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인 애플(Apple)이 지난 4월 1일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창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유일하게 회사를 지키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크리스 에스피노사(Chris Espinosa, 64)의 이야기가 화제다.
21일 IT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에스피노사는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세울 때부터 함께한 애플의 8번째 직원이자 현재 최장기 근속자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실리콘밸리에서 한 회사를 50년 동안 지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 14세 소년,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다
에스피노사와 애플의 인연은 1976년 캘리포니아의 한 컴퓨터 상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14세였던 그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 애플 II를 위한 소프트웨어 작성 업무를 제안받았다. 그는 “모든 산업이 백지상태에서 시작되던 시기라 정말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1978년 버클리 대학에 입학하며 잠시 정규직을 내려놓기도 했으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200페이지가 넘는 애플 II 사용자 매뉴얼을 집필했다. 이후 1981년, 잡스의 설득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다시 애플에 정규직으로 복귀해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위기의 순간에도 자리를 지킨 ‘애플의 터줏대감’
에스피노사의 50년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85년 스티브 잡스가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회사를 떠난 뒤, 애플은 극심한 재정난과 반복적인 대량 해고를 겪었다. 에스피노사는 당시 대학 학위도 없고 애플에서만 일했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으나, 역설적으로 그의 오랜 근속 연수가 그를 살렸다. 근속 연수가 너무 길어 해고 시 지급해야 할 퇴직금이 과도하게 많았기 때문에 회사가 그를 잔류시킨 것이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가 처음 들어와 불을 켰으니, 불이 꺼질 때까지는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남다른 애사심을 드러냈다.
◇ 잡스의 귀환과 ‘오만함’에서 ‘혁신’으로의 전환
그는 1997년 잡스의 복귀를 애플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았다. 에스피노사는 애플의 첫 20년을 ‘오만함의 시대’라고 정의한 반면, 잡스 복귀 이후 아이팟과 아이폰이 출시된 시기를 가전 산업을 재편한 ‘혁신의 시대’라고 평가했다.
현재 그는 애플 TV의 운영 체제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경제적인 성공도 뒤따랐다. 1980년 애플 상장 당시 스티브 워즈니악이 초기 직원들에게 자신의 주식을 나눠준 ‘워즈 플랜(Woz Plan)’을 통해 받은 주식 2,000주는 현재 가치로 약 1억 1,400만 달러(약 1,57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명멸하고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창업가들이 스러져가는 실리콘밸리에서, 에스피노사는 애플의 시작과 번영을 모두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로 남아있다. 그는 “수많은 회사가 잡스를 흉내 내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며 애플의 50년 역사를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