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동남아시아 관광 산업의 회복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항공유(Jet A1) 가격이 지난 24일 배럴당 234.3달러까지 치솟으면서 항공권 가격 인상과 물류비 상승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파티 비롤(Fatih Birol)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번 위기가 1970년대 오일쇼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를 합친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며 세계 경제가 거대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4월 1일부터 아시아 주요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를 일제히 인상한다. 홍콩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fic)은 유류할증료를 34% 올리기로 했으며 싱가포르항공(Singapore Airlines)과 스쿠트항공(Scoot)도 운임 조정을 예고했다. 필리핀 세부퍼시픽(Cebu Pacific)은 5월 여정까지 20~26%, 타이항공(Thai Airways)은 10~15%의 요금 인상을 계획 중이다. 베트남항공(Vietnam Airlines)은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 선을 유지할 경우 비행기를 띄울수록 손해라며 운영비가 두 배로 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베트남 항공청은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국내선 유류할증료 적용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하노이-호찌민(Hà Nội – TP HCM) 노선은 편도 기준 400만 동, 하노이-푸꾸옥(Hà Nội – Phú Quốc) 노선은 468만 동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물가 상승 압박은 항공뿐 아니라 관광 서비스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태국 수완나품(Suvarnabhumi) 국제공항에서는 연료비 부담과 공급 부족 우려로 대형 SUV 택시 운영 대수가 5,000대에서 2,500대로 반토막 났다. 캄보디아(Campuchia) 역시 휘발유 35%, 디젤 60% 이상 가격이 급등하면서 숙박, 식비, 가이드 투어 비용이 줄줄이 인상됐다. 툭툭(Tuk-tuk)과 전세 버스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로 인해 추가 유류비를 징수하거나 당일 투어 가격을 재산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용 상승은 관광객들의 지출 감소로 이어진다. 캄보디아 관광협회(PATA) 시난 투언(Sinan Thourn) 회장은 비용 부담 때문에 관광객들이 체류 기간을 줄이거나 유료 관람 활동을 생략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각국은 관광객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국 항공협회(AAT)는 항공료 안정을 위해 항공유 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또한 장거리 여행 대신 근거리 여행과 국내 관광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컴포트델그로(ComfortDelGro)와 그랩(Grab)은 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운임을 인상했으며 일부 여행사는 예비비를 투입해 상품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Malaysia)의 경우 인접국인 싱가포르(전체 관광객의 50%)와 인도네시아(Indonesia), 태국 등 역내 관광객 비중이 높아 장거리 노선 위축에 따른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 컨설팅 업체 엔다우 애널리틱스(Endau Analytics)의 슈코르 유수프(Shukor Yusof) 대표는 호르무즈(Hormuz) 해협 폐쇄가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뿐 아니라 식료품 가격까지 마비되어 관광과 같은 비필수 소비가 완전히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