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한주필 칼럼- 걱정 덜하며 살기

    인생은 늘 첫 경험입니다. 오늘이 제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날이듯이, 오늘 만나는 모든 것도 다 처음인 셈입니다. 설사 오늘 만나는 일의 형태가 예전과 같다고 해도 시간이 다르니,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늘 하루하루가 유일하고 새롭듯이 우리 인생은 매 순간이 늘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움이란 두 가지 느낌을 던져 줍니다. 호기심 혹은 불안감.  여러분은 어떠세요,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느끼신다면 삶을 흥미롭게 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호기심과 함께 뭔가 모를 불안이 스미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그런 막연한 불안, 걱정으로 행복을 말아먹는 사람들을 위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바로 그런 인물이기에 저 자신을 위한 글이 되기도 합니다.  삶에서 불안만 느끼지 않는다면 인생은 진짜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모든 조건을 다 접어두고 마음만 편안할 수 있다면 인생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리 편안하게 살지 못합니다. 온통 걱정과 염려로 삶을 불안에 몰아넣습니다.   돈의 부족으로 인한 빈곤의 불안으로 시작하여, 벌어둔 재산을 말아먹을 수 있다는 재정적 몰락의 불안, 건강에 대한 불안, 불안정한 직장에 대한 불안, 하다못해 요즘 일본처럼 지진이나 쓰나미가 두려운 재해의 불안 등 세상의 모든 걱정을 머릿속에 담고 노심초사 애를 태우며 사는 사람들이 요즘 현대인 입니다.    이런 불안을 그냥 내버려 두면 필경 우리는 스트레스에 의한 위궤양, 신경쇠약, 불면증으로 수명이 줄어들고 삶은 불행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주신 명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이 망할 놈의 불안을 없애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수많은 석학과 현자들이 비법을 알려 줍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가 가는 두 가지 현실적 방안을 찾아봤습니다.   1, ‘미리 대비하기’입니다.  자신에게 불안을 안기는 일에 대하여 충분한 대비를 한다면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가벼워질 것입니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걱정이 된다면 인터뷰 요령을 숙지하고 미리 연습 한다면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고, 내일 야유회에 비가 올 것 같아 염려된다면, 우산과 천막을 준비하고 실내 장소를 미리 물색해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안을 주는 대부분 문제들은 대비만으로 방지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생을 시작한 인간은 마치 훈련도 받지 않고 급하게 전쟁터에 나온 병사와 다름없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막연히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런 대책 없는 불안을 떨쳐 낼 방안은 무엇이 있을 까요? 현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2, ‘그저 내버려 두기’입니다.  미래의 일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내가 그 일에 영향을 미치건 말건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걱정의 무게도 가벼워집니다. 세상일은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내가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는 않지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세,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겠다는 자세로 세상을 살면 참 편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결과는 내 영역이 아니다.” 하고 버티면 세상이 편해집니다. 일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사라지고, 타인과의 비교도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부분은 나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신에게 묻습니다. 최선을 다했는가?  골프를 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스윙만 하면 됩니다. 남이 잘 치거나 혹은 못 치는 것을 내가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늘 한국의 형편없는 정치가 국민을 걱정스럽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투표를 하는 것뿐이고, 국대 축구가 맨날 백패스만 하며 혈압을 올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TV를 끄는 것뿐이고, 나를 미워하는 이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어떤 일에서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 난 후에 세상사를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방법의 하나입니다.   저는 이 방법 사랑합니다. 적당히 무책임하고 결과의 부담도 덜어줍니다. 마치 답답하던 마스크를 벗은 것처럼 숨도 편안해집니다.   Don’t worry, Just Let i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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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받은 만큼 돌려주시게

요즘 한국의 부모들이 가장 염려하는게 무엇인가요? 자녀들 결혼 문제 아닌가요?  이 문제는 개인의 사정을 떠나 국가적으로도 큰 일입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 중입니다. 뭔가 한다 하면 끝장을 내고 마는 한 민족 답습니다.  80년대만 해도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정부가 이제는 자식만 낳으면 이런 저런 명목으로 지원금을 아끼지 않지만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한민족은 그런 사탕발림에 안 넘어갑니다.  관료들의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나라가 사라질 판입니다.  아무튼 이 상태로 진행되다가는 한국은 곧 초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생산성은 떨어져 국가경쟁력이 낙후되고, 국민수는 줄어들고 결국 한민족은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민족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출산율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습니다.  사실 실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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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시시비비의 지옥

나이가 들면서 가장 자주 마주하고, 자습하고, 자책하기도 하는 큰 가르침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고 고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시비를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대화에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를 따지다가 서로 충돌을 하고, 감정싸움이 되고 결국은 관계에 금이 가는 말도 안 되는 사항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이에 대하여 장자는 이리 말합니다. “聖人不由, 而照之於天” (성인불유 이조지어천) “성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장자가 말한 하늘의 이치란 자연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는 올 그름이 없지요. 죽음도 자연의 하나라는 말처럼 자연에는 삶과 죽음마저 구분이 없는데, 올 그름의 구분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식으로 풀이 한다면, 수양이 된 자는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고정된 관점이 없이 자유롭게 모든 것을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네가 옳다, 너도 옳다, 부인도 옳소 하던 황희 정승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핏대를 세웁니다. 자신의 옳음을 인정하지 않고, 내세우는 다른 의견을 모욕으로 받아 들이며 분노하고 저주합니다. 좀 지나고 보면 그리 난리 칠 일이 아닌데, 그 당시는 자신의 의견에 목숨을 걸고 상대에게 양보를 강요합니다.  작은 의견의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관계의 의가 틀어질 정도가 됩니다. 시비의 지옥에 빠진 인간은 평생 쌓아온 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도, 그깟 것이 무슨 대수냐 하며 이성 줄을 놓아버립니다.   아 우매한 인간이여.   아무리 올바른 생각이라도 평생 쌓아온 인연보다 귀하던가요?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양보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맞는 것처럼 보여도 영원토록 바른 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 불투명한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수십 년을 쌓아온 인연을 내칠 수 있나요? 그리고,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우둔한 이가 내세우는 의견이 뭐 그리 옳겠습니까? 나라는 구하고 인류의 생사가 달린 일이 아니라면 고집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진 게 없는 미천한 인성이 만들어 낸 자기 방어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반성합니다.  이렇게 자기 방어에 무게를 두고 사는 인생은, 시비를 가리는 것이야 말로 자신을 지옥에 빠트리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절대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이와 비교하고 상대적 쓸모를 겨루며 내가 우월하다는, 어린 마음으로는 절대로 자신의 잘난 의견을 양보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내가 그보다 더 잘나고 멋지다고 으스대고 싶은 젊음은 오히려 시비를 가리려고 팔을 걷어 붙이며 달려 듭니다.   그런데 얻는 게 있나요? 요즘 말대로, 개뿔입니다. 시비를 통해 얻는 것은 그저 순간의 정신적 승리감이 전부지만 그 대가로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기고, 덕분에 자신도 지옥에 빠져 헤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밤에 이불을 걷어 찹니다.  지옥을 아시나요? 인간관계에서 만나는 지옥이란,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갈등의 늪에 빠져 헤매는 것이 지옥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새겨보면 지옥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건 상관없이 저는 사랑과 배려가 없는 관계가 바로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곁에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천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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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골칫거리, 한국

지난 주에는 세상이 한국의 이름을 어쩔 수 없이 되뇌이게 만드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BTS건이고 하나는 손흥민 건입니다. 먼저 BTS, 이외의 곳에서 초대를 받고 미국의 백악관을 방문 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BTS는 미국 ‘아시아·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제도 주민(AANHPI) 유산의 달’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BTS가 세계적 이슈인 반 아시아인 증오범죄에 대한 대응에 나섰는데 세계최강 미국의 수장인 바이든 대통령과 단독 대면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는 겁니다. 거기다 백악관 브리핑 룸에 등장하여 한국어로 스피치를 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받았다는게 믿어지십니까? BTS는 이미 유엔에서 2018년에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내용의 청소년을 위한 연설을 했고, 지난해는 유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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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立不敎 坐不議(입불교 좌불의), 존재로 주는 가르침

요즘 한국의 위상은 그야말로 황금기입니다. 반만년의 한민족 역사상 이렇게 풍요롭고 국력이 성세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청난 위상을 자랑합니다.  하루 세끼 먹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너무 먹는다고 살을 빼는 일이 전국민의 과제가 되었으니 참 세상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백세를 넘기신 노모를 아침 느즈막한 시간에 기침하게 하고  얼굴을 닦고 이동식 변기에 앉혀드립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변기에 앉아 계신 노모의 편안한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에서 100년 찐 세월의 깊이를 어렴풋이 감지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북한에서 일본의 이등국민이 운명인 줄 알고 태어나, 만주사변, 대동아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겪고, 18세 나이에 함경도 종성 한씨 목사님 집안에 시집와서 지긋지긋한 일경의 감시속에 지내다가 해방을 맞아 일경의 눈에서 자유로워졌다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곧 북한지역을 점령한 공산당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자 다시 전 가족이 남쪽 서울로 내려오고, 수년간의 노력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았으나 곧이어 터진 한국 전쟁, 결국 4남매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그곳에서 이 글을 쓰는 인간을 낳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병약한 남편을 대신해 열 식구 살림을 도맡아 이끌다가, 고작 나이 50에 남편을 여의고, 그 후 반백 년을 혼자 지내시며 7남매 모두 제대로 교육시키고 건강하게 키우신 김성실 권사님. 그리 강건하시던 분이, 그 모진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신 분이, 이제 백년을 넘기니 더 이상 혼자 지탱할 기력조차 없으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내신 분이 이렇게 오래 사시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평생을 영혼으로 의지하신 예수님의 은총인가 싶기도 하고, 아직도 이 땅에서 하실 일이 남아있나 싶기도 하지만, 어찌 높으신 하늘의 뜻을 짐작이라도 하겠습니까? 단지 그 뜻 덕분에 그 자손들이 매일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어머니는 어떤 생각일까? 일본의 탄압과 최악의 빈곤, 굶주림을 일상처럼 지내던 세월에, 주검이 바람에 날린 길가의 낙엽처럼 널부러진 지옥의 참화를 겪으셨다가, 이제 전세계가 부러워 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 변화를 어머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어머님이 흔쾌한 답을 주실꺼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웃으시겠지요. 立不敎 坐不議(입불교 좌불의) 라고 “서있을 뿐 가르치지 않고, 앉아있을 뿐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처럼 그저 무언의 가르침을 주시겠지요.  요즘 눈과 귀가 다 어두워지신 탓에 대화가 거의 없으신 어머니지만 대화를 못한다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듯합니다. 대화에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오히려 과한 대화가 불화를 일으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목소리가 터지면 늘 당신의 소리를 낮췄습니다. 말씀이 없으시면 가르침은 더욱 깊어갑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나이 든 자식들은 그만큼 자기 생각이 굳어집니다. 굳은 신념은 곧잘 잦은 충돌로 드러납니다. 어머니는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말을 멈추고 생각하라 합니다. 시간이 문제를 도닥이고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립니다.  어머님은 늘 이렇게 가르침을 줍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계실 뿐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존재는 이승이든 천국이든 문제가 안됩니다. 그 이름은 모든 이의 영원한 가르침, 그 자체입니다.      어려서 읽은 박인노의 시조는 우리에게 孝 라는 것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조홍시가(早紅枾歌)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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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세계 영화계의 주류로 등장한 한국영화

  지난주  프랑스 칸에서는 제75회 칸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통상적으로 늘 5월에 2주간 열립니다.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칸 영화제는 독일의 베를린,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국제 3대 영화제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합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칸 영화제와 인연이 많습니다. 많은 배우들과 영화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2007년 영화 밀양으로 전도연 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온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 기록으로는 2019년 기생충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그 여세를 몰아 기생충은 아카데미를 휩쓸었죠. 이번에도 경쟁 부분에 한국 영화가 2편 초청되었습니다. 하나는 박찬욱 감독, 박해일, 탕웨이 주연의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라는 영화고, 또 하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일본인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아이유, 강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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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손흥민 스토리

  유난히 밝은 얼굴에 애교가 많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호반의 도시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도시 춘천에서 축구선수 출신 아빠의 영향으로 축구에 자신의 미래를 건 소년입니다. 독특한 훈련과정을 거쳐 축구선수로 성장한 그 소년은 독일 분데스리거를 거쳐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인 영국의 프리미엄 리그에 진출하여 나이 30에 누구나 인정하는 일급 축구선수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이 끊이지 않은 영국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기 위하여 그 리그의 득점왕에 오르는 것입니다. 득점왕이야 말로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세계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길입니다.   어제 영국의 노리치 축구장에서 일어난 스토리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득점왕이 되는 꿈을 가진 그 소년의 일대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 마지막 장면을 중심으로 손흥민 이야기를 꾸려보겠습니다.  어느덧 춘천의 소년에서 어엿한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구단의 일류 축구선수로 발돋움 한 손흥민 선수, 그러나 늘 실력에 비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에게 그런 모든 편견을 지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올해의 득점왕에 오르기까지 고작 한 골 만을 남겨두고 있고, 그의 팀은 3년만에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위대한 성취를 위한 마지막 게임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 자신이 한 골 이상을 넣고 팀이 승리하게 되면 자신은 득점왕으로 등극하고 팀은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일거양득의 대망을 이루게 됩니다.   상대는 다행스럽게도 리그 최하위인 노리치로 그리 어려운 게임은 아닙니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갑니다  손흥민의 특징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군계일학의 골 결정력입니다.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쏘아대는 그의 슛은 골키퍼 한 명으로는 막아내기에는 너무 예리하고 강합니다. 더구나 그는 골대 앞에서 극단적으로 침착합니다. 골키퍼의 동작을 감지하고 그 동작이 채우지 못하는 빈 공간으로 공을 보냅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골망을 흔듭니다.     그러던 그가 마지막 게임에는 달랐습니다.  득점왕을 인식한 부담감 때문인가요. 몸이 무거워 보였고 그 답지 않게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보냅니다. 그저 대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찬스를 놓치기도 하고, 결코 실패한 적이 없던 골키퍼와 1대 1 단독찬스에서도 두 번이나 골을 놓칩니다. 어이없는 실수에 절로 헛웃음이 나옵니다. 하긴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은 마음 먹는다고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평소 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실패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브닝 스탠다드라는 신문의 딘 킬패트릭이라는 기자인데, 이 친구는 손흥민의 빌런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늘 손흥민을 폄하하고 괴롭히던 인물입니다. 손흥민이 한 두 게임만 부진하면 선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대 놓고 요구하는 최악의 빌런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손흥민이 계속 골을 놓치자 그 친구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손흥민, 동료들이 마련한 밥상을 걷어차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미리 쓰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늘은 이렇게 심술을 부립니다. 늘 클라이막스 전에는 마지막으로 가장 난해한 장애와 갈등을 깔아 놓습니다.   전날만 해도 모든 전문가들은 손흥민의 득점왕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마지막 남은 두 게임에서는 살라를 추월하는 골을 넣어 단독 득점왕이 되리란 전망을 했는데, 그 전 게임에도 골을 못 넣고, 마지막 게임에도 예전과는 달리 그렇게 쉽게 넣던 골을 번번히 놓칩니다. 골문 앞에서 침착하지도 못했고 위치 선정도 예전과 달랐습니다. 득점왕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불안이 몰려오고 갈등은 최고 조에 달합니다. 손흥민 자신도 그렇고, 게임을 보는 수 억의 축구팬들의 머리 속에 서서히 손흥민의 득점왕 등극에 대한 의심이 심어들 때, 카메라는 손흥민의 굳게 다문 입술을 보여줍니다.   그는 게임 후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계속 쉬운 골을 놓치자 어이도 없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춘천에서 아버지와 맨땅에서 하루에 1000개씩 때려대던 슛 연습을 상기하며 “나는 할 수 있다” 고 외쳤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며 침착하라고 격려하는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얼굴이 스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고개를 들고 또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70분을 넘어서고 게임은 막바지로 흘러갑니다. 초조함은 더욱 깊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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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에너지 충전하기

 어느날 친구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친구가 말합니다.  제 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요즘 올라오는 글이 예전과 다른데, 하며 시작하는 말이 송곳이 되어 가슴에 꽂힙니다. 한 마디로 매일 쓰는 어려움을 이해하겠는데 그런만큼 글의 내용이 부실해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가뜩이나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일 올리는 글에 대한 아슬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결국 터지고 맙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가까운 친구가 터트려 준 것이라 조금 아픔이 덜합니다. 글쟁이에게 가장 충격을 주는 얘기가 이런 얘기입니다. 정신없이 쓰느라 뒤돌아 볼 시간도 없는데 누군가 저를 대신하여 냉정하게 객관화된, 실체를 들려주면 정신이 번쩍납니다.  그간 너무 쉽게 쓰곤 했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르고 기억도 못하면서 매일 글을 써서 올렸지요. 맘에 들지 않았지만 관성적 물결을 타고 있는 터라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친구의 말에 뜨끔해진 가슴으로 편집부에 연락을 해서 당분간 글을 못 올린다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마냥 쉬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쉬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슬기로운 방안이 아닌 것은 알지만 일단 마음 속으로 스톱을 외치고, 사고를 세우고, 손을 놨습니다. 멈춰야 생각할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요즘은 달리며 생각하는 시대라는데 저같은 실버세대는 그게 안됩니다. 행동이 멈춰야 비로소 사고할 여력이 생겨납니다.   이런 저런 책이나 보면서 뭔가 떠오를 때까지 버티는 겁니다.  대책이 없을 때는 손을 빼야지요. 바둑에서도 별다른 대응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일단 손을 빼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리고 나면 오히려 적절한 대응이 생각나곤 하지요.  그냥 쉰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슬그머니 듭니다. 그런데 쉰다는 것은 에너지의 축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돌리니 제법 쉬는 것에 대한 당위성도 생겨납니다. 그래  다시 일어날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야 하고 말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법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적지않은 에너지를 충전도 않고 짜내 온 셈입니다. 정신적 에너지는 어디서 충전이 되나요? 저같은 경우는 독서나 멍 때리기 같은 사고의 집중으로 흩어진 에너지를 집합시키는 듯합니다. 에너지가 집합되면 아이디어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혼자서 집에서 하는 이런 행동은 이미 갖고 있는 에너지의 결집은 될 듯한데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은 안되는 듯합니다. 독서가 그나마 간접적인 충전의 기회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간접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태는 기존 에너지의 결집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듯합니다. 더 충만한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외부 에너지 충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외부에서 마주하는 세상과의 만남으로 발생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조직원으로 일상을 갖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겠지만 이미 사회에서 은퇴하고 집에서 소일하는 시니어들에게는 사회생활을 통한 기초 에너지 충전 방법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 경우 나름대로 자신만의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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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보며.

제 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어제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마치 천지를 만드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처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가 단상에 올라 대통령 선서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윤 대통령처럼 단시일에 대통령으로 부상한 인물은 한국의 역사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굳이 꼽는다면 보안사령관 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는데, 두 사람 다 대통령 취임 1년 전만 해도 국민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은 당시 초법적인 정치구도를 이용하여 대통령이 되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정식 민주주의 절차에 의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권의 정통성은 민주절차에 의한 직접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런 면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늘 정통성 시비에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번 윤석열 정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출범한 윤석열 정권에 기대를 거는 가장 큰 이유는 윤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빚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작 지난해에 정치판에 들어온 탓에 정치적으로 누구에게도, 중국에게도 신세진 일이 없으니, 정권을 활용한 빚 갚음이 필요 없다는 것은 그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어느 정치인이든 대통령까지 올라오고 나면, 그때부터 대통령은 정치적 채무자가 됩니다. 특히 중국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정치인의 경우 목불인견의 장면을 연출합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키운 정치인들은 나중에 그들이 어떤 지위에 있든지 관계없이 종처럼 부립니다. 그런 장면을 보는 국민의 속은 뒤집어지고 국가의 위상은 길거리에 버려진 껌딱지처럼 더럽혀 집니다. 도무지 무슨 약점이 잡혀있길래 국가의 위상마저 내동댕이 치며 중국에게 복종해야 하는지 국민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행히 윤대통령은 적어도 그런 행동을 감수해야 할 만한 정치적 채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럴 시간조차 없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그가 정치적 이력이 없다는 사실은 몇 가지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야당에서 말하듯이 신출내기 정치인으로 미숙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정치적 경험이 적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도 많습니다.  정치적 이력이 없는 탓에, 3공화국 이후, 영 호남으로 진영이 나눠져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혹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가해진 정치 보복의 행태를 끊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윤대통령은 어쩌면 정치적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우파가 기대하는 지난 정권자들에 대한 적폐청산이라는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미숙은 노련한 정치인들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진흙탕 싸움을 피하려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진흙탕에서 뒹굴며 온갖 부정 부패에 관여한 정치인들과 그들에게 기생하여 먹고 사는 언론 기레기들을 제거하여 사회를 정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늘 내부의 적 때문에 위험을 겪습니다.  정치인이란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목표로 일하는 동업자입니다. 단지 그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다릅니다. 나라 발전의 여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상대진영이 잘되는 것을 막는 것이 자기진영의 정책입니다.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5만배 무섭습니다.  외부의 적은 대놓고 우리가 망하길 바라지만 내주의 적은 나라가 망하는 것 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상대진영만 무너지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외부의 힘도 차용합니다.  개인적으로 늘 느끼는 일인데 우리나라는 정치인들만 깨끗하다면 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의 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인의 범죄에 관한한 음주법처럼 특별 가중죄를 무조건 적용하는 법안을 국민들이 정식으로 제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옛말에 군자의 작은 잘못은 소인의 큰 잘못보다 크다 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작은 잘못이라도 크게 벌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디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우리사회가 다시 도래하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국가의 무궁한 발전과 그의 개인적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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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외로운가요?

나이가 들면 모두 다 외로움을 느낍니다. 안그런가요? 다들 바쁜데 혼자만 한가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며 망할놈의 외로움이 슬슬 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는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자기가 부른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롯이 자신이 원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동안 살면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아온 댓가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구를 사귄 탓입니다. 늙어서라도 친구들과 허물없는 감정을 나누며 살려면 말 그대로 허물이 없어야하는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어 왔으니 허물이 벗겨질 리가 없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항상 예의 바른 경어를 사용하고 의도적으로 일정 거리를 확보하며 지내는 사람, 주로 올바른 생활을 해 온 지식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죠. 자신이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는 만큼 상대에게도 그런 예의를 요구하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예의가 무너진 모습으로 접근하면 가차없이 돌아서는 매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식당이나 서비스업체에서 서빙하는 사람들의 실수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에 당황한 종업원에게 미소로 보듬어 주는 사람은 늙어서도 절대 혼자 지내는 고독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업원의 사소한 실수에도 서늘해지거나 냉정한 질책을 하는 사람들은 말년에 친구가 없이 외롭게 지낼 소지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만큼, 타인의 실수에도 관용이 없습니다. 평소에 친구에게도 실수하는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민낯을 감추며 사느라 피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올바른 삶을 살지만 외로움을 댓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늙어서 고독하지 않으려면 우선 타인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합니다. 아는 친구는 많은데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요. 대부분 먼저 친구에게 다가서는 시도를 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신세지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그만큼 공감할 만한 경험을 나눈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나중에 외로운 병실에서 혼자 죽기 싫다면, 이제부터라도 먼저 다가서서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상대의 형편에 배려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친구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연인처럼 친구에게도 관심을 가져 보세요. 어쩌면 연인 못지 않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면 부인에 대한 사랑이나 친구에 대한 사랑이나 다 소중하긴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데 모든 시간을 다 소모하지 말고, 하루에 한 두 시간씩이라도 주변사람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습관을 갖는다면 그 습관이 그대의 외로움을 멀리 차 버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주변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궁금한 일도 생기고 연락할 일도 생깁니다. 궁금해지면 당장 전화를 하던가 톡이라도 날려 안부를 물어보세요. 나이가 들면 바쁠 때 전화와도 반가운 것이 안부 연락입니다. 하긴 별로 바쁠 일도 많지 않지요.  진정성있는 인간관계를 위하여는 이렇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대를 이해하고 챙겨 줄 사람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하두 세상이 바쁘다 보니, 자신의 일만 생각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게 분주한 시간이기에 오히려 시간을 내서 자신을 생각해주는 친구의 마음이 더욱 고마울 것입니다.   사실 왜 이런 글을 뜬금없이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한 구석에서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은 고독을 즐긴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는 이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이가 누구인지 몰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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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밥

  오늘은 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인에게 밥은 어떤 의미 인가요? 우리 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밥이 들어갑니다. 밥 먹었어? 언제 밥 한번 먹자. 우리는 매일 삼시세끼 밥을 먹어 대면서 늘 밥 타령입니다.  요즘 한국의 음식이 외국인의 관심을 끌면서 우리 음식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음식명은 그대로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긴 한데 그 이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 영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한국식 스프 니 한국식 바베큐 등을 사용하는데, 밥은 어떻게 번역이 되나요?  밥은 한자의 반飯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이론도 있는데 그 누구도 확실하게 정의 내리기 힘들게 밥은 우리만의 정의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우리에게 밥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쌀로 지은 쌀밥이 그 첫번째고, 두번째로는 밥 묵었나? 하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식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식사의 낮춤말 정도가 됩니다. 영어로 밥을 번역한 문장을 보면 흔히들 RICE를 사용하는데, 쌀이라는 단어를 직역한 RICE는 아무래도 우리의 밥과는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차라리 식사라는 의미와 곡식의 가루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MEAL이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데, 그 역시 쌀밥이라는 것을 대입시켜보면 그 또한 의미 전달이 달라지니 선뜻 영어로 우리가 사용하는 밥의 의미를 정확히 채울 만한 단어는 없는 듯합니다.    밥이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밥에 담긴 한국인의 역사와 한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대중적 굶주림과 한국전쟁에서 겪은 최악의 빈곤은 우리에게 밥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앞선 최우선 가치로 각인되었습니다.   최근 애플 TV에서 방영된 파친코에서는 하얀 쌀밥에 담긴 우리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 잡지 에스콰이어에서는 “드라마 파친코는 밥 한 공기로 한국의 과거를 비친다” 라는 칼럼을 실어, 한국인이 갖는 밥에 대한 의미를 조명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문화는 이제 세계인의 공통의 관심사로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유명 대중 잡지도 팔걷고 나서 한류에 페이지를 할애하고 독자를 부릅니다.  파친코, 꼭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굳이 애플TV를 새롭게 신청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 무료 영상사이트를 조금만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무료 시청이 가능합니다. 스포츠 무료 중계사이트에서 흔히 나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너무 슬픕니다.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역사의 일단이 너무 안쓰러워 영상이 자꾸 흐려집니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결혼식날, 선자 엄마가 쌀가게 주인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일본인에게만 판다는 하얀 쌀 두홉을 구해, 백옥같이 흰 쌀밥을 정성껏 지어 선자를 먹입니다. 목이 메어 차마 그 밥을 넘기지 못하는 선자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할머니가 된 선자가 손자 솔로몬의 일을 도와주러 들린 한국인 할머니의 집에서 식사를 하며 조국의 쌀밥을 다시 느낍니다. 한 톨의 쌀밥에서 영혼이 담긴 고국의 향기를 느끼는 할머니 선자의 모습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는 손자 솔로몬의 모습이 교차되며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렇지요, 우리의 밥 한 공기에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恨이 소복이 담겨있습니다.  이제는 쌀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어들며 더 이상 밥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나 싶은데, 아직도 북녘 땅에서는 이 밥에 고기국을 노래하고 있으니, 여전히 흰쌀밥에 대한 민족의 한풀이는 끝나지 않은 듯 싶습니다.    월요일 오늘, 다시 일주일을 힘차게 출발하시는 교민 여러분, 한국인은 밥심으로 삽니다.  “밥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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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나토에 가입한 대한민국

오늘은 시사문제를 하나 다루어보겠습니다.  지난 5일, 에스토니아에 있는 나토 사이버방위센터에서는 한국의 태극기 게양식이 열렸습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의 사이버방위센터 정회원으로 가입한 것을 축하하며 그 국기를 게양한 것입니다.  나토 사이버방위센터(CCDCEO)는 나토 본부와는 다릅니다. 나토 부속기구라고 보면 되지요. 즉 나토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은 아니고 그 아래 조직된 산하기관에 가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실질적으로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실무기관입니다. 현대전에 제일 중요한 일인 사이버 방위를 책임지는 기구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나토라는 기구가 북대서양 조합기구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미국이 소련의 서진을 막기위해 유럽국가들과 만든 조합인데, 비록 산하기관이긴하지만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이 나토에 가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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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태생적 행복

삶을 행복하게 사시는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돈이 많은 사람? 집안이 좋은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는 수도 없이 많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그것은 성격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한마디로, 태어난 성격 자체가 행복을 누리기에 알맞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이라는 마음의 상태가 염려나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마음을 의미한다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느긋한 성격의 사람이 그런 불안에 덜 빠진다는 점에서 행복을 누리기 쉬운 성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격이 민감하고 섬세하여 모든 일이 닥칠 때마다 불안해 지는 사람의 삶은 늘 걱정이 넘쳐납니다. 다행히 일이 잘 된다 해도 다시 잘못될 가능성 때문에 또 불행을 느낍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느긋한 성격으로 “안되면 말자 뭐” 하는 조금은 무디게 보이는 성향을 지닌 사람은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조건을 지닌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태생적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려와 불안이 주는 괴로움을 모르고 사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일본의 어느 유명작가는 특정한 사유없이 그저 막연히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불안은 그렇게 사람을 깊은 불행의 늪으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삶이란 걱정과 염려, 불안의 사고를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일의 일을 오늘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격상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행복한 삶이란, 태어난 성격으로 정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타고난 성격상 걱정을 모르는 사람은, 심약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늘 신경을 곤두 세우며 사는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또 대부분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성격적 조건을 다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골프 내기를 해도 티가 납니다. 홀 내기를 하다가 한 두 홀 못쳐서 돈을 잃어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저같이 심약한 인간은 인상을 쓰며 마음을 조리는데 그들은 웃으며 다음 홀에 버디 잡아서 찾아올 꺼라며 태평입니다. 그리고 그리 됩니다. 결국 심약한 인간만 더욱 불행해집니다.  그러면 심약한 사람은 평생 불행해야 할 팔자인가요?  그런 사고를 깰만한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어쩌면 긍정적인 사고가 심약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후천적 방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습관을 키움으로 갖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 사고를 갖게 되면 자연히 불안도 사라지겠지요. 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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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입니다.

      지난 2019년 7월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조언을 했는데, 한국이 집중해야 할 분야에 대하여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우리의 삶에 인공지능이 어떤 자리를 차지 할 것인지 예견한 바가 있습니다. 손 회장은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서도 한국이 집중해야 할 분야로 고속인터넷이라고 같은 화법으로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이제는 인공지능 AI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로 변화되었습니다. Artificial Intelligence 라는 말 그대로, 인간의 자연적 지능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든 지능이 판을 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호기심을 유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린 인공지능은,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라는 회사에서 만든 알파고라는 바둑 지능으로, 당시 세계최고의 바둑고수 이세돌과 5번기를 두어 4승을 거두며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며 화려하게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넘은 이 알파고는 과거의 수 많은 바둑 기보를 학습하여 실력을 키웠지만, 그 다음에 나온 알파고제로는 바둑 두는 법만 가르쳐 주고 스스로 학습하게 만들었더니, 열흘 만에 알파고를 창고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 알파고 제로를 다시 창고로 보낸 것은, 아예 학습조차 시키지 않고 스스로 경험을 쌓으며 바둑을 익힌  알파제로인데, 전 모델인 알파고 제로에 비해 1000배 우수합니다. 알파제로는 바둑뿐만 아니라 체스, 장기도 신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발전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휴식이 필요없는 컴퓨터의 몸을 갖고 있으니 쉬지도 않고 스스로 공부하고 40일만에 그 성과를 이룹니다.   알파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중적 인공지능의 사례지만, 최근에는 자율 자동차가 나오면서 급작스럽게 우리 생활에 인공지능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그뿐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정보를 취하는 유튜브에서 홈을 누르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채널들이 어떤 것인가요? 그대들이 늘 관심있게 보던 채널이 아니던가요? 맞습니다. 유튜브 회사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고객의 관심도를 조사하여 그와 비슷한 채널을 추천합니다. 그래서 고객들은 편하게 자신이 관심을 갖는 채널을 보게 되지요.   모바일로 쇼핑이라도 한번하고 나면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소개하며 구매를 유도합니다. 아마존에서는 아예 당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알아서 집으로 보낸 다음, 후 결재를 받습니다. 요즘 인기인 넷플릭스 역시 그대의 기호를 잘 알아 그대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골라서 추천해줍니다.  그러고 보면 인공지능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삶에 깊숙히 들어와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세상의 흐름을 이렇게 책으로나, 글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감탄하고 마는 일반인들은 인공지능의 실체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뭔가를 하긴 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이제는 사업을 하려면 인공지능을 이용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는데, 자신에게는 전혀 실체가 잡히지 않는 인공지능,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몇권 샀습니다.  한국의 가장 최초의 인공지능 연구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삼성의 Seri 연구소에서 10여 년 동안 일하며 한국의 인공지능을 발전시켜 온 정두희 박사가 쓴 < AI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책과 <넥스트 빌리언 달러>라는 책을 구입해 읽고 있는데, 일단 인공지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책을 공부하며 느낀 점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부디 이 작은 몸짓이 여러분이 현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에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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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보이스피싱,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심심찮게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것 중에 하나가 보이스 피싱입니다. 그저 남의 일 이려니 했지요. 내가 뭐 정보를 흘린 것도 없는 것 같고, 가당찮 은 접근을 해와도 설마 내가 넘어가겠나 했지요. 실제로 그들의 뻘 짓을 우리 집도 한차례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거의 10년전의 일인가 본데, 아들애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집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아들애 이름을 대며 지금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 전화를 받는 집사람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 사고 장소가 한국이라는 소리에 대번에 보이스 피싱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무슨 소리를 하냐며 화를 내고 끊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때 웃으며 참 바보같은 놈들 하며 넘어갔는데 그런 사건이 유익한 경험으로 작동하지는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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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한식의 특징, 채식과 발효

한식 이야기 계속합니다.  한식의 특색이라고 짚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식의 특색을 꼽는다면 채식과 발효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린 시절 우리 밥상을 주로 차지한 것은 대부분 푸른 채소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어쩌다 생선이라도 한마리 올라오면 입에 미소가 돌았고, 오랜만에 돼지 고기라도 올라오면 오늘은 무슨 날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시절이라 그랬습니다. 지금은 고기가 너무 자주 올라온다고 손사래를 치지요.  아무튼 우리 식문화의 주메뉴가 나물이고, 요리법의 근본은 발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효가 근본을 이루는 이유는 메인 반찬인 김치도 그렇지만, 모든 음식에 맛을 내는데 들어가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모두 발효식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전통 밥상은 채식과 육식의 비율이 8대2정도라야 이상적인 차림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마 현대인의 이상적 식문화와도 유사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지혜가 어디까지 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한식에서 사용하는 나물 반찬의 재료는 모든 채소와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새순, 풀 그리고 해초입니다.  나물은 ‘남새’라 하여 밭에서 키우는 채소와 산에서 저절로 자라는 야채 즉 ‘푸새’가 있습니다. 순 우리말로 채소와 야채를 남새와 푸새라고 부릅니다. 남새는 배추, 무, 시금치, 고추, 마늘, 파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물이고, 푸새는 고사리, 더덕, 쑥, 두릅, 버섯 등이 있지요.  우리가 나물을 먹는 식문화가 생긴 이유는 반도라는 특성상 한 곳에 정착하며 사는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화 되었을 테고, 고려시대에 숭불사상으로 육식이 금지된 것이 더욱 채식 위주의 식사가 정착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나물이 양식이 부족할 때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구황식품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밥상의 주인은 나물이 차지하게 됩니다.   한민족이 나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은 이렇게 빈곤이라는 슬픈 사연이 자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외부의 침입으로 인한 전쟁, 가뭄, 춘궁기 보릿고개 등 우리에게는 빈곤할 수 밖에 없는 아픈 역사가 숨어있는 탓에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식별해내는 감식력이 발달한 것입니다.  또한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한반도의 지형과 4계절의 기후가 광범위한 식물을 자라게 만들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자라는 식물 중 먹을 수 있는 것이 800여 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식물만으로는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니, 식물성 단백질을 공급하는 콩이 건강의 균형을 맞춰주는 식품으로 등장합니다.  콩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식품입니다. 전남대 정규화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콩 종자를 보유한 콩박사입니다. 세계 유수의 종자회사에서 유혹해도 안 팔고 우리 고유의 콩 종자를 보호하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예로부터 콩은 한국과 인연이 깊습니다.   우리의 모든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 들어가는 장, 간장과 된장의 원료도 전부 콩입니다.  장은 콩을 발효시킨 메주로 담급니다. 발효의 진수가 담긴 식품이 바로 우리의 장을 만드는 메주입니다. 메주콩은 그야말로 단백질이 듬뿍 담긴 영양 덩어리에 항암효과마저 탁월합니다. 콩이야말로 신이 내린 완벽한 먹거리라고 합니다.  콩의 원산지는 우리 고구려 영토인 만주지역으로 알려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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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약이 되는 음식, 한식

  옛부터 우리는 밥이 곧 보약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식은 한방의학의 근간을 이룹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 하여 약과 음식이 같다는 말이 널리 통용될 정도로 음식은 의술의 하나로 활용 되었으며, 덕분에 의사들은 음식과 조리법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병이 나면 먼저 음식으로 다스리고 그 다음에 약을 쓴다는 식이요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식을 세계적으로 알린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예쁘고 재주 많은 장금이가 요리뿐만 아니라 의술에도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식사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 명의로 알려진 전순의(全循義)는 음식으로 질병을 다룬다는<식료찬요(食療纂要 1640)>라는 책을 지어 식이요법을 체계화하였습니다. 『식료찬요』는 증상별로 치료법을 제시하는 식이요법 책으로, 여러가지 약재를 식재료와 함께 음식으로 섭취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기록했습니다.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서 읽어 두시면 지병이 있는 식구들 식사 차림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식이요법을 위한 의서는 비단 『식료찬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허균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역시 식이요법의 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문헌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음식을 약처럼 생각하며 먹어왔기에 그 종류가 다양하고, 요리법 하나에도 영양과 균형을 생각하는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최근에 외국인들에게 왜 한식이 영양식이자 다이어트 식으로 각광받는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한식이 가진 깊은 지혜를 알지는 못해도 몸에 좋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조상의 지혜로 차려진 한정식을 살펴보기로 하지요.  한정식은 주식인 밥을 기본으로 각종 부식을 한상에 모두 올리는 <공간전개형식사> 방식입니다. 중식이나 서양식은 음식이 에피타이저를 시작으로 디저트까지 시간을 두고 나오는데 우리의 음식상은 한번에 다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상차림의 규모는 밥, 국, 김치를 제외하고 쟁첩(놋쇠로 만든 작은 반찬접시)에 담은 반찬가지 수에 따라 3, 5, 7, 9, 12첩이라 합니다. 한정식 반찬에는 국, 찌개, 구이, 전, 찜, 조림, 김, 나물무침, 김치, 젓갈 등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공급합니다. 그래서 한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선한 식재료입니다. 약이 되는 식재료인데 아무거나 함부로 쓸 수는 없습니다. 제철음식, 유기농 재료, 지역별 향토재료, 몸과 흙이 하나라는 신토불이 의식으로 엄선된 재료를 쓰는 것이 한식입니다.  이런 한식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가장 관심을 끄는 메뉴가 있는데, 비빔밥입니다. 비빔밥이야말로 우리 한식의 정신이 가장 잘 표현된 음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빔밥은 옛부터 산신제 등 공동 제사에서 나온 제사 음식을 골고루 받아 비벼 여럿이 함께 먹은 것으로 유래됐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전주 비빔밥과 진주 비빔밥이 있습니다. 안동에는 아예 헛제사밥이라고 하여 제사를 지내고 먹는 밥이 아니라, 제사 음식으로 차려진 비빔밥이 있습니다.   비빔밥이 문헌에 처음 등장 한 것은 조선말기 18세기 경에 쓰여진 것으로 짐작되는 저자 미상의 <시의전서>라는 조리서에서 부븸밥으로 표기되어있습니다. 한자어로, 어지럽게 섞은 밥이라는 뜻입니다. 비빔밥은 색이 아름다워 꽃 화花를 써서 화반花飯 이라고 불렸습니다.  비빔밥에는 우리 민족의 어울림의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서로 다름이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비빔밥이 갖고 있는 한민족의 화합과 창조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비빔밥은 각 지방마다 특색이 다릅니다. 언제 시간이 날 때 전라도, 경상도를 들려 각 지방의 비빔밥을 맛보며 각 고울의 특색들이 어떻게 어우러져 재 창조 되었는지 느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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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우리의 지식 무장, 김치

당분간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알아야 할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외국에서 지내며 우리문화에 대하여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수준의 한류 지식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젊은 시절 독일에 자주 다닐 때 독일 음식의 단촐함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호텔 아침식사에 독일 특유의 차돌처럼 단단한 하드 빵에 삶은 달걀, 소세지, 햄 치즈 등이 있고 커피가 고작입니다. 전부 마른 음식입니다. 북유럽 민족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남쪽으로 내려와 약탈을 해야 먹고 사는 민족이었으니 음식이 전부 이동을 하면서 먹을 수 있는 마른 음식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니 맛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동하며 먹을 술로는 알코올 도수가 독해야 할 텐데, 순한 맥주가 주를 이룹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유럽쪽은 물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물이 석회수가 많아 그냥 마시기 불편합니다. 맥주를 만들어 물처럼 마십니다. 북유럽에서 맥주는 술이 아닌 셈입니다.  이렇게 그 나라의 역사나 지역을 보면 음식이 드러나고  또 음식을 보면 그 역사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음식을 보면 한국의 문화와 기후 등이 드러납니다. 요즘 한국의 음식 중에 가장 세계화된 김치, 우리 김치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 번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김치가 생겨난 이유에는 한반도의 모진 겨울 추위가 숨겨져 있습니다. 여름철에 풍부한 채소들이 겨울이 되면 자취를 감춰 구할 수 없게 되자, 채식을 주로 하는 한민족은 채소를 소금에 절여 보관합니다. 이것이 김치의 시작입니다. 김치라는 용어도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 라는 딤채 沈菜 에서 유래되어 김치로 음운변화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김치는 그 종류가 채소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배추, 무, 보쌈, 갓, 파, 동치미 등 무려 200여가지 다양한 채소가 김치로 만들어져 겨울철 식량으로 비축되고 소비된 것입니다.   김치를 이르는 우리말로 가장 오래된 것은 ‘지’ 가 있습니다. 지금도 전라도 지방에서는 김치를 ‘지’라고 합니다. 단무지, 묵은지, 오이지 등이 다 김치를 이르는 말입니다.  김치의 발전을 보면 처음에는 단순히 소금에 저려 오래 보관하며 먹는 방법을 취하다가, 산화 부패를 억제하는 고추가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지금의 김치가 됩니다. 고추가 들어가는 것이 매운 맛을 위함이 아닙니다. 고추가 없으면 발효가 너무 일찍 일어나 부패합니다. 김치를 담그는데 쓰는 소금은 칼슘과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이 좋습니다.  발효음식인 김치는 유산균을 증식시켜 항암과 면역력 증진에 큰 효과를 냅니다. 잘 익은 김치에는 비타민 C 와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해로운 균을 죽이고 장 안의 물질대사를 도와 체력을 증진시키고 원기 회복과 식욕을 돋우는 효과가 있습니다.  코로나를 김치로 이긴다는 것은 그저 헛소리가 아닙니다.  발효식품의 단짝은 옹기인데, 옹기의 숨구멍을 통해 산소와 햇빛이 들어 젖산균이 숨쉴 수 있게 합니다. 요즘은 옹기대신 김치 냉장고가 그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일본이나 중국 등지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는 우리의 전통 김치와는 차원이 다른 그냥 채소 무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겨우내 먹을 김치, 깍두기, 동치미를 늦가을에 한번에 담그는 것을 김장이라 하지요. 딤장沈臟에서 온 말인데 ‘담가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김장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이웃과 품앗이를 하며 김치 담그는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며 동시에 이웃의 정을 나누는 나눔의 문화입니다.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지정되었고,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고유 문화입니다.  이 정도를 알고 있어야 한국인이 됩니다.  한류에 관심이 많은 요즘, 외국에서 김치 아카데미를 연다면 그 또한 좋은 사업꺼리가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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