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한주필 칼럼 – 한류는 유행이 아니다.

어제 한국문화가 세계에 던진 메시지와 그 영향력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왜 한국의 문화는 세계인에게 거부감 없이 흡수되며 그 위력을 발휘하는지 원인을 좀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류가 세계인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더구나 영어권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고작 7천만이 쓰는 마이너 언어로 된 문화가 이렇게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유에 대하여 한 영국의 언론에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한류는 한국적 환경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주제로 만들어진 문화이기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부터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강력한 무력에 의한 강압적 주입방식을 사용한 서구문화와는 달리, 한국 문화는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타당한 주제와 가치를 다루기 때문에 누구든지 거부감없이 공감하며 마음을 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한국의 문화는 우리 인류의 오랜 전통적 가치를 되살려냅니다. 거친 욕설로 인간의 어두운 감성을 드러내는 서구의 음악과 달리 한국의 K-POP은 감사와 존경 그리고 겸손과 배려와 같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전통적 가치를 되살려줍니다. BTS 가 젊은이들 뿐만아니라 그 부모들마저 팬으로 끌어들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그런 보수적인 가치의 부활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을 선택함으로 고루한 전통에 대한 현대인의 거부감을 지워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K-POP이 우리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계인의 마음에 다가선 한류가 급격하게 전 세계에 퍼지게 된 원인의 하나로 현대 사회의 디지털화를 들 수 있습니다. 급격하게 디지털 화한 지구촌의 변화는 한류의 바람을 세계 구석구석으로 날리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또한 그렇게 전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린 한류는 그들에게 또 다른 기대를 만들어 줍니다. 비영어권 문화의 등장이 만든 기대이자 희망입니다. 그 동안 주로 국력이 강한 국가의 언어, 즉 영어를 바탕으로 한 문화만을 즐기다가 비영어권, 그것도 마이너 언어의 문화가 큰 거부감없이 수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는 여타 언어권 문화의 다양한 콘텐츠의 등장을 기대하게됩니다. 한류를 시작으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문화 콘텐츠의 다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견고하게 성을 쌓고 타언어 문화의 접근을 막고 있던 영어문화권의 진입장벽을 부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한류입니다. 이렇게 한류는 정작 한국인인 우리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의 문화지평에 엄청난 파고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상보다 훨씬 높은 한류의 파고는 기존의 문화강국에게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알러지 증상을 드러낸 나라는 중국입니다. 그들은 논리적인 추론없이 그저 모든 좋은 것은 중국으로 시작되었다고 떼를 쓰는 어이없는 정책으로 한류를 포함한 온세계의 문화 강탈을 시도합니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15억 인구입니다. 지구촌의 20%에 달하는 인구가 주장하면 그것이 바로 세계의 주장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그들은 코로나가 자신의 것이라는 주장만은 사양하는 겸손을 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중국은 이미 세계인의 눈에서 벗어난 왕따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중국인 자신들만 모릅니다. 눈감은 15억 인민의 종착역은 어디가 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우리의 문화 한류는 이렇게 조용히 은밀하게 세계인의 취향을 바꿔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한류는 유행이 아닙니다. 한류는 문화 그 자체입니다. 그것도 세계 모두가 공감하고 즐기는 세계인의 문화입니다.  내일부터는 한류의 현주소를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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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문화제국 시대의 개막을 알린 한류

    오늘은 요즘 갑자기 뜨고 있는 한국 문화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도록 하지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김구 선생님이 왜 온 우리 민족의 존경하는 지도자였는가를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의 정치적, 이념적 성향은 접어 두더라도 국가 지도자로 한 국가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짚어내는 그 통찰력이야말로 모든 지도자가 배우고 가슴에 새겨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은 우리가 빈곤에 시달리던 그때, 생뚱맞게 전혀 시대와 맞지 않는 주제인 문화의 힘에 대하여 얘기했습니다. 그때가 어떤 상황인가요? 전 세계가 전쟁을 치르고 힘에 의해 국제 질서가 재편되고 오직 힘을 가진 자가 행세하던 무력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그때 그 분은 문화를 얘기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충족시킬 만 하면 되고, 나라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라는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 믿는다.”   지금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김구 선생님의 통찰력 있는 혜안에 가슴이 울렁입니다. 최근 세계는 한국으로 인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뉴욕 주립대학 경제학 교수를 지내고 지금 블룸버그 칼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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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궁금한 인생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장년의 나이가 돼서도 남들의 인생을 보고 막연히 부러운 생각이 드니, 참 인생 부실하게 살았다는 자책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다른 이의 멋진 삶을 보면 그렇게 사는 사람의 심정이 궁금합니다. 저런 삶을 사는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어떤 심정일까?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설레며 설 잠을 잘까?  또, 다른 남자의 눈으로 봐도 멋지게 생긴 미남을 보면, 그 역시 또 궁금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잘 생겼다는 소리를 이구동성으로 하는 세상에서 살면 그 기분은 어떨까? 또,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만 받고 자란 사람은 어떤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갈까도 궁금합니다.  참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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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일이 갖는 의미

의원면직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무슨 국회의원이 사직을 한 것을 의미하는 듯한 이 단어가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단어를 알기 위해서는 한자풀이를 좀 해야 합니다.   依願免職 즉 ‘(본인의)원(願)에 의(依)하여 그 직(職)을 면(免)하게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그만둔다는 얘기입니다. 알고 보면 쉬운 의미를 어려운 한자를 써서 돌려 말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단어가 등장하는 내용은 대부분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데 기쁘고 슬프고를 따질 일이 아니지만, 그 소식의 뿌리를 찾아보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단어는 정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명예퇴직 혹은 희망퇴직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1997년 한국에는 IMF가 터지면서 수 많은, 진짜 대부분의 회사가 거덜이 났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나 하면 일반 사기업이 망하고 직원들이 한순간에 잘려 거리에 나가는 것은 너 나 없는 일이고, 하다못해 국가 공무원들마저 일거리가 사라져 공무원 수를 줄여야 할 판이었습니다. 결국 정년은 안되었지만 나이가 많은 공무원부터 퇴직을 권고 받고 옷을 벗습니다. 그래도 생으로 그냥 나가게 할 수는 없으니 이름이라도 멋지게, 명예퇴직이란 단어로 포장하고 퇴직 시 별도의 퇴직금으로 1~3년치 급료를 주는 것으로 퇴직을 시켰는데 이때 쓴 단어가 의원면직입니다. 실제로는 쫓아내면서 대외적으로는 자발적으로 나간 것처럼 꾸미기 위해 그 어려운 단어를 만들 모양입니다.  그 이후 이 단어, 명예퇴직, 희망퇴직, 의원면직은 사기업으로 옮겨갑니다. 하다못해 신입사원들에게마저 이 명퇴가 적용되어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일, 직장이란 이렇게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요소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가서 보니 베트남인들에게 일이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더군요. 직장 옮기기가 마치, 그늘 따라 다니는 카페 의자처럼 가볍기 그지없습니다. 참 쿨해 보이기는 한데, 우리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뭐가 다른가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도대체 일에 대하여 베트남인은 어떤 사고를 갖고 있길래 그리 쿨하게 처신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일단 베트남인에게 일, 직장이란, 단지 돈을 버는 목적이 전부인 듯합니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돈을 다른 것을 통해 벌 수 있다면 기꺼이 직장이나,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는데 망설임이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돈이 목적인데 좀더 쉬운 돈벌이가 있다면 당연히 그 방법을 취하는 것이 도리에 맞습니다. 안하면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베트남 회사들의 평균 이직률은 년간 100%가 넘습니다.    그럼, 한국인에게 일이란 베트남인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 돈을 번다는,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돈을 번다는 목적이 전부가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낀다는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떤 방법을 통해 구현됩니까? 사회라는 무대를 통해 존재가치가 드러납니다. 사회에 떨어져 혼자 지내는 사람에게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이라는 통로를 통해 사회와 자신을 연결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존재라는 가치가 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반면 베트남인들은 사회보다는 가족으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사회보다 가족이 우선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한국인들은 자신의 영역을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로 확대하여 투영되기를 원하는 데 비해 베트남인들은 아직 그 투영 폭이 가족에 그치고 있어 일에 대한 가치 역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버는 작업으로 한정되는 듯합니다,  우리에게는 돈이란, 일의 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부여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못 벌어도 일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더불어 돈도 벌 수 있다면 반복되는 일로 인한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하물며 그 일이 봉사로 옮겨지면 외려 돈을 쓰면서 일에 매진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일이란 다른 말로 건강지표가 됩니다.  우리는 건강해야 기본을 챙길 수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 등., 이 모든 것이 건강을 조건으로 한다고 본다면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기본 조건을 충족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일이란 건강의 바로미터 입니다.  누군가 “건강 좀 어때?”라는 물음은, “일이 잘되고 있는가?” 하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듯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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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존경 받을 수 있다.

  # 리스펙트BTS #아시아인인종차별 며칠 전 BTS가 그래미 상 후보로 올라 오랜만에 멋진 대면 공연을 했지만, 그래미상 수상은 불발했습니다. 그래미 어워드의 견고한 인종차별의 벽은 아직도 굳건한 듯합니다. 그나마 이번에는 흑인에게 문호를 일부 개방하기는 했지만 세계 음악계의 절대 강자 BTS 에게는 아직도 간을 보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저 BTS를 후보의 자리에만 올려놓고 공연을 하게 만들어 시청자만 확보하겠다는 알뜰한 수법이 눈에 보입니다.  서구권에서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사실 그 뿌리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깊고 견고합니다. 우리 문화가 그들 세계에 영향을 주면 줄수록 그런 행태가 표면에 부상하며 그들이 그동안 아시아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 실상이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확실한 인종차별의 끝판왕을 보여준 호주 방송국이 등장했습니다.  원래 호주 방송들은 BTS를 이유 없이 비난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BTS에 대한 정보도 없으면서 김정은과 연결지으며 거북한 욕을 하던 곳입니다. 그리곤 나중에는 농담이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탓인지 BTS는 2013년 이후 호주 방문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런 호주에서 이번에 또 제대로 사고를 쳤습니다.  호주 방송 채널 10이라는 곳의 <더 프로젝트>라는 프로에서 그래미상 시상식 장면을 보여주면서 BTS의 맴버 뷔가 객석에서 다른 가수의 공연을 보고 환호하는 모습을 포샵하여, 그가 기침을 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영상으로 바꿔 송출하였습니다.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영상을 만들어 BTS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트위터에 그 영상을 올렸습니다.  이는 코로나를 퍼트리는 아시아인이라는 누명을 BTS에게 뒤집어 씌운 악의적인 방송 조작이었습니다.  아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방송국에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보내고 정식 사과와 관련자 문책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고 BTS 리더 RM이 “우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다” 라는 발언을 합니다. 뭔가 깊게 응어리 진 발언입니다.  이런 방송국의 조작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한 5억불 정도의 손배 소송을 하는 겁니다. BTS의 명성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할만한 소송이고 스스로 맡겠다고 손들고 달겨들 법률회사 널려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앞으로 섣부른 차별적 농담을 BTS에게 하다가는 방송국 자체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원래 호주는 인종차별로 유명한 곳입니다. 저 역시 20여 년 전 그 나라에 아들애를 유학시키고 자주 방문한 곳이라 그 분위기를 잘 압니다. 그곳에서 차별 문제로 많이 싸웠습니다. 입국 시 세관에서 백인들만 따로 줄을 세우는데 항의하다가 보복성 조사를 받느라고 3시간이나 늦게 나온 적이 있을 정도였지요. 동네 펍에서도 자신들은 실내에서 모자를 쓰건 말건 상관하지 않다가도 모자 쓴 동양인이 눈에 띄면 단체로 몰려와 모자를 벗으라고 윽박지르곤 히죽대는 비열한 인간들이 득실대는 곳이 호주입니다.   아무튼, 요즘 들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빛을 발하면서 그에 따라 인종차별이라는 서구인들의 그늘진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빛이 너무 밝기 때문에 드러나는 그늘입니다.  요즘 일본인들이 한국이 자신들을 따라 잡는 것에 견디지 못하고 저급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 못지 않게 서양 친구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파워가 갑자기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을 낯설어하며 그 수용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며 자신의 감정 정리를 하느라 헤매고 있는 듯 보입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우리는 상당기간 유사 사건을 많이 겪을 것입니다. 슬기롭게 이 과정을 잘 넘겨서 당당한 실력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받고, 공정하게 대접받는 아시아인, 한국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류 #BTS #K-POP #씬짜오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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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成人의 자격

    일본에는 1월 두번째 주 월요일을 성인成人의 날이라고 정하고 국가 공휴일로 즐기고 있다. 어른이 되는 날을 의미한다. 왜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성인의 날이라는 공휴일을 만들었는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성인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을 만 하지만 공휴일로 격상시켜 기념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여 하는 말이다.  이런 기념일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굳이 공휴일로 지정하여 성대히 치루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인이 되어도 성인의 역할을 하는 이가 적은 탓에 잔치를 벌여서라도 그 분위기를 잡아 보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이야 말로 결혼도 않고 늦도록 부모와 함께 지내는 자녀가 많은 사회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있다. 그런데 과연 일본만 그런가? 한국은 더 하지 않은가?  오늘은 한국에서 비혼을 대세로 여기며 자녀는 갖지 않고, 늙은 부모에게 부양의 의무를 당당히 요구하며 살아가는 용감한 한국의 젊은 세대에 대한 얘기를 좀 할 생각이다. 부모로서 말이다.  이런 자녀들로 인한 고민은 한국에서는 너 나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다. 결혼한 자식들보다 안 한 자식이 훨씬 많다. 그렇다고 나이가 젊은 것도 아니다. 전부 나이가 30대 중반이 넘어 40줄이 가까운 아이들이 결혼도 안하고 독립도 안하고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의 신세대들, 신세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은, 덜 성인세대들, 그들은 진짜 똑똑해서 지 앞가림도 잘하고, 조금만 의견이 갈리면, 상대가 어른이고 말고 상관없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밝히며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권리를 주장 한다. 하긴 그럴만도 한 나이긴 하다. 그들이 얼마나 당당한지 그 모습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이미 나이가 성인이 된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나이만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언가 좀 발란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안하시나?  IT, 인터넷 지식이 부모보다 더 많다고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성인의 조건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려면 나이만 먹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생활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생활의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깨닫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성인이다.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했다면 유감스럽게도 그대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익혀야 할 것도, 갖춰야 할 것도 많은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  또한, 성인은 자신을 객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독자적으로 책임있게 수행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제대로 된 성인이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지원이나 응원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면 이는 진정한 성인이 아니다. 아이와 다른 성인은 자신의 일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마무리짓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대들 세대는 늦게까지 부모님에 의존하며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면에 그대들을 늦게까지 책임져 준 부모들이 경제적 능력이 사라지고, 육체적 기능이 약화되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과연 그대들이 부모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으로서 부모를 보살피는 부양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되는가?  사실 우리 부모세대도 기대하지 않지만, 그대들 역시 그런 부담을 질 생각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받기만 하고 갚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세태는 무엇으로 설명이 되는가. 설마 받기만 하고 시치미 땔 생각은 아닐텐데 말이다.  요즘 우리부부는 100세를 넘은 모친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 노모가 기력이 쇄잔하여 스스로 대소변을 못가리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가끔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 무엇하는가’ 하며 자신을 탄식하시곤 한다. 그러나 노모는 그렇게 사셔도 된다. 숨이 붙어 계시는 한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사실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노모는 전쟁의 폐허속에서도 자식 7남매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히 키우셨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삶이기에 그 노고에 대한 보답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자격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대들이 부모로부터 무한대로 받은 사랑 역시, 부모들이 그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그대에게 갚은 것이다. 요즘 그대들의 생각처럼 결혼도 안하고, 자녀도 안 키우고 온전히 자신의 삶만 알뜰히 챙기겠다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되면 그대들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누구에게 갚을 생각인지 한번 돌아보아라.  자신이 받는 무한한 사랑을 철없이 즐기기만 하는 상태를 성인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그동안 그대들이 부모와 이웃에게서 조건없는 사랑을 받았듯이, 그 은혜를 다른 이에게 되돌려주는 사회적 소명이 그대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할 때, 비로소 성인의 자격을 갖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독립된 성인으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얘기가 우리 젊은 세대에 제대로 전달이라도 될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대들의 행동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모여 세상 인심을 이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둔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쓴 글이다.    채근담에 보면,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은 삶은 백년을 살아도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다”고 했다.  한번 돌아볼 만한 문구는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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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반려동물 사업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반려동물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요즘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전체 가정의 29.7%로 나타났고, 앞으로 키울 의향이 있다는 가정이 50%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한국의 가정을 그리는 이미지에 부모 자녀 외에 추가로 반려동물이 함께 등장합니다. 특히 비혼 세대들에게는 반려자 대신 반려동물이 단골로 등장하지요.  혼자 사는 비혼 세대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을 다 내보낸 황혼의 부부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부부관계에 큰 도움이 됩니다. 별다른 화제거리도 없어 대화도 뜸해지고 건조한 집안에 환한 웃음을 되찾아 주는 것이 반려동물의 존재입니다. 마치 새롭게 아이가 생긴 듯한 기분이죠. 아둥대며 주변을 맴도는 동물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신도 식어가는 삶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튼 요즘 한국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반려동물에 대한 존중이 일반화 되는 듯합니다. 이렇게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이 분야의 사업이 고개를 듭니다. 오늘은 펫관련 사업을 한번 살펴보죠.   제일 먼저 펫 병원의 증가는 말할 필요가 없지요.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집 주변의 펫병원이 어디인지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용품 사업인데, 이 사업은 엄청난 규모로 커져가는 듯합니다. 펫 전람회를 인터넷으로 훔쳐봤는데 참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행복한 펫입니다.  그 다음에 동네에서 보이는 펫 사업은 펫카페, 펫호텔인 듯합니다. 반려동물들을 데리고 견주나 집사들이 커피도 마시고 환담을 나눌 장소인데, 공동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도 교환하는 곳이니, 고정 고객 확보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그곳에서 펫 간식이나 용품도 함께 판다면 제법 그럴 듯한 사업이 될 듯합니다.  요즘 한국에서 등장하는 펫 관련 사업 중에 놀랄 만한 사업이 있는데 펫 전용 아파트입니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인데 펫 관리를 위한 시설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몇년 전에 등장했는데, 그 안에는 동물들이 미끄러지지 않는 마루 코팅이 되어있고 전등도 동물들을 자극하지 않는 등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일층에는 동물들 발 씻는 장소가 준비되어있고, 털이 빠져도 지장없는 배수로 시설을 갖추고 있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안 들리도록 벽과 바닥에 방음 장치를 해주었다죠. 그 외에도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필요한 각종 편의 시설을 준비한 펫 아파트가 17평 정도로 지어졌는데 전세로만 분양했다고 합니다.  한동안 펫 택시가 시범 운영되었습니다. 주인이 타도 좋고, 안 타도 원하는 장소에 반려동물을 데려다 주는 택시가 운영되어 호평을 받았는데 정식 운행까지는 가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T-Way 항공에서는 국내선에 한해 반려동물을 함께 케리하는 펫켓팅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중이랍니다. 현재 제주편부터 그렇게 운영하는데 반려동물을 위한 전용 케리어를 제공한다고 하지요. 여행을 가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추억이 될 듯합니다.  멍멍밥상이라는 반려동물 식당겸 케익점이 있는데, 반려동물용 음식과 생일, 기념일 케익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엄청 잘 된다고 합니다. 이 사업의 장점은 음식맛에 대한 불평이 없다는 것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최종 과정인 반려동물의 장례사업, 거의 사람들 장례와 똑 같다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장례비용과 묘지까지 마치는데 300.000 ~ 1,200,000 원이 든다고 합니다. 벌써 몇 개 업소가 성황리에 운영 중입니다. 염, 수의 착용, 화장, 매장 등 모든 과정이 인간처럼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업에 관심이 계신 분들 한국의 추세를 보고 베트남에서 사업을 고려해보시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듯합니다.  아무튼, 무엇을 해도 그냥 대충하는 법이 없는 한국인들, 반려동물 양육마저 한국 만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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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10년을 더 사는 방법

한 3-4년전쯤인가 봅니다. 베트남에서 혼자 지내던 시절이 있었죠. 방이 3개나 되는 넓은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던 때였죠. 밤에 잠도 안오는데 그냥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고, 누구를 만나기도 내키지 않던 시기, 아마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정도의 세월을 보낸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별로 사는게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던 시절이었죠.   그때 우연히, 친구가 준 새끼 검은 고양이를 하나 얻어서 키웠는데, 엄청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키워보았던, 번잡스럽던 강아지와는 달리 고양이의 쿨한 독립성은 저의 게으름을 채워주면서도 반려동물로부터의 위로를 동시에 갖게 하는 참으로 괜찮은 한 수였습니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몸을 비비며 살았죠. 고양이가 집사의 몸을 비벼 대거나, 집사의 푹신한 배를 발로 꾹꾹 눌러대는 모습은 사랑을 전하고, 사랑을 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은 반려동물 키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반려동물이 주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반려동물은 가능하시다면, 무조건 키우는것이 삶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반려동물을 키운 후 부터 불면증 현상이 완화되었습니다. 묘하게 잠이 들기까지의 과정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개나 고양이의 털을 만져주고 있을 동안에 느끼는 편안함은 수면제 못지 않은 효과를 내는 듯합니다. 그리고 혼잠이 외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넓은 집에 나혼자가 아니라 나를 신뢰하는 누군가, 그것이 비록 동물이긴하지만, 함께 숨쉬고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반려동물의 사랑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사랑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반려동물 역시 주인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줍니다. 주인의 외모를 평가하지도 않고, 돈이 적고 많음도 사랑의 조건이 되지 않지요.  설사 내가 사랑을 덜 주어도 반려동물은 무조건 사랑을 줍니다.  이렇게 반려동물이 주는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내 손길이 없으며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이 있다는 책임감을 가져다 줍니다. 그런 책임감은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 더 보태줍니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끝까지 이 생명을 책임 질 각오가 되어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내 아이처럼 돌보고, 그리고 나 또한 그에게 의지하며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거죠.  많은 연구에서 밝혀낸 것인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10년은 더 장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그들과 교감을 통해 생기는 사랑의 묘약 덕분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래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축복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인간의 사랑으로부터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기대가 갈등을 만들고, 의심을 부르며 사랑으로부터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려동물과의 사랑은 그런 염려가 없습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주기만 하는 절대 사랑입니다. 그런 순수한 사랑에서 얻는 미소가 우리 수명을 길게하는 듯합니다.  인간과의 사랑에 대한 대안은 아니더라도, 반려동물과의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사랑을 만나지 못하신 분들, 그리고 사랑의 갈등으로 고뇌가 깊으신 분들, 반려동물과의 사랑으로 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반려자를 얻는 셈이 되는 거지요.   모두 사랑으로 장수를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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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주말에는 무엇을 하나요?

주말입니다. 무거운 삶의 행로를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주말이 주는 무게는 상당하지요. 무엇보다 일로부터의 자유라는 기대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 일주일마다 이렇게 삶의 위로를 주는 날이 있다는 것은 진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Thank God!  그런데 그런 주말에 주로 뭘하고 지내시나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에 ‘독서’가 항상 자리를 차지하곤 했는데, 요즘은 아마도 고정 멤버는 아닐 듯합니다. 그만큼 요즘은 독서가 우리 일상에서 좀 멀어진 듯합니다. 오늘은 독서에 대한 얘기를 해보지요.  어느 영화에 보니 시간이 돈으로 행세하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시간을 많이 갖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인데, 이거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죠. 그건 우리의 삶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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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묘한 갑질

한국정부가 4월 1일부터 시행되는 입국자 격리 면제 제외국가에서 베트남을 제외시킨다고 어제, 총영사관 뉴스가 나왔습니다.  무슨 장난을 하시나 싶네요. 장난이라도 참 손해보는 장난이네요. 욕은 욕대로 다 듣고 시행 하루 전날 시행 취소를 선언하니 스스로 자신들의 일처리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자백을 한 셈입니다. 좀 부끄러운 줄 아셔야겠네요.  그래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입국하시는 분들은 다행이다 싶습니다. 조석변이 정부 정책에 가슴이 콩닥거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모든 정책이 원숭이들의 불평을 피하기위해 취하는 조삼모사와는 달라야 합니다. 사전에 충분히 숙고되어 국민들의 정부 정책이라면 믿고 따를 만 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정책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게 되면 순발력이 좋다는 칭찬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을 부를 소지가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선동가들에게 이런 조석변이 정부 정책은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반정부 선동가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정책을 흔들며 짐짓 국민의 스트레스를 위로하는 듯 국민을 선동합니다. 결국 정부 스스로 정치적으로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일단 어제 발표로 사람에 대한 입국제한은 풀었지만, 베트남 항공사에 대한 운행 제한은 차별적으로 시행 중에 있다며 베트남 측에서 강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아시아나, 대한항공은 베트남 운행을 주 20회로 하고 있는데, 베트남항공은 한국의 보건기준을 채우지 못했다며 주 2회만 허락합니다. 그나마 승객도 60%만 채울 것을 허락했습니다. 베트남 항공은 당연히 이런 차별적 대우에 분노합니다. 베트남 항공은 자국정부에 한국 국적기에 대하여 상호적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즉 자신들이 받는 대우만큼 대한항공 아시아나도 주 2회만 허락하고 승객도 60%로 제한하라는 것이죠.  대한민국 정부 좀 이상합니다. 갑자기 왜 베트남에 갑질을 시연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방역 조치에 대한 성적은 베트남이 훨씬 양호한데 말입니다.  사실 요즘 한국은 좀 심각합니다. 하루에 환자가 여전히 30만을 넘고 심하면 하루에 3-500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바람에 장례를 위한 화장이 일주일씩 미뤄질 정도로 심각하게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 한국에서 도는 코로나는 중증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는 이미 다 거치고 난 과정인데 한국은 이제야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정말 알 길이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기에 한국에서 너무 잡아 두었다고 뒤늦게 보복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언제까지 지속될 지 대한민국 정부는 밝혀야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일반 감기정도의 수준이라는데, 왜 한국만 중증환자가 양산되는 지 좀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요즘 언론도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뤄야 하는데 관심이 없는 듯 보이지 않습니다. 주로 새로운 출범을 준비하는 새정부의 어려움만 다루는 듯하니 그들의 관심은 확실히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한국은 아직도 환난 속에 있습니다. 격리가 면제되었다고 함부로 들어오다가 베트남과는 달리 중증 코로나에 시달릴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베트남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코로나 치료약이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고 불평을 토로하는 입국자를 봤습니다. 베트남에서 비상약을 구해와야 하나요?  문 정부 막판이라 그런가요, 좀 더 치밀한 국정이 필요해 보이는 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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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스마트폰 활용으로 본 사회 적응력

2007년 스티브 잡스에 의해 아이폰 1세대가 나오며 시작된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작 15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만큼 이 기기가 가져다 준 변화는 어마무시합니다. 그 변화가 어느정도인 가를 알고 싶으면 스마트폰없이 이틀만 보내시면 됩니다. 아마도 세상이 당신 곁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들던가, 당신이 세상을 떠나 무인도에 정착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세상에서 고립된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역사가 짧은 것처럼 이외로 아직도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요즘 세상은 스마트폰이 필수가 되면서 그 활용도에 따라 사회적응력이 달라집니다.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을 살펴보며 이 시대를 살기위해 어느정도의 스마트폰 활용이 필요한지 살펴보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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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박항서 감독은 무엇을 기대하는가?

박항서 감독의 의중이 궁금하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베트남 축구 역사에 다시없는 찬란한 기록을 남겼다. 축구에 대한 베트남인의 열의는 알아줄 만하다. 그러나 그런 국민들의 열의에 비해 그들의 축구 실력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상위급에 들지 못했다. 그런 수준의 베트남 축구를 의심 없는 동남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 박항서 감독이다.  그 공로를 인정하여 베트남 정부에서는 그에게 노동 훈장까지 수여 했다. 그리고 수차에 걸친 계약 연장으로 연봉도 꽤 올려주었다. 그리고 박 감독은 여러 곳의 광고에도 얼굴을 내밀면서 재정적 수입도 충분히 가졌으리라 짐작한다.  그렇게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영웅이 된 이후 그의 위상은 달라졌다. 누구도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모든 행위는 더이상 개인적 사안으로 머물지 않고 그의 고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박항서 감독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다. 그 역시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푸념하는 모습이 언론에 잡힌다. 자국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베트남 국민의 기대에 지친 모습이다.  물론 그가 세련된 행동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카리스마 있는 감독은 아니더라도 온건한  덕장으로서 베트남 선수들을 아들처럼 돌보며 팀을 하나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얼굴에 그런 아빠의 미소가 사라진 듯하다. 정상에서 박수를 받으며 내려올 기회를 놓친 박 감독에게 험한 돌길이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진짜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월드컵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일본에서의 어웨이 게임에서 일본은 입국한 베트남 선수단에 코로나 간이검사를 실시하여 선수 3명과 박 감독 통역을 격리시켰다. 선수들과 통역으로만 대화가 가능한 감독의 역할을 일본은 잘라버린 셈이다. 이에 박 감독이 간이검사 말고 PCR검사를 해서 다시 확인해달라고 하자, 단칼에 거절하며 자꾸 항의하면 감독을 격리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그들은 격리가 코로나 문제가 아니라 항의에도 사용될 수 있는 전천후 무기임을 스스로 밝혔다. 이에 발끈한 박감독은 기자회견에서 5분 동안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다. 이에 일본의 누리꾼들은 뻔한 비난성 댓글을 무수히 달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베트남 사람들의 댓글은 없고, 베트남 언론에도 자국선수단의 부당한 대접에 대한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참 기이한 일이다. 베트남 언론에서 지금 다루고 있는 일본과의 축구에 관한 소식은 베트남의 축구 성장을 다룬 일본의 신간 만화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이다. 정상적 전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중요한 선수들과 감독의 말이 잘린채 임하는 게임이 어떠할지 그 처참함을 차마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게임에서 베트남 축구팀은 투혼을 발휘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1대 1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을 보탰고 스스로 아시아 최강이라며 치켜세우던 일본의 코를 보기 좋게 눌렀다. 일본은 아주 간단한 방법, 간이 코로나 검사로 주요 선수들과 감독의 통역까지 제거했지만, 승리를 훔치지는 못했다. 이제 박 감독이 냉정하게 깨달아야 할 일이 있다.  늘 남북 국민의 화합이 국정의 최대 과제였던 베트남 정부에게 축구라는 전 국민적 게임으로 남북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 박 감독에게 노동 훈장을 수여 할 때, 그때가 박 감독이 인생의 최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정상 이후에는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내려올 일만 남았을 뿐이다. 소프트 랜딩인가, 하드 랜딩인가의 차이인데, 유감스럽게도 잡소리가 큰 하드랜딩으로 그간의 위상이 잊혀지고 있다.  그렇게 추락하는 박 감독의 위상에 함께 구겨지는 고국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다행히 이번에 일본과 무승부를 기록하며 체면을 살렸다. 하늘이 그에게 박수 속에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 것인 줄 모르겠다. 부디 박 감독의 현명한 처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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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뭐 상관없어   

일전에 다룬 적이 있는 재미동포 이민진 교수의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소설 파친코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바로 이 글의 제목입니다.  이번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회사는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 대박이 난 넷플릭스가 아니고 그들과 경쟁 관계로 출발한 애플TV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반응이 어마무시합니다.  예고편이 나오자 마자 이 드라마에 대한 전문가들의 호평이 전세계 영화시장을 흔들어 놓습니다.  LA TIMES는 멜로 드라마의 장르가 파친코 이전과 이후로 나눌 것이라고 평할 만큼 이 드라마는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달려있습니다.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 강자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애플TV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넷플릭스에 도전하는데, 하필이면 그 무기가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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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K- 방역의 허상

요즘 한국과 베트남이 좀 냉랭해지는 듯합니다. 코로나 확진자 문제로 인한 한국정부의 베트남 홀대가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일이죠. 현재 코로나 19 세계 확진자 현황을 보면, 미국이 8천만명으로 단연 톱이고, 인도가 4천만명 외에 브라질,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이 2천만명 이상으로 상위그룹을 이루고 있고, 베트남은 고작 8백만여명으로 13위, 한국은 1천 2백만명으로 인구의 약 30%가 코로나에 걸려 세계 순위 10위를 자랑합니다. 아마도 인구수를 따진다면 5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문제는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왜 적극적으로 방역에 참여하는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설명할 생각을 안 합니다.    결국 한국의 K-방역은 사기 행각이었습니다. 베트남보다도 못한 방역이면서 돈은 돈 대로 쓰며 국민을 우롱한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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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인생의 선택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합니다. 점심을 뭘 먹을 것인가 하는 작은 것부터 대통령 선거의 선택이나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무거운 선택까지 늘 우리는 선택을 하며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갑니다.   삶은 어찌보면 선택의 연속입니다. 연속된 선택으로 우리의 운명이 만들어지죠.  학생들에게는 오늘 공부를 할 것인지 친구와 오락실을 갈 것인지의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상급학교를 어디로 진학할 것인지도 삶의 경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고, 군대를 어디로 갈 것인지도 한국의 남자들에게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인생이 통째로 바뀔 만한 선택입니다.  나아가 부인을 만나 선택하고 간택 받는 것 역시 자신의 인생을 바꿉니다.  매 순간 신은 그대에게 선택을 묻습니다. 그 선택 너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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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만만한 희생양

  한국의 확진자 수가 무려 40만명이 넘나드는데 그 와중에서도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거리두기 방역 등을 완화하고 동시에 4월 1일 부터 입국하는 외국인 중에 접종을 마친 사람에게는 격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치에 일부 국가에게는 예외를 주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베트남 3개국을 두었는데, 그 3개국에서 온 사람은 접종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베트남이죠. 한국보다 훨씬 양호한 방역을 기록하고 있는 베트남인데 말입니다. 베트남의 2배가 넘는 확진자를 만들고 있는 코로나 왕국 한국이 무슨 자격으로 베트남의 출입을 막습니까? 언젠가 베트남이 한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이 베트남에 복수하고 싶은 것인가요? 이번 조치로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베트남인이 아닙니다. 그들보다 교민들이 먼저 희생양이 됩니다. 앞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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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무가치한 전쟁

    행복한 이야기를 늘 썼으면 좋겠습니다. 늘 희망찬 얘기들이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뜻하는 바가 생각대로, 기대대로 이루어지고, 세상은 평화롭고, 인간관계에서는 서로를 시기하지 아니하고, 단지 배려하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인간의 본질상 다툼은 피할 수 없는 가 봅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인간사의 사건이 살인이었으니 어쩌면 인간은 태초부터 서로 다투고 죽이는 일이 운명처럼 심어진 것인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인간 다툼의 최정점이 전쟁이죠. 예전 전쟁은 목적이 있었고 결과도 있었습니다. 식량을 확보하거나 자신의 종족을 더욱 번성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요즘의 전쟁은 뭐가 목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눈에 잡히지도 않는 이념이나 권력 아니면 돈?  아무튼, 최근에 그렇게 목적이 불투명한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 피해는 아무 잘못도,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에게만 돌아갑니다. 왜? 전쟁의 대가를 무고한 국민들이 치러야 합니까? 세상은 너무 부조리합니다. 인권이 나아졌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여전히 일반 국민들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눈에는 소모품일 따름입니다. 나라도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이지요. 자신의 국민을 위한다고 남의 국민에게 폭탄을 퍼붓는 인간도 아니지만, 나라 지킨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권좌를 위해 국민에게 남아서 같이 싸우다 죽자는 측도 잘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숭고한 정신이긴 하지만, 모든 국민이 그래야 한다고 강요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제로 출국을 막고 총을 쥐여줄 일은 아닌 듯합니다. 자신들의 권세를 위한 싸움이라면 그렇게 고집하는 두 지도자가 단판을 붙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멋지지 않나요? 꿈을 꾸며 삽니다. 진짜 의문이 듭니다. 그들이 영토를 확장시키거나 훌륭하게 방어하거나 그리하여 그 결과로  목숨을 건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어떤 것인가요? 과연 국민들은 목숨을 건 응당의 대가를 기대할 수 있나요? 다 부질없는 수작입니다. 여전히 국민은 살기가 힘들고 정치인들은 배를 불리며 삽니다. 세상에 가장 악한 자들의 형상은 바로 국민들을 전쟁의 사지로 몰아낸 정치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한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우매한 민족입니다. 6.25로 민간인 기백만이 죽어 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치루었지만 왜 전쟁을 했는지조차 모릅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국민만 죽는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렇게 국민 3백만을 죽이고 나서 전쟁 전과 똑같이 38선을 기준으로 나라는 분단되었고, 이념은 여전히 충돌 중입니다. 정말 멍청한 전쟁을 치른 것을 깨닫고 계시긴 한가요? 3백만의 생명을 바친 전쟁으로 얻은 것은 황폐한 국토와 세계 최빈곤의 굶주림이 전부였습니다. 그 잘난 이념조차 한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무가치한 전쟁이 한국전쟁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가치한 전쟁의 대가를 아직도 치르고 삽니다. 누가 한국전쟁으로 얻는 교훈이 무엇인지 좀 알려주십시오.  3백만의 생명을 버릴 만큼 마땅한 댓가가 있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겪은 전쟁으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이제는 남들의 전쟁에서라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가치한 전쟁의 반복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과연 지금의 한민족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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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필 칼럼 – 봄은 왔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마도 자신의 생이 너무 힘들었다는 자기 연민에서 나온 감성이긴 할 테지만 큰 위로가 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이렇게 차오르면 문득 이제는 그만, 하는 감정이 때때로 밀려옵니다. 이제는 정말 아무 염려 없이 평화로운 마음을 음미하며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너무 큰 기대를 품은 듯합니다. 그래도 매번 잠이 들 때마다 의식 없는 깊은 잠에 빠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제 그만 안 일어나도 좋을만한  깊은 잠 말입니다.  매년 가을날 색 바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문뜩 곰돌이처럼 동면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한 3개월 푹 잠자고 일어나서 새싹이 움트는 새 세상을 만나기를 꿈꾸었습니다.   특히 이번 겨우내 그렇게 깊이 잠들고 싶었습니다.  백 년의 세월을 견디시는 모친의 수발을 들고 있는 아들은 그런 마음이 불손하게 여겨집니다. 모친도 스스로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지요. 늘 이승의 종말을 곁에 두고 지내시는 모친의 시간이 아파서 소리 내 외쳐봅니다.   신이여, 무엇을 더 바라나이까?    자리에 누운 이들에게는 잔인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뒷마당에 자리한 매화와 산수유는 벌써 그 수줍은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 뜨락에서 15년이 넘도록 자란 제법 큰 목련 나무에는 가지 가지마다 큼직한 봉우리들이 개화를 준비합니다. 봄꽃이 수줍게 보이는 이유는 잎도 없이 꽃이 먼저 피기 때문인가 봅니다. 시종이 나갈 채비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봄볕 맞이 나온 성급한 어린 공주와 같은 자태입니다.   찬 서리에 하얗게 덮여 겨울을 보낸 대지에는, 서리 녹은 생명수로 깨어난 푸름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봄이 옵니다.  겨우내 쌓은 어두운 시름을 따뜻한 봄볕으로 녹여 주소서.    베트남에 있으면 이런 맛을 모르지요. 봄이라며 말은 하지만 피부를 자극하는 봄바람은 없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봄 풍경을 그리는 게 독자들과 괜한 괴리감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고국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리한 베트남의 풍경을 가끔 씻어 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유의미한 일이 될 듯합니다.    이 봄에는 꿈을 꾸세요.  귀를 열고 대지의 숨 소리를 들어보세요.  눈을 감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향기를 느껴보세요.  발을 벗고 수줍게 감싸도는 어린 풀의 애무를 즐겨보세요.    봄에는 꿈이 피어납니다.  겨우내 품었던 푸르른 희망의 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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