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민간 경제가 단순 가공과 하청의 단계를 넘어 국가 경제의 중추로 ‘탈바꿈’하고 있다. 10일 베트남 중앙경제관리연구소(CIEM)와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과거 외국인직접투자(FDI)와 국영기업이라는 두 축에 의존했던 베트남 경제는 이제 빈그룹(Vingroup), FPT, 호아팟(Hoa Phat) 등 민간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레이몬드 말론(Raymond Mallon) 전 CIEM 고문은 베트남 민간 경제의 발전 과정을 ‘단계적 진화’로 규정했다. 도이머이(Doi Moi) 초기, 1988년 토지 정책 개혁이 농업 생산성을 깨우며 민간 경제의 싹을 틔웠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의 FDI 유입은 선진 기술과 관리 기법을 전수하는 통로가 됐다. 특히 2000년 기업법 제정과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민간 기업들이 법적 ‘회색 지대’를 벗어나 제도권 안에서 덩치를 키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거 가계 단위의 소규모 상업에 머물렀던 민간 경제는 현재 기술, 제조, 인프라를 아우르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빈그룹과 장하이(THACO)가 자동차와 첨단 제조 분야를 개척하고, FPT가 글로벌 IT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베트남 기업들이 가치 사슬의 상단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2035년경에는 베트남 민간 기업 중 10~20곳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정부의 ‘결의안 제68호’에 따르면 베트남은 2045년까지 민간 경제의 GDP 기여도를 6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활성 기업 수를 300만 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현재 전체 기업의 97%를 차지하는 영세 기업과 극소수의 대기업 사이를 메워줄 ‘중견기업(Middle-sized enterprises)’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국가 철도나 에너지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 민간 참여가 확대되는 추세에 맞춰 제도적 보완도 요구된다. 민간 기업이 복잡한 국가 사업을 맡기에는 여전히 자본의 장기 조달 능력이 부족하고 기술적·관리적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말론 전 고문은 “해외 숙련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고 투명한 책임 기제를 확립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계와 학계는 한국의 재벌(Chaebol) 모델이나 싱가포르의 강력한 법치 모델 등 아시아 성공 사례를 베트남 실정에 맞게 절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공정한 운동장’이 조성될 때, 베트남은 중진국 함정을 넘어 선진 경제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10년은 베트남 민간 경제가 단순한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숙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교육과 직업 훈련을 통한 인적 자원 고도화와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이 그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베트남의 경제 주체들이 협력을 통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