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방의 유례없는 경제 제재를 받아온 러시아 경제가 올해 1분기 역성장을 기록하며 변곡점을 맞았다. 유럽연합(EU)은 제재가 마침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하는 반면, 러시아는 국방 지출 확대를 통한 ‘전시 경제’ 체제로 버티며 주요 유럽 국가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러시아 중앙은행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5% 감소했다. 이는 당초 예상치였던 0.3% 감소보다 하락 폭이 큰 것으로, 2023년 초 이후 3년 만에 나타난 첫 분기별 감소세다. 같은 기간 국가 재정 적자는 600억 달러(약 81조 6천억 원)로 치솟으며 연간 목표치를 이미 넘어섰다.
현재 러시아 경제 지표는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인플레이션율은 6%에 육박하고 기준금리는 14.5%라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주식 시장은 전 세계적인 상승장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부터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까지 겹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조차 최근 경제 상황이 기대만큼 낙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며 고위 관료들에게 긴급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제재가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고, 프랑스와 스웨덴 외무·재무장관들도 “러시아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며 제재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특히 EU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망 교란 상황에서도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규제와 러시아 석유 시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크렘린의 자금줄을 죄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붕괴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는 국방비를 2021년 GDP의 3.6%(650억 달러)에서 2025년 7.5%(1,900억 달러)로 대폭 늘리며 군수 산업 중심의 생산과 소비 사이클을 강제로 유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 취임 이후 유지해온 낮은 부채 비율 덕분에 재정적 여력도 아직 남아있다는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을 1.1%로 내다봤다. 이는 비록 낮은 수치지만, EU의 3대 강국인 독일(0.8%), 프랑(0.9%), 이탈리아(0.5%)의 예상 성장률보다 높다. 전문가들은 제재가 단계적으로 부과되면서 러시아가 적응할 시간을 벌었다고 지적한다. 채텀하우스의 티모시 애쉬 전문가는 “제재를 받는 경제는 뛰어난 성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쉽게 붕괴하지도 않는다”며 장기적인 대치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