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 이어지면서 서방 국가들이 무기 개발의 중심축을 ‘값비싼 첨단 무기’에서 ‘저렴하고 실용적인 대량 생산 체계’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완벽한 무기를 기다리기보다 당장 쓸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8일 로빈 레이더(Robin Radar) 등 국방 관련 기업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서방의 무기 제조사와 군 당국은 우크라이나 전장을 통해 무기의 ‘완벽성’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비축량 부족과 현장 투입 지연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로빈 레이더 미국 지사의 크리스티안 브로스트(Kristian Brost) 총지배인은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미완성된 해결책이 너무 늦게 도착하는 완벽한 해결책보다 낫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테이프와 고무줄을 동원해서라도 무기를 수리해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효과적이고 저렴한 것이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과 동맹국들은 수십억 원 호가하는 방공 미사일 대신, 우크라이나 식의 저렴한 요격 드론을 대량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첨단 기술의 80% 정도만 구현되더라도 신속하게 병사들에게 전달해 훈련시키는 것이 실전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나토(NATO)의 마르크 뤼터(Mark Rutte) 사무총장 역시 이러한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고 고집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며 “우크라이나는 10점 만점에 6, 7점짜리 장비도 기꺼이 실전에 배치하지만, 서방 군대는 9, 10점을 고집하다 속도를 놓친다”고 지적했다. 평화가 위협받는 현 상황에서는 ‘속도’가 완벽함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라트비아의 오리진 로보틱스(Origin Robotics)와 에스토니아의 밀렘 로보틱스(Milrem Robotics) 등 드론 및 로봇 기업 대표들도 “병사들은 인공지능(AI) 같은 화려한 기술보다 그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며 “기술이 복잡할수록 고장 날 확률만 높아질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흐름은 우크라이나의 급속한 국방 산업 발전 모델에서도 확인된다. 전장 근처의 소규모 공장들이 병사들의 피드백을 받아 몇 시간, 혹은 며칠 만에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은 수년이 걸리는 서방의 전통적인 구매 및 개발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유럽 각국 국방 장관들도 나토의 무기 조달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롤스 룬드 포울센(Troels Lund Poulsen) 덴마크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의 교훈은 저렴한 무기가 대량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첨단 무기만 고집하다가는 장기전에서 비축량이 바닥나고 이를 대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