 넓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창으로 보이는 뜨락을 내다보며 친구를 기다립니다. 아담한 테이블 너머,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빈 의자가 덩그러니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변 소음이 사라진 조용한 공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의자가 공연히 외로워 보입니다.
잠시 후 빈 의자가 채워집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시간, 예사롭지 않은 장소의 만남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베트남에서 30년을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이별이지만, 가볍지는 않습니다. 빈 의자를 보면서 떠오르던 외로운 사념이 이미 이별을 예감했었나 봅니다.
베트남 생활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입니다. 대다수의 만남은 베트남이라는 이국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이 만들어 주는 인연으로 시작합니다. 낯선 이국 땅에 대화라도 통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지역의 정보를 전해 듣고, 서로 외로움을 덜어주는 관계로 시작되는 것이죠.
이국에서 같은 처지로 살아간다는 공감이 커지며 이 관계는 빠르게 깊어지지만, 바로 그 이국의 삶이라는 요인이 이별 또한 쉽게 용인하게 만듭니다. 몇 년을 잘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회사 사정으로, 혹은 개인 사정으로 베트남을 떠나게 되면 그 관계는 사실상 그 자리에서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나 서로 연락하고 살자며 포옹을 하며 아쉬운 이별을 달래보지만, 그 포옹이 곧 관계의 종말이라는 것을 아렴풋이나마 감지합니다. 삶의 터전이 바뀌고 나면, 각자 새롭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느라 바쁜 인연에게 베트남에서의 만남은 가끔 한가한 회상의 시간에 스며드는 추억의 소재로 남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이별의 순간을 나누는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섭섭함이 덜한 인연입니다. 많은 경우는 그저 어느 날 베트남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고, 아! 떠나셨구먼, 하고 입맛을 다시는 게 고작입니다. 떠날 때 소식이라도 주고 가지, 싶지만 그 역시 남아 있는 자, 떠나지도 못하는 자의 생각이지요. 떠나는 사람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터이고, 굳이 떠난다고 인사하며 다니는 것도 번거로운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언제 이 인연을 다시 어떻게 이어 갈지 모르는 탓입니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인간관계의 경계를 일러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너무 가까운 사이가 되어 허물이 사라지는 것은 좋으나, 각자 정한 경계를 넘어서는 무례가 나타나기 쉽고, 오히려 작은 실수 하나가 긴 세월 쌓아 온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서면 관계가 소원해지니, 귀한 인연을 두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현명한 처세가 필요한데, 이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 면에서 베트남에서의 관계는 어쩌면 그 처세를 자연스럽게 실행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는 듯합니다. 이국에서 성인이 되어 만난 인연이라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합니다. 애써 그 경계를 넘어설 필요가 없는 곳이 베트남이지요.
과거의 모습은 내가 알지 못하니 상대가 지금 보여 주는 것 만을 받아들입니다. 설사 과거의 행적이 지금과 사뭇 다르다 해도, 그것이 내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관여하고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지나치게 가까워져 작은 실수 하나에 실망을 던지고 관계를 무너뜨릴 만큼 가까운 관계가 형성될 일이 없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넘어가는 관계가 이어집니다.
수명을 좌우하는 절대적 요인이 친구라고들 하는데, 낯설은 이국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를 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이국에서는 더욱 가까운 관계를 기대하지만, 고슴도치가 붙어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국에서 불가근 불가원을 잘 지키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쩌면 그 지혜의 대가로 외로움을 택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처세를 아는 만큼 마음 깊이 들일 벗은 줄어드는 것이니, 장수에 연연하지 않기로 조용히 마음먹은 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불가근 불가원은 모든 관계에 적용됩니다.
베트남에서 30년 넘게 사업을 하다 보니 대다수 직원들의 근무 연한도 기 십년이 족히 됩니다. 그래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들과 나 사이에 더는 가까이 갈 수 없는 벽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국적, 언어, 나이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죠. 덕분에 한 회사에서 하루 여덟 시간, 수십년을 같은 공간에 있어도 불가근 불가원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가끔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가족의 연을 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태생의 부정일 수도 있는데, 그런 행동을 감행하는 데에는 오히려 너무 가깝다고 믿었던 관계가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인데 이 정도는, 하는 당연한 기대와 냉혹한 현실이 부딪치며 만들어 낸 최악의 갈등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도, 직원도, 친구도, 선후배도 그리고 연인도 다 생물학적으로는 타인입니다. 생물학적 타인에게 자신과 같은 생각을 기대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결국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불가근 불가원의 교훈인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