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의료 공급망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로 인해 영국은 당장 몇 주 안에 일반 상비약부터 특수 항암제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의약품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1일 현지 매체와 의료계에 따르면, 가디언(The Guardian) 등 주요 외신은 중동 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단이 영국의 보건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의약품의 85%를 공급하는 제조사 단체 ‘메디슨 UK’의 마크 새뮤얼스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의료 유통업체와 병원들은 통상 6~8주 분량의 재고만을 유지하고 있어, 교전이 계속될 경우 당장 이달 안에 의약품이 바닥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위기의 핵심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두바이, 도하, 아부다비 등 중동 거점 공항들의 운영 차질에 있다. 무디스(Moody’s)의 공급망 리스크 관리 담당자인 데이비드 윅스는 이를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라고 규정했다. 전 세계 원료의약품(API)과 복제약의 최대 생산기지인 인도와 유럽을 잇는 해상 및 항공 경로가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물류 대란은 비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상 운송로가 희망봉으로 우회하면서 항해 기간은 14일 연장됐고, 선박당 연료비는 약 100만 달러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신선도와 속도가 생명인 항암제, 감염병 치료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등 고부가가치 생물학적 제제들은 항공편에 의존해야 하는데, 중동을 경과하는 항공 물동량은 이달 초 기준 80%나 급감했다.
운송비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도 압박 요인이다. 원유와 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의약품 원료인 메탄올,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동반 상승했다. 이는 주사기, 시험관, 보호장구 등 필수 의료 소모품의 생산 원가를 높여 제조사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안트베르펜 경영대학원의 바우터 드울프 교수는 제약사들이 이러한 추가 비용을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병의원과 약국에서의 판매가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결국 전 세계 소비자들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와 NHS는 의약품 수급 불균형에 대비한 비상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