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세인트 올라프 대학과 시러큐스 대학 공동 연구팀이 전기나 배터리, 마이크로칩 없이 오직 물리적 움직임과 저장된 기계적 에너지만으로 기초적인 계산을 수행하는 기계식 컴퓨터를 개발했다. 이번 달 초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것과 유사하게 안정적인 지점들 사이를 오가는 물리적 변화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한다.
세인트 올라프 대학의 조이 폴슨(Joey Paulsen) 물리학 부교수는 “우리는 보통 메모리를 컴퓨터 하드드라이브나 뇌 속의 무언가로 생각하지만, 고무가 늘어났던 정도를 기억하듯 일상적인 재료들도 과거의 상태를 기억하는 성질이 있다”며 “연구팀은 이러한 재료들을 활용해 움직임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정보를 처리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고 연구 배경을 밝혔다.
연구팀은 강철 막대와 용수철을 이용해 세 가지 기계적 시스템을 설계했다. 힘이 가해지면 막대가 회전하고 용수철이 늘어나면서 구조가 새로운 위치로 이동하며, 다시 힘을 가하기 전까지 그 상태를 유지한다. 이 시스템은 물리적 당김을 기록하는 계수기, 홀수와 짝수 입력을 구별하는 논리 게이트, 그리고 가해진 힘의 세기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로 각각 작동한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전기 신호 없이 오직 구조적 움직임만으로 컴퓨팅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재 단계에서 이 기계는 숫자 세기, 홀짝 구분, 그리고 가해진 힘이 중간 정도인지 강한 정도였는지를 기억하는 기초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장치가 현대의 마이크로칩 컴퓨터를 대체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스스로 환경을 감지하고 판단하여 반응하는 지능형 소재 설계의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고온이나 부식성 환경 등 전자 기기를 사용하기 힘든 극한 조건에서 기초적인 정보 처리가 필요한 경우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을 별도의 장치가 아닌 재료 내부에 직접 통합함으로써, 인공 보조 기구나 촉각 환경처럼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스마트 구조물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팀은 향후 시스템의 확장성과 성능 한계를 파악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