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7월 4일, 소련 공군 제871전투기연대 소속 조종사 니콜라이 스쿠리딘(Nikolai Skuridin) 대령은 폴란드의 Bagicz 공군기지에서 정례 훈련 비행을 위해 MiG-23M 전투기에 탑승했다.
이륙 과정에서 스쿠리딘은 굉음을 들었고, 애프터버너가 작동을 멈추면서 엔진 회전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추력 손실이 발생했으며, 모든 징후가 엔진 고장을 가리켰다. 스쿠리딘은 즉시 지휘부에 탈출 허가를 요청했고 승인을 받아 항공기를 이탈했다.
그런데 조종사가 이탈한 이후 MiG-23M 전투기는 추락하지 않았다. 엔진이 저출력으로나마 재가동되면서 무인 상태의 전투기는 서쪽을 향해 계속 비행했다. 이른바 ‘유령 전투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NATO 방공망을 통과한 무인 전투기
조종사 없이 자동 비행 상태가 된 MiG-23은 동독, 서독, 네덜란드 영공을 차례로 통과했다. NATO 회원국들은 해당 항공기를 레이더로 포착했으나,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격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벨기에 공군은 F-16 전투기 두 대를 긴급 출격시켜 해당 항공기를 추적했다. 조종석을 살펴보니 조종사 좌석이 비어 있었고, 산소 호스가 달린 헬멧만 계기판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NATO 파일럿들은 격추 명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에 추락…민간인 희생
MiG-23은 결국 연료가 소진되면서 벨기에 Kortrijk 인근 Bellegem 마을에 추락했다. 불행히도 추락 당시 주택가를 지나던 18세 청년 Werner Maes가 사망했다. 전투기가 민간인 거주 지역에 충돌한 것이다.
NATO 방공 체계의 허점 노출
이 사건은 냉전 말기 NATO 방공망의 심각한 취약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무인 상태의 소련 군용기 한 대가 여러 NATO 회원국의 영공을 아무런 제지 없이 900km 이상 비행했다는 사실은 서방 동맹의 방공 대응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조사 결과, MiG-23의 엔진 고장은 연료 조절 장치 결함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령 전투기’ 사건은 냉전 역사상 가장 기묘한 항공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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