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에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고위직 및 관리자급 인사를 중심으로 사회적 역할과 직함 상실로 인한 ‘정체성 위기’를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26일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의 60세 이상 인구는 현재 1,4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오는 2030년에는 약 1,8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수십만 명이 현역에서 물러나는 가운데, 평생을 직장에 바쳐온 고위 직책 출신 은퇴자들이 극심한 무력감과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꾸이년(Quy Nhơn)의 은행 지점장 출신인 투 흐엉(Thu Hương·65) 씨는 퇴직 직후 2개월간의 해방감을 느꼈으나 이내 급격한 무력감에 빠졌다. 기존 봉급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연금과 사라진 사회적 권위 속에서 자신을 유용하지 않은 존재로 느끼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RMIT 베트남 대학교 심리학과의 카트리나 필립스(Katrina Phillips) 강사는 한 조직에서 수십 년간 근무하며 직함을 개인의 가치와 동일시해 온 베트남 사회 문화 특성상 은퇴 후 정체성 위기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계적 이행과 새로운 소통 창구를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노이 소재 연구소장을 지낸 꺼우 치 로이(Cứ Chi Lợi) 부교수는 퇴직 전 수석 전문가로 근무하며 업무량을 단계적으로 줄였으며, 은퇴 후 외곽으로 이주해 300제곱미터 규모의 정원을 가꾸고 기타를 배우며 적응 기간을 가졌다. 전 베트남통신사(VNA) 해외 지국장 출신인 팜 푸 푹(Phạm Phú Phúc·70세 이상) 씨 역시 흥옌(Hưng Yên)성 고향 마을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도 언론 칼럼 기고와 기고 활동을 통해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퇴가 커리어의 종말이 아닌 자아를 재발견하는 삶의 다음 단계라고 강조한다. PACE 경영연구소의 지안 뚜 찌에우(Giản Tư Trung) 이사장은 60대에 겪는 정체성 위기가 18세 청소년기의 방황과 유사하다며, 은퇴 후 삶의 방향성과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