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진 태국 정부가 중동발 에너지 위기 장기화로 촉진된 사상 초유의 고물가 압박을 방어하기 위해 총 54억 달러(약 176조 바트) 규모의 초대형 민생 구제 종합 대책을 전격 확정했다. 소득 대비 가파르게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와 공공요금 부담을 낮춰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긴급 소방수 조치다.
23일 태국 재무부와 국영 통신 및 싱크탱크 등에 따르면 태국 내각(국무회의)은 최근 긴급 예산 심의를 열고 고물가 완화와 취약계층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타이 헬프 타이 플러스(Thai Help Thai Plus)’ 프로그램 및 추가 연계 안건을 최종 가승인했다.
에크니티 니티탄프라파스(Ekniti Nitithanprapas)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은 정책 성명을 통해 “이번에 가동되는 대규모 긴급 유동성 패키지는 글로벌 에너지 마비 사태로 인해 가중된 일반 서민 가계와 영세 중소기업(SMEs)의 물가 체감 압박을 직접 낮추기 위한 것”이라며 “시장의 소비 모멘텀과 공공 구매력이 통제 불능 수준으로 급격히 수축(contracting)하는 금융 파국을 예방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예산 집행 배경을 밝혔다.
태국 재정 당국이 이처럼 막대한 재정을 적자 국채 발행 리스크를 감수하며 긴급 수혈하고 나선 것은 거시경제 지표에 가파른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니티탄프라파스 부총리는 태국 경제가 코로나 팬데믹과 중동 발 공급망 마비에 따른 1, 2차 오일 쇼크 단계에 이어, 이제는 전방위적인 ‘초고물가 대공황(crisis of high prices)’이라는 제3의 위기 국면에 전격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4월 기준 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은 2.9%까지 치솟았으며, 중동 전황이 악화될 경우 단기 내에 마지노선인 5%대까지 수직 상승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분석이다.
긴급 자금 수송을 위한 행정 인프라 정비도 완료됐다. 태국 정부의 디지털 금융 파트너인 국영 쿵타이은행(KTB)은 총 3,000만 명에 달하는 지원 대상자가 병목 현상 없이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 ‘파오탕(Pao Tang)’의 서버 증설과 시스템 최적화 작업을 끝마쳤다. 이번 3,000만 명 규모의 보편적 민생 보조금 신청 접수는 오는 5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간 선착순 및 요일제로 전격 전개된다.
라바론 상스니트(Lavaron Sangsnit) 재무부 차관은 “타이 헬프 타이 플러스의 실질적인 수혜 범위를 넓힌 결과 간접 지원을 포함해 태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4,300만 명 이상이 이번 세제 및 보조금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수치를 제시했다.
우선 일차적인 긴급 구호가 필요한 핵심 취약계층인 정부 복지카드(State Welfare Card) 소지자 1,320만 명에게는 오는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총 1,000바트의 서민 소비 보조금이 기존 복지 계좌를 통해 추가 탑재된다. 이 자금은 규정에 따라 미미가 가구의 필수 소모품과 식료품, 생필품을 구매하는 용도로만 한도 사용이 제한된다.
동시에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디지털 가치 사슬 개편도 병행된다. 태국 정부는 재정 보조금의 낙수 효과가 대형 마트가 아닌 영세 노점상과 소형 상점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들 점포에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된 결제 및 재고 관리 시스템 보급을 무상 지원하기로 했다. 영세 상인들이 디지털 장부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매입 원가와 운영 비용을 과학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식 소득 증빙이 없어 고리 사채에 의존해야 했던 이들이 축적된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중 금융권의 제도권 저리 신용 대출(formal credit)을 받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징검다리가 될 것으로 재무부는 확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