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종식과 지정학적 위기 이후 러시아와 한국 등 주요국 관광객이 베트남 해변 도시로 거세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이들을 안내할 특수 외국어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가 턱없이 부족해 현지 여행업계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급기야 칸화성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합법적 노동 허가를 가진 외국인을 관광 통역 보조원으로 현장에 투입하자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나왔으나, 국내 일자리 침탈 및 주권 훼손 우려와 맞물려 거센 법적·실무적 논쟁이 촉발됐다.
10일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및 대형 여행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을 찾는 국제 관광객 수 수요는 폭발적으로 회복된 반면 러시아어, 한국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스페인어, 히브리어 등 이른바 ‘희귀 언어’ 가이드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심각한 공급 부족(Cung không đủ cầu)’ 현상이 상시화됐다. 베트남 여행사 벤탄 투어리스트(BenThanh Tourist)의 응우옌 타인 손 부이사는 “가이드는 단순한 통역사가 아니라 현지의 역사와 문화, 유산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문화 가교”라며 “언어 장벽으로 인해 수준 높은 안내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외국인들의 베트남 관광이 단지 수박 겉 핥기식에 그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비에트래블(Vietravel)의 응우옌 하 충 부총감독 역시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한국어 가이드 부족이 심화됐고, 러시아어의 경우 수년간의 시장 침체기 동안 기존 베테랑 인력들이 대거 다른 업종으로 이탈하면서 인력 공급망이 완전히 끊긴 상태”라고 진단했다.
가이드 부족으로 인한 타격은 고스란히 여행사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비에트루투어(Vietluxtour)의 쩐 틔 바오 뚜 마케팅 이사는 “성수기 시즌 칸화성, 푸꾸옥, 다낭 등 해양 관광 명소의 가이드 가뭄은 한계치에 달했다”며 “하노이나 호찌민에서 인력을 임시로 차출해 지방으로 보내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며, 서비스 품질 저하를 우려해 아예 외국인 단체 패키지 예약을 거절하거나 제한하는 ‘병목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관광객의 최대 기점인 칸화성 여행업계는 현지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며 노동 허가증을 소지한 러시아인을 단순 통역 및 고객 관리 보조원으로 현장 투입할 수 있도록 법적 규제를 유연하게 완화해 달라고 칸화성 인민위원회에 공식 건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인 인력 도입 제안은 현행법의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냔(Nhân) 법률사무소의 후인 꾸옥 냔 대표 변호사는 “베트남 관광법(2017년 제58조 3항)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관광 가이드로 활동하려면 반드시 가이드 자격증(Thẻ HDV)을 소지해야 하며, 이 자격증의 필수 교부 조건은 ‘베트남 국적자 및 베트남 상주자’로 제한되어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아무리 합법적 노동 허가를 가졌더라도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가이드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원천 불가능하다”고 스나이퍼 해석을 내놨다. 나아가 규제 없는 외국인 가이드 허용은 국내 가이드 시장의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고, 과거 시장을 교란했던 무자격 ‘야매 가이드’나 탈세로 얼룩진 ‘성역형 패키지(Tour khép kín)’의 부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라자앤탄(Rajah & Tann LCT Lawyers) 법률사무소의 차우 후이 광 대표 변호사 역시 만약 예외 조항을 도입하더라도 외국인의 역할은 철저히 ‘언어 보호 조력자’로 묶어야 하며,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 검증 시험을 통과한 자에 한해 제한적 면허를 주는 특별 시범 사업 형태로만 가동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속성 교육 시스템 구축’과 ‘국내 인력 양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호찌민 문화대학교 관광학과의 추 카인 린 박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어 등 취업 범용성이 높은 학과로만 인재가 쏠리면서 관광 시장용 러시아어 학과 등이 대학가에서 외면받은 결과”라고 지적하며 “언어 능력을 갖춘 해외 유학생이나 어학 전공자, 해외 체류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3~6개월간 집중적으로 관광 실무와 역사·문화 소양을 가공하는 ‘단기 속성 가이드 양성 과정’을 전면 개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글로스터셔 베트남 대학교(호찌민 경제금융대·UEF)의 후인 반 타인 교수는 기존 관광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러시아어 및 특수 외국어 위탁 교육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함으로써, 국내 노동자에게 고소득 직업 전환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베트남 관광산업의 구조적 인력난을 타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