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유가 폭등을 저지하기 위해 전 세계 에너지 파수꾼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석유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IEA 32개 회원국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을 해소하기 위해 비축유 4억 배럴을 시장에 방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는 IEA 설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방출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28일 발발한 이란 전쟁으로 ‘오일 쇼크’ 공포가 확산한 데 따른 긴급 처방이다. 파티 비롤(Fatih Birol) IEA 사무총장은 “유례없는 시장의 도전에 맞서 회원국들이 전례 없는 규모의 집단행동을 통해 강력한 연대감을 보여줬다”며 “에너지 안보는 IEA의 핵심 과제이며, 공급망 붕괴에 대한 대응에는 국제적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IEA 회원국들은 현재 정부 전략 비축유 12억 배럴과 상업적 비축유 6억 배럴 등 총 18억 배럴의 석유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풀기로 한 4억 배럴은 전체 비축량의 약 22%에 달하는 막대한 물량이다. 이는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방출했던 1억 8,200만 배럴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IEA가 사상 최대 물량을 쏟아붓더라도 ‘세계 에너지의 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요충지로, 전 세계 석유 및 가스 무역량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유가 시장은 이미 극도로 요동치고 있다. 이번 주 초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했던 브렌트유 가격은 방출 소식이 전해지며 현재 90달러 아래로 조정을 받은 상태다. 각국 정부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Sanae Takaichi) 총리는 IEA의 공식 공조 일정을 기다리지 않고 오는 16일부터 즉각 국가 비축유 방출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일본으로서는 수급 불균형 완화가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경제 전문가들은 “4억 배럴이라는 상징적 물량이 시장의 투기 세력을 억제하는 심리적 방어선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란 전쟁의 장기화 여부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수준에 따라 유가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