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군사적 충돌과 홍해 내 후티 반군의 공세로 중동 항로가 마비되면서,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선박들을 노린 소말리아 해적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중동 분쟁에 쏠린 틈을 탄 해적들의 공세에 글로벌 물류 대란 우려가 한층 깊어지고 있다.
14일 해운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두 달 사이 소말리아와 예멘 인근 해역에서 화물선 ‘어너 25호’, ‘유레카호’, ‘스워드호’ 등 3척의 선박이 잇따라 해적에게 피랍됐다.
특히 지난달 26일 소말리아 가라카드 항구 인근에서 피랍된 스워드호의 사례는 전형적인 소말리아 해적의 수법을 보여준다. 이집트 수에즈항을 떠나 케냐 몸바사로 향하던 이 배에는 시리아인과 인도인 선원 17명이 타고 있었으나, 무장 해적 20여 명이 배를 점거하고 선주와 직접 몸값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말리아 해적은 2011년 한 해에만 212건의 공격을 퍼부으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이후 유럽연합(EU)의 ‘아탈란타 작전’ 등 국제 해군의 강력한 소탕 작전으로 최근 수년간 세력이 급격히 위축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란 분쟁이 해적들에게 ‘부활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닉 마틴 DW 분석가는 “국제 해군력이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의 안보에 집중되면서 소말리아 연안 3,300km에 대한 감시망에 구멍이 뚫렸다”며 “소말리아 내 조직범죄 집단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배를 나포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해적들의 수법도 더욱 치밀해졌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해적들은 ‘다우(Dhow)’라 불리는 대형 나무배를 ‘모선’으로 개조해 먼바다에 장기간 머물며 소형 고속정들에게 보급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안에서 3,600km 떨어진 인도양 먼바다까지 공격 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GPS와 정교한 도강 장비까지 갖추는 등 기업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아프리카 정책 변화도 해적 발호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이 소말리아 연안 공동체의 빈곤 퇴치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고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 소탕 등 직접적인 대테러 작전에만 집중하면서, 해적 가담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정보 네트워크가 약화했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홍해를 피해 아프리카로 우회할 경우 항해 거리만 수천 km가 늘어나며, 척당 약 100만 달러(약 13억 원)의 연료비가 추가로 발생한다. 여기에 해적 리스크로 인한 보험료 인상과 무장 보안요원 고용 비용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011년 해적 전성기 당시 글로벌 경제가 입은 피해액은 연간 70억 달러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소말리아 해적은 무장 보안요원이 탑승한 선박을 상대로 성공적인 납치를 한 사례가 거의 없다”며 “당분간 선박들이 소말리아 연안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항해하고 자체 방어 인력을 강화하는 등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