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의 잔혹한 고문 속에서도 지조를 지킨 베트남 영웅의 부부애가 감동을 전하고 있다.
25일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87세인 인민무장력영웅 응오 티 후에(Ngô Thị Huệ) 여사는 90세 남편 쩐 비엣 찌(Trần Viết Trí) 씨를 위해 매일 직접 죽을 쑤어 다낭 C병원(Bệnh viện C Đà Nẵng)을 찾고 있다.
1959~1962년 꽝다(Quảng Đà) 보안국 소속 첩보원으로 활동한 후에 여사는 가정부, 상인, 군인 아내 등으로 변장하며 다낭 시내에 무기를 운반하고 기지를 구축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1962년 게릴라전 이후 적에게 체포되어 사봉물 고문, 전기 고문, 무릎과 사타구니 총상 등 참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다.
당시 호이안(Hội An) 감옥에서 잡역수로 노역 중이던 찌 씨는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온 어린 여간첩의 기개에 감복해 여성 수감자들에게 그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밀반입한 우유와 비타민을 몰래 전달했다.
해방 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갔으나, 1968년 하태(Hà Tây)성 E병원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당시 후에 여사는 B52 폭탄 파편이 머리에 박히는 부상과 고문 후유증으로 가혹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사별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던 찌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어머니가 될 수 없는 후에 여사의 사정을 알면서도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했다. 후에 여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열고 결혼을 승낙했다.
당시 쩐 국 호안(Trần Quốc Hoàn) 공안부 장관은 후에 여사를 수양딸로 삼았으며, 찌 씨의 진심 어린 설득을 확인한 뒤 1975년 4월 30일 직접 주례를 서며 두 사람의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이후 찌 씨는 49세의 나이에 조기 퇴직을 결정하고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간호하는 데 전념했다. 그러나 최근 찌 씨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한 뇌졸중과 암 전이로 다낭 C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다. 이에 후에 여사는 남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8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남편을 간병하고 있다.
1985년 8월 인민무장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후에 여사는 감옥에서 시작된 5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남편에 대한 깊은 감사와 순애보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