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원 치킨라이스부터 3스타 파인다이닝까지, 성공 레시피를 해부하다
더 이상 꿈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1월, 뉴욕 트라이베카의 ‘Jungsik(정식)’이 미국 내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획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임정식 셰프가 13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한편 서울에서는 공유주방에서 시작해 1년 만에 미슐랭 빅구르망에 선정된 ‘원디그리노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미슐랭은 더 이상 일부 고급 식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2500원 치킨라이스부터 베트남 호찌민의 로컬 포집, 도쿄의 9석짜리 라멘집까지, 미슐랭 가이드는 전 세계 다양한 형태의 맛집들을 발굴하고 있다.
1900년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에서 무료로 배포했던 여행 안내 책자에서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는 현재 40여 개국에서 발간되며 전 세계 외식업계의 최고 권위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과연 미슐랭 선정의 비밀은 무엇일까?
미슐랭 평가의 실체: 익명의 평가원들이 보는 5가지 기준
미슐랭 평가원들이 레스토랑을 평가할 때 고려하는 것은 인테리어나 서비스의 화려함이 아니다.
실제 평가 기준은 다음 5가지로 명확하며, 이는 전 세계 공통으로 적용된다.
1. 사용한 재료의 퀄리티 (Quality of Ingredients)
가온의 김병진 셰프는 “팀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항상 강조한다”며 “같은 재료라도 그중에서 좋은 재료를 선별하는 눈을 갖는 것이 요리사의 창의성”이라고 말했다.
신라호텔 라연의 김성일 셰프 역시 “좋은 계절에 좋은 식자재를 사서 계절에 맞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으로 꼽았다. 특히 라연은 3개월마다 메뉴를 변경하며 계절 식재료의 최적화를 추구한다.
실제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식당들의 공통점은 식재료 소싱에 대한 철저한 관리다. 뉴욕 정식의 경우 미국에서는 우대갈비를, 서울 정식당에서는 한우 안심을 메인으로 하는 것처럼 각 지역 최고 품질의 식재료를 엄선한다.
2. 풍미와 요리 실력의 숙련 정도 (Cooking Technique & Flavor)
싱가포르 호커센터의 챈 혼 멩 셰프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직접 고기를 약불에 뭉근히 조리한다. 10가지 향신료를 넣은 특제 소스의 맵고 신 맛의 밸런스가 그의 치킨라이스가 미슐랭 1스타를 받는 비결이다.
원디그리노스의 경우 80도 저온에서 한 시간 정도 닭을 삶아 닭가슴살의 부드러움을 극대화하는 독특한 조리법을 구사한다. 이는 100도에서 팔팔 끓이는 한국의 전통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도쿄의 라멘집 ‘쓰다’는 로즈마리 향을 가미한 돼지고기나 포르치니 버섯을 얹은 간장 소스 라멘으로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전통 라멘에 이탈리아 요리 기법을 접목한 융합 조리법이 주효했다.
3. 요리에 드러난 셰프의 철학 (Chef’s Personality in Cuisine)
임정식 셰프는 “‘별로인 것’, ‘적당히 괜찮은 것’들을 차근차근 없애왔다”며 “우리 식당에는 ‘최고’만 남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일관된 철학이 13년 만의 3스타 획득으로 이어졌다.
가온의 김병진 셰프는 메뉴 콘셉트를 ‘왕의 하루’로 설정해 조선 왕조의 궁중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풀어낸 것”이 가온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이다.
원디그리노스는 ‘싱가포르의 시장음식’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합리적 가격을 고수하며 대중화를 추구한다. 이승현 대표는 “시우메이가 마라탕이나 쌀국수처럼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가성비 (Value for Money)
미슐랭은 비싼 식당만 선정하지 않는다. 특히 빅구르망 카테고리는 합리적 가격의 맛집을 위한 것이다. 베트남 호찌민의 Ky Dong 치킨누들은 55,000~100,000동(약 3,000~5,000원)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빅구르망에 선정됐다.
싱가포르의 챈 혼 멩 치킨라이스는 3 싱가포르 달러(약 2,500원)로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슐랭 스타 음식이다. 같은 호커센터의 유사한 미슐랭 식당보다도 1.5배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파인다이닝의 경우에도 가격 대비 제공되는 경험의 질이 중요하다. 뉴욕 정식의 경우 200달러대 코스로 다른 미슐랭 3스타 대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한다.
5. 단골 고객의 방문도 (Consistency)
베트남 Ba Gien 찹쌀밥 레스토랑 대표는 “미슐랭 리스트에 오르기 전에도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며 “단골손님의 지원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디그리노스는 공유주방 시절 60% 이상의 재주문률을 달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진출을 결정했다. 호치민의 Ky Dong은 반세기 가까이 된 식당으로 수십 년간 사랑받는 단골층을 보유하고 있다.
미슐랭 평가원들은 여러 번 방문해 일관성을 확인하며, 특히 바쁜 시간대와 한산한 시간대 모두에서 동일한 품질이 제공되는지 면밀히 관찰한다.
미슐랭 평가 과정의 비밀: 익명 평가원들의 작업 방식
미슐랭 평가원들의 정체와, 누구인지는 파악이 안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미슐랭 측이 모든 평가를 철저한 비밀주의 차원에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 사례와 은퇴한 평가원들의 증언에서 이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미슐랭 평가원들은 모두 요리 관련 전문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1단계: 사전 조사 및 정보 수집 평가 대상 레스토랑에 대한 기본 정보, 메뉴, 가격대, 셰프 이력 등을 사전 조사한다. 하지만 편견을 피하기 위해 과도한 정보 수집은 피한다.
2단계: 익명 방문 및 식사 평가원들은 절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일반 고객처럼 방문한다. 최소 2회 이상 방문하며, 가능하면 서로 다른 요일과 시간대에 방문해 일관성을 확인한다.
3단계: 세부 평가 및 기록 5가지 기준에 따라 세부적인 평가를 진행하고, 음식의 맛, 프레젠테이션, 서비스, 분위기 등을 꼼꼼히 기록한다. 특히 각 요리의 조리법과 독창성을 면밀히 분석한다.
4단계: 팀 검토 및 최종 결정 개별 평가원의 평가를 팀 차원에서 검토하고, 필요시 추가 방문을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별의 개수는 팀 전체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
성공 사례 심층 분석: 규모와 장르를 초월한 공통 분모
케이스 1: 뉴욕 정식당 – 13년 정진의 파인다이닝 대서사
임정식 셰프의 성공 비결은 ‘지속적인 개선’에 있다. “뭘 갑자기 잘해서 미슐랭 3스타가 된 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매일매일 최고가 아닌 것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 핵심이었다. 초기 고난과 극복 과정 2011년 문을 연 뉴욕 정식당은 초반에 매우 어려웠다. “하루에 한 팀만 받았던 적도 있다”는 임 셰프의 회상처럼, 접으려고 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2년 미슐랭 1스타를 받았지만 “별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고 한다. 팬데믹 극복 전략 코로나19로 뉴욕이 봉쇄되면서 6개월간 문을 닫아야 했던 위기 상황에서도 1층 발코니 구역을 활용한 야외 다이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외식을 하고 싶어하던 손님들이 이때 정식을 많이 찾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지화 전략의 정교함 미국에서는 우대갈비가, 한국에서는 한우 안심이 메인 메뉴로 등장하는 것처럼 각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를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는 단순한 현지화를 넘어 각 지역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의 모범 사례다.
조직 관리와 인재 육성 서울과 뉴욕 직원만 100명인 조직을 운영하면서 임 셰프는 “인성이 훌륭하고 성실한,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자신은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에 집중한다.
케이스 2: 원디그리노스 – 1년 만의 빅구르망 신화
식당 경험이 전무했던 이승현 대표의 성공 요인은 ‘체계적인 준비’와 ‘단계적 접근’이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 남편을 싱가포르로 보내 3개월간 현지 조리법을 익히게 하는 동안, 이 대표는 식재료 조달부터 회계 관리까지 모든 것을 학습했다. 마장동 시장에서 “오겹살이 아니라 미박이라고 말하라”는 조언을 받은 일화는 그들의 치밀한 준비 과정을 보여준다.
리스크 최소화 전략 공유주방에서 시작해 초기 투자비를 1천만원 미만으로 억제했다. 보증금 500만원, 화덕 및 비품 300만원, 월세 150만원이라는 최소 비용으로 사업성을 검증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60% 이상의 재주문률을 확보한 후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것은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이었다. “싱가포르 음식이라는 호기심이 아니라 일상적인 식사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상권 분석과 입지 선택 6개월마다 망하던 강남 논현동 매장을 인수한 것은 모험이었지만, 현재 월 8천만~1억원대의 안정적 매출을 유지하며 주변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유흥가였던 주변이 일반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서는 상권으로 변모하는 데 역할했다.
사업 확장과 다각화 성수동 2호점, 신세계 스타필드 하남점 등으로 확장하면서 공간개발 사업까지 진출했다. “외식업은 IT사업이 아니므로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케이스 3: 싱가포르 호커센터 – 2500원의 기적이 만든 글로벌 성공
챈 혼 멩의 치킨라이스가 보여주는 것은 ‘기본에 충실함’의 위력이다.
운영 시스템의 완성도 하루 80마리 닭, 600인분 판매라는 안정적인 운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요리, 주문 관리, 포장을 각각 다른 스탭이 담당하는 역할 분담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맛의 표준화와 일관성 치킨과 밥, 10가지 향신료 소스라는 기본 구성에서 완벽한 맛의 밸런스를 구현했다. 매일 아침 여러 시간씩 약불에 뭉근히 조리하는 일관된 방식을 고수한다.
글로벌 확장 전략 싱가포르 2개 지점을 시작으로 타이완,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필리핀, 카자흐스탄까지 6개국에 프랜차이즈를 확장했다. 로컬 푸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모범 사례다.
가격 정책의 철학 3 싱가포르 달러(약 2,500원)라는 가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유사한 미슐랭 식당보다 1.5배 저렴한 가격 정책을 고수한다. “저렴하면서도 음식의 맛과 질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케이스 4: 베트남 로컬 맛집들 – 전통과 현대의 조화
호찌민의 미슐랭 빅구르망 선정 업체들은 또 다른 성공 모델을 제시한다.
호찌민 Ky Dong 치킨누들의 지속가능성 반세기 가까이 된 식당으로 “수십 년간 꾸준히 사랑해주시는 단골손님들”을 보유하고 있다. 미슐랭 선정 후에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며, 55,000~100,000동의 합리적 가격을 유지한다.
베트남 Ba Ghien 찹쌀밥의 차별화 베트남 유일의 찹쌀밥 미슐랭 레스토랑으로, 미슐랭 선정 이전부터 이미 인기가 높았다. “현지 감독당국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방카슈랑스 규제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처럼 업계 발전에도 기여한다.
미슐랭 효과: 선정 이후 달라지는 것들
즉각적인 고객 증가와 매출 향상
원디그리노스 역시 미슐랭 선정 후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앞다투어 입점 제의를 받고 있다. “가맹문의가 많아 프랜차이즈 사업 진출도 고려 중”이라는 이승현 대표의 말처럼 사업 확장 기회가 급격히 늘어났다.
도쿄의 라멘집 ‘쓰다’는 미슐랭 1스타 선정 후 2시간 대기가 일상이 됐고, 오후 4시경에 재료가 떨어져 문을 닫을 정도로 인기가 폭발했다.
베트남 호찌민의 Ky Dong 치킨누들 식당 대표는 “미슐랭 덕분에 식당 이름이 ‘알려졌고’, 더 많은 고객이 찾아와 응원해주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슐랭 선정 후 평일에도 대기 줄이 생겼고, 주말에는 2-3시간 대기가 일상화됐다.
브랜드 가치 상승과 프리미엄 확보
미슐랭 선정은 단순한 매출 증가를 넘어 브랜드 가치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 임정식 셰프는 “K푸드 열풍과 함께 ‘코리아’만 붙으면 일단 화제성을 잡는 분위기”라며 “한식이 주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정식당의 경우 미슐랭 2스타 유지와 뉴욕 정식의 3스타 획득으로 예약이 몇 달 전부터 마감되는 상황이다. 고객들은 단순히 식사가 아닌 ‘경험’을 구매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가온과 라연 역시 미슐랭 3스타 획득 후 한식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면서 한국 관광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인재 확보와 조직 안정성 향상
미슐랭 스타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자석 역할을 한다. 젊은 셰프들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어하며, 이는 조직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원디그리노스의 경우 미슐랭 선정 후 “500명 이상의 직원과 3만7000명 이상의 헌신적인 컨설턴트를 보유”하게 됐다고 황준환 법인장이 밝혔듯, 인력 확보가 훨씬 수월해졌다.
글로벌 진출 기회 확대
미슐랭 스타는 해외 진출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원디그리노스는 “현지 식당보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만 등 동남아 역진출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호커 챈의 치킨라이스는 미슐랭 스타를 바탕으로 6개국에 프랜차이즈를 확장했다. 2500원짜리 로컬 푸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미슐랭은 목표가 아닌 과정이다
미슐랭 스타는 완성이 아닌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다.
싱가포르의 2500원 치킨라이스부터 수십만원 코스 요리까지, 미슐랭이 인정하는 것은 가격이나 화려함이 아닌 ‘진정성’이다. 좋은 재료에 대한 책임감, 기본에 충실한 조리 기술, 일관된 철학, 합리적인 가성비, 그리고 고객들의 지속적인 사랑.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미슐랭이라는 꿈은 현실이 된다.
아시아 외식업계에 미슐랭 도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별을 따는 것이 아니라 그 별에 걸맞은 음식과 경험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다.
미슐랭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ESG 경영, 디지털 기술, 웰니스 푸드 등의 새로운 트렌드가 평가 기준에 반영될 것이고, 더 많은 지역과 장르의 음식들이 주목받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진정성 있는 요리’에 대한 미슐랭의 철학이다.
미래의 미슐랭 스타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나 값비싼 재료가 아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더 나은 음식을 만들려는 장인정신, 고객을 위한 진심,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이다. 이것이 바로 2500원 치킨라이스부터 3스타 파인다이닝까지, 모든 미슐랭 맛집들이 공유하는 진짜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