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이 도이모이(Đổi Mới·개방 혁신)의 첫 삽을 뜨던 1980년대 초, 서방의 전방위적 경제 제재로 사방이 막혀있던 고국의 하늘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인물이 있다. 베트남 최대 유통·항공 메커니즘 기업인 임엑스팬퍼시픽(IPP) 그룹을 이끄는 존나탄 한 응우옌(Johnathan Hạnh Nguyễn)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 보잉사의 재무 조사관이라는 탄탄한 지표의 직장을 뒤로하고 고국의 요청에 응답했던 그는, 지난 40년간 베트남 자산 시장의 성장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독보적인 해외 동포(비엣끼우) 기업인이다.
한 응우옌 회장의 운명을 바꾼 전화 한 통은 1984년 뉴욕 유엔(UN) 주재 베트남 대표부로부터 걸려왔다. 당시 10년 넘게 고향을 떠나있던 그를 초청한 정부는 팜 반 동(Phạm Văn Đồng) 당시 수상과의 면담 자리를 주선했고, 그 자리에서 미국 우방국인 필리핀과의 전격적인 항공 노선 개설이라는 특수 보안 과업을 부여했다. 당시 베트남은 모스크바와 방콕행 전세기 노선에만 독자적으로 의존하며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 있었기에,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가문과 친인척 관계이자 항공 하이테크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있던 한 응우옌 회장이 사법적 돌파구를 열 적임자로 전 선구적으로 낙점된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1985년 9월 4일은 베트남 현대 외교사에서 잊을 수 없는 극적인 기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 제재 국면 속에서 필리핀 내 12개 안보·경제 부처를 돌며 최종 인가 서명을 받아내는 과정은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한 응우옌 회장은 “당시 영부인인 이멜다 마르코스 여사의 친인척이었던 첫 아내와 처가 인맥을 총동원해 마르코스 대통령이 가장 심리적 상태가 좋은 골든타임인 저녁 7시 30분에 집무실을 전격 기습했다”고 회고했다. 마침 미국 정부의 내정 간섭성 압박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마르코스 대통령은 서류를 훑어본 뒤 그 자리에서 ‘승인(Approve)’ 서명을 단행했고, 이 소식을 들은 하노이 중앙 정치국은 커다란 변혁의 문이 열렸다며 밤새 환호했다.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사업 초기 가이드라인은 참담한 손실의 연속이었다. 여객 수요가 전무해 매 편당 3만 2,000달러의 항공기 임차료를 독자 부담하느라 초기 손실만 500만 달러(한화 약 68억 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노선 폐쇄를 막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던 그의 발길을 고국에 완전히 묶어둔 것은 한 병원에서 목격한 비극이었다. 귀국 당시 고열에 시달리던 자녀를 데리고 찾은 병원에서 해열제조차 없어 레몬으로 몸을 닦아내는 열악한 인프라 지표를 목격했고, 옆 침대에서 아이를 잃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절규가 그의 기업인 마인드를 통째로 흔들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 가족은 안전하겠지만 고국의 수많은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는 주동적 부채감이 그를 베트남 현장에 잔류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필리핀 내 베트남 난민 수용소를 직접 방문해 합법적 이주 프로그램(ODP) 등록을 유도하며 인도적 가이드라인을 정립하는 한편, 항공기 수하물 칸에 발전기와 의약품 등 필수 자산을 가득 실어 나르며 고국의 물자 부족 해소에 전력투구했다. 이후 베트남에 외국인투자법이 제정되면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두 개의 축인 ‘항공’과 ‘해외 명품 유통’ 사업을 본격화해 가파른 이익 지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현재 IPP그룹은 전 세계 138개 유명 브랜드를 관장하는 독점 유통 제재 권한을 확보하고 있으며, 조만간 이를 200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로 40년을 맞이한 도이모이 역사 속에서 한 응우옌 회장은 현재 베트남이 단단한 거시경제적 도약기를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 세계가 중동 분쟁과 자산 시장 둔화로 kiệt quệ(끼엣 퀘·기진맥진하다) 상태에 빠진 것과 달리,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가 지속해서 몰려드는 단호한 생산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경제의 지속 가능한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시중의 유동성 흐름이 투기성 토지(부동산) 자산으로 유입되는 것을 강력히 엄단하고, 실질적인 제조업과 중공업 혁신 생산 라인으로 흘러가도록 행정 가이드라인을 과감하게 손질해야 한다고 자문했다.
4년 뒤 경영 일선에서 전격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그의 마지막 남은 평생의 과업은 두 가지 하이테크 금융·관광 인프라 정립이다. 하나는 2016년부터 공을 들여온 대규모 ‘국제금융센터’ 유치이며, 다른 하나는 싱가포르와 태국의 성공 지표를 벤치마크한 초대형 프리미엄 아울렛 및 면세 쇼핑 생태계(비과세 특구) 구축이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마음 고향인 호찌민 아동2병원으로 돌아가 희귀 질환 어린이를 돕는 사법적 복지 재단 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병원에 들어설 때마다 아이들이 자신을 ‘외할아버지’라 부르며 품에 안길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완벽한 삶의 행복을 느낀다는 그는, 평생 ‘정직한 기업가의 마음( Tâm)’을 지켜왔기에 그 어떤 시련도 자신을 파괴하지 못했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