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이란 전쟁의 영향으로 급등하면서, 차량의 연료탱크를 드릴로 뚫어 기름을 훔쳐가는 ‘천공 절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유구 잠금장치나 최신 차량의 도난 방지 설계를 피하기 위한 잔인한 수법에 차주들은 기름값보다 몇 배 비싼 수리비 폭탄을 맞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거주하는 타시 말라라(Tasi Malala, 31) 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주행 중 연료 게이지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져 주유소에 들렀더니, 차량 하단 연료탱크에서 휘발유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드릴로 탱크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빼간 흔적이었다. 말라라 씨는 기름 몇십 달러를 도둑맞고 수리비로만 약 3,000달러(약 410만 원)를 지불해야 했다.
이러한 범죄는 이란 전쟁 이후 미국 내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며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2월 개전 전만 해도 3달러 미만이었던 유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폭등 중이다. 특히 유가가 갤런당 6달러에 육박하는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정비소 관계자는 “과거에는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했던 연료탱크 파손 차량이 이제는 매주 입고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고 전했다.
◇ ‘빨대’ 대신 ‘드릴’… 왜 더 잔인해졌나?
과거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에는 주유구에 호스를 넣어 기름을 빨아들이는 방식이 유행했다. 하지만 최신 차량들은 주유구 입구가 좁고 구부러진 구조이거나 내부에 역류 방지 밸브가 있어 호스 삽입이 어렵다. 이에 절도범들은 휴대용 전동 드릴을 이용해 차량 밑바닥의 연료탱크를 직접 뚫어 단 몇 분 만에 연료를 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과거 귀금속을 노리고 차량 하단의 ‘매연 저감 장치(촉매 변환기)’를 잘라가던 범죄와 유사한 양상을 띤다. 전문가들은 “기름 도둑들이 차주에게 수천 달러의 재산 피해를 입히면서도 자신들은 고작 몇만 원어치의 연료를 챙기고 있다”며 범죄의 비효율성과 잔인함을 지적했다.
◇ 자선단체까지 타격… 민생 경제의 현주소
절도범들은 공공기관이나 자선단체의 차량도 가리지 않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의 자선단체 ‘세인트 빈센트 드 폴(St. Vincent de Paul)’은 최근 식량 배급용 트럭의 연료탱크가 뚫리는 피해를 입었다. 단체 책임자 마이클 미한은 “트럭이 멈추면서 식량 배급에 차질이 생겼다”며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증거 같아 안타깝지만, 차라리 기름만 가져갔다면 수리비라도 아꼈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미국 보험업계(NAMIC)는 관련 보상 청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브렛 오덤 부회장은 “전쟁 여파로 유가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차주들에게 조명이 밝은 곳에 주차하거나 차량 하단 감시가 가능한 블랙박스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