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유례없는 ‘인구 소멸’의 공포에 휩싸였다. 12일 유럽연합 통계국(Eurostat)이 발표한 2024년 인구 동향에 따르면, EU 회원국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1.34명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의 1.38명을 밑도는 역대 최저치다. 200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유럽 전역의 신생아 수는 전년 대비 3.3% 감소한 355만 명에 그쳤다.
인구학 전문가들은 인구 유지에 필요한 ‘대체 수준 출산율’ 2.1명의 절반 수준인 1.34명이라는 수치에 경악하고 있다. 특히 초저출산 기준선인 1.3명 선까지 위태로워지면서 노동력 부족과 복지 시스템 붕괴가 현실화됐다는 분석이다.
국가별로는 몰타가 1.01명으로 전체 27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으며, 스페인(1.1명)과 리투아니아(1.11명)가 그 뒤를 이어 최하위권을 형성했다. 반면 불가리아는 1.72명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고 프랑스(1.61명)와 슬로베니아(1.52명)가 상위권에 올랐다. 특히 슬로베니아는 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출산율이 상승하며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이번 보고서는 유럽 인구 구조의 두 가지 거대한 변화를 짚어냈다. 우선, 통계 사상 처음으로 30~35세 산모 수가 30세 미만 산모 수를 추월했다. 학업과 경력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 ‘늦깎이 출산’이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옥스퍼드대 멜린다 밀스 교수는 “고학력 여성이 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변화는 이민자의 역할이다. 2024년 EU에서 태어난 아이 4명 중 1명(24%)은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룩셈부르크의 경우 신생아의 68%가 외국계 어머니를 둔 것으로 나타나, 이민자가 인구 유지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반면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자국민 출생 비율이 97%에 달해 대조를 이뤘다.
생식 보건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요인에도 경고등을 켰다. 지난 40년간 전 세계 남성의 정자 수가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등 환경적 영향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후 위기를 우려해 자발적으로 출산을 거부하는 ‘환경 노 키즈’ 족의 확산도 출산율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워싱턴대 나탈리아 바타차지 박사는 “이러한 추세는 글로벌 경제 구조와 국제 권력 균형을 완전히 재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EU 내 지난 10년간의 고용 성장은 대부분 50세 이상 연령층에서 발생했다. 납세 인구의 감소와 의료 서비스 공급 부족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 뇌관으로 지목된다. 전 세계 인구는 2100년경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나, 일각에서는 당장 2070년대 초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