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불빛과 오토바이 소음이 가득한 호찌민시 중심가, 파스퇴르와 보티사우 거리의 교차로 한구석에는 밤마다 작지만 특별한 ‘길거리 교실’이 열린다. 가로등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나란히 앉아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영국인 청년 크리스(35)와 아홉 살 소녀 타인 히엔의 이야기다.
11일 호찌민 현지 매체와 목격자 등에 따르면, 작년부터 베트남에서 일해 온 영국인 크리스는 거리 산책 중 복권을 파는 어머니 옆에서 꿋꿋이 책을 펴고 공부하는 히엔의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소녀와 딸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마이 안(44) 씨의 모습에 감동한 그는 먼저 다가가 영어 교육을 제안했다.
이후 크리스는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두 시간씩 영어와 인성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히엔의 어머니 안 씨는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보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크리스 씨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했다. 모녀는 보답의 의미로 사탕수수 주스나 베트남 전통 떡인 반쯩 등을 대접하며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다.
이들의 훈훈한 모습이 알려지자 거리의 시민들도 응원에 나섰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히엔에게 공책과 펜, 간식 등을 건네며 격려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기부금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어머니 안 씨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는 대신 “복권을 사주시면 아이와 더 일찍 귀가할 수 있다”며 당당하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인 히엔은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아픈 언니와 어머니를 따라 거리로 나온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고된 밤거리를 전전하면서도 히엔은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히엔의 꿈은 원래 의사였지만, 최근에는 “학비가 덜 드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며 의젓한 모습을 보여 주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다음 달 영국으로 귀국할 예정인 크리스는 “베트남 사람들의 회복력과 용기, 그리고 따뜻한 환대는 정말 존경스럽다”며 “비록 곧 떠나지만 언젠가 꼭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안 씨는 딸을 바라보며 “형편은 어렵지만 아이가 꿈을 잃지 않는 한 끝까지 뒷바라지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