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글로벌 해상 물류의 숨통을 조이면서, 수출 주도 성장 구조를 취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에도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의 ‘전쟁 할증료’ 도입으로 해상 운임이 단숨에 3배나 치솟고, 주요 수출 시장인 유럽연합(EU)과 미국 동부 해안으로 향하는 상품들이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가 불가피해지면서 베트남의 주력 수출품인 농산물과 섬유·신발 산업의 공급망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과 고유가까지 겹치며 베트남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대 4,000달러 ‘전쟁 할증료’ 폭탄…‘팔수록 손해’ 이도저도 못하는 농산물 수출
가장 끔찍한 비명은 베트남의 핵심 수출 동력 중 하나인 농산물 수출 업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머스크와 하팍로이드(Hapag-Lloyd), CMA CGM 등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중동 및 유럽 노선에 컨테이너당 적게는 1,500달러에서 많게는 4,000달러에 달하는 추가 운임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전쟁에 따른 할증 운임이다.
이로 인해 기존 2,000달러 선이던 중동향 냉장 컨테이너 운임은 불과 며칠 사이 6,000달러로 3배나 폭등했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에 비해 컨테이너당 단가가 낮고 이윤 구조가 얇은 과일 등 신선 농산물 수출 기업들에게 4,000달러의 추가 운임은 전체 마진을 집어삼키고 원금마저 갉아먹는 치명상이다.
현지 농산물 업계에서는 치솟은 운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할 경우 중동 및 유럽 시장에서 베트남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완전히 상실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바이어와의 신뢰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 수출’을 감행하거나, 아예 수주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셈이다. 일부 글로벌 선사들은 아예 위험 지역으로의 냉장 화물 접수를 중단해 신선식품 수출길 자체가 묶이는 사태도 현실화하고 있다.
희망봉 우회 불가피… 섬유·신발 ‘주문 취소’ 공포와 수입 차질
물류비 폭등 못지않게 베트남 경제를 짓누르는 것은 ‘시간’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이나 미주 동안으로 향하는 선박들이 안전을 위해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뱃머리를 돌리면서, 운송 기간이 최소 7일에서 최대 20일까지 늘어났다.
이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베트남 주력 수출 업종인 섬유·의류와 신발 업계에 대형 악재다. 패스트패션의 특성상 납기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나, 해상 물류 지연으로 유럽 바이어들의 다가오는 여름 시즌(S/S) 물량 주문이 대거 취소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수출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물류망의 동맥경화는 베트남 제조업의 수입 숨통마저 조이고 있다. 항로 지연과 선박 스페이스 부족으로 유럽에서 들여와야 할 첨단 반도체 칩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국제 유가 급등과 맞물려 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인 플라스틱 수지와 첨가제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고환율·고유가의 늪…다급해진 체질 개선과 시장 다변화
바다 위 물류 대란이 실물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거시경제를 지탱하는 펀더멘털 역시 고환율과 고유가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상태다.
중동발 리스크로 인한 강달러 현상은 베트남 동화(VND) 가치를 끌어내려, 원부자재의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베트남 제조 업계에도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응이선정유소(Nghi Son) 등 주요 석유화학 시설이 쿠웨이트 등 중동 원유 정제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수입 에너지 비용 상승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방위적 압박 속에 베트남 현지 기업들은 필사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현지 주요 농산물 수출 업체 중 하나인 T&T비나(T&T Vina)는 농산물 원물 대신 보관 기한이 1~2년에 달하는 냉동·건조·주스 등 가공식품 위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전환해 운임이 안정될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가는 한편, 운임 리스크를 바이어에게 넘기는 FOB(본선인도조건) 계약 비중을 늘리고, 불확실성이 큰 중동·유럽 대신 중국, 일본, 아세안 등 근거리 아시아 시장으로 물량을 돌리는 시장 다변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중동 사태가 단순히 해운 운임의 등락을 넘어, 대외 충격에 취약한 베트남 수출 주도 경제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기적인 물류 지원책을 넘어, 장기적으로 핵심 원부자재의 자급률을 높이고 특정 시장에 편중된 수출 지형을 재편하는 등 베트남 경제 전반의 거시적 체질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